밀리에서 책읽기-01
<보헤미안 랩소디>는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정재민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 현직 판사였고(현재는 변호사), 소설의 주인공도 판사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꼭 판사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없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판사'라는 기호가 갖는 무게와 의미가 주인공의 내면을 설명하는 데 용이하게 작동하고, 또 주인공의 내면을 형성하는 몇몇 에피소드(주로 엄마와의 관계)의 설득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주인공을 판사로 설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 물론 작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가 '판사'라는 직업이라는 이유도 있을 테고.
법조인이 쓴 소설이라서 당연히 법정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의외로 법정 장면이 많지 않다. 놀랍게도 이 소설은 소설에 정신분석을 끌어들인다. 주인공이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을 받고, 그 분석 내용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룬다. 그렇다고 심리소설로 보기도 어렵다. 흔히 심리소설이라고 하면, 도스토예프스키 스타일의 소설을 의미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심리 그 자체가 행동의 중요한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니고, 정신분석 과정을 통해서 억압된 무의식을 해방시키고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함으로써 주인공이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세상과 화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정신분석의 내용은 다소 상투적이고 전형적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소설에서 정신분석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 상당히 신선하기는 했다.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법적으로 적법한 절차를 통한 정의실현과 사적인 복수를 통한 불의의 단죄 사이에서 고민한다. 주인공이 판사이니만큼 이 고뇌는 남다를 것이다. 법은 자력구제를 금지한다. 사적인 힘을 동원해서 깨진 질서를 회복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적인 복수를 허용한다면, 복수의 악순환으로 사회질서 유지는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법에 호소를 하라는 것이다.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인공의 고민은 더욱 깊었을 것이다. <배트맨 비긴스>를 보면서 "당신이 하려고 한 것은 복수지 정의가 아니야. 정의는 세상과의 조화지만 복수는 자기만족일 뿐이야."라는 브루스 웨인의 여자친구 레이첼의 대사를 듣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하려는 것이 정의인가 자기만족인가.
넷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끝까지 보기 어려운 것처럼, 밀리의 서재에서 고른 책을 끝까지 읽기도 쉽지 않다. 이 책 저 책 볼만한 책이 많아 보여서, 이내 다른 책을 기웃거리다가 처음 고른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재민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계속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이북 리더기의 페이지 넘김 키를 정신없이 누르게 된다. 전자책을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재미는 보장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