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기 그지없던 어느 날, 벼락을 맞은 것처럼 하늘이 무너져 내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TV프로그램에서 우리 회사를 천하의 나쁜 가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창 바쁜 나날이 몇 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잠도 못 자고 서울과 부산, 전라도 광주,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눈코뜰새도 없이 바쁘게 전국의 지방을 돌아다녔다. '대만 카스텔라'로 유명해진 우리 회사는 대히트를 쳤다. 물론 이전에 '패스츄리 붕어빵'으로 처음 이름을 알리고 다양한 디저트를 연달아 출시하던 중 '대만 카스텔라'가 생각지도 않게 인기를 끈 것이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이름의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더니 결국 망해버렸다.
그땐 너무 힘들었다. 가맹점주들은 폐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가맹점주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도 한계였다. 내가 죽기 일보직전이라 남을 챙길 여유가 있을 수 있을까?
점주님의 전화를, 길거리에서 한 시간가량 통화한 후 정말 어린아이마냥 길바닥에 주저앉아 목놓아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 그 모두 내 눈에 들어오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큰 소리로 꺼이꺼이 울었다.
그날은 오랜만의 쉬는 날이라 영화를 보러 나왔던 휴일이였다. 그렇게 휴일을 망치고 집에 가서 나는 퇴사를 마음먹었다.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좋을 거 같았다.
회사는 망해가던 찰나였고 인건비도 줄 수가 없던 최악의 상황였다. 점주들에게 페널티도 받지 않고 계약종료를 해줬기에 뭐하나 남은 것이 없었다. 겨우 퇴직금을 정산받고 회사를 나오는데 씁쓸했다.
뭐하나 내 손에 남겨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청약통장에 700만원, 통장에 300만원, 빚 300만원. 이게 내가 가진 전부이자 모든 것이였다.
내 몸을 돌보지 않고 일만 해서 그런가 여기저기 망가져 있는 몸, 허리 디스크에 하지 정맥에 뭐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친한 점주님의 부탁으로 한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주기로 했는데 오래는 못한다고 했다.
그 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운명같은 만남인가? 머리를 갸웃해보지만 운명이긴 한 것 같다.
회사는 '영흥도' 집은 '마천동'였는데 마침 휴가라 본가에 와서 쉬고 있을 때 잠실에서 나를 만난 것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돈 천만원과 300만원의 빚, 그리고 엉망이 된 몸뚱아리를 가진 나를 그 남자는 첫눈에 반해 결혼을 하자고 했다. 3개월 연얘하고, 6개월 결혼식을 올렸으며, 결혼 한지 2개월만에 임신하고 이듬해에 아들을 출산했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영흥도' 시골에서 독박육아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