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을 '영흥도'에 마련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지명이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섬'이지만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차로 이동도 가능했고 영흥도를 들어가려면 대부도에서 선재도를 지나가야만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벗어난 적도 없는 서울 촌년인 내가 지인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곳으로 가서 살겠다는 것인지...
서울에서도 집 반경에서 다니기 좋아했지 멀리는 가지도 않던 나였다. 쇼핑도 친구와 만나는 곳도 다니는 곳만 다녔지 새로운 곳은 잘 가지 않는 나였다. 직장도 어쩌다 보니 종로, 명동, 강남 이렇게 다녔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부모님과 친구들하고 떨어져 나 홀로 들어본 적도 없는 '영흥도'에 가서 살겠다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결혼을 한다는 얘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축하해 주었지만, 영흥도에 가서 살 거란 말에는 다들 얼굴이 굳어져갔다.
"주말 부부해라!"
"성남에 집이 있으니 거기 살면 되지 않냐? 왜 오지에 가려하느냐?"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말렸고 그곳으로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정말 지겹도록 또 듣고 또 들었다. 거기다가 만난 지 겨우 3개월 만에 결혼을 하겠다고 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녔다. 내가 나이 많은 남자에게 홀렸다고 신랑을 보지도 않고 미워했고 싫어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정말 심신이 지쳐있었다. TV프로그램 하나로 삶의 터전을 잃은 점주님들과 직원들은 하루하루가 피가 말랐다. 전재산을 털어 겨우 매장을 오픈한 점주님, 곧 막내가 태어나는데 잘해보고자 희망을 품고 시작한 가게가 오픈하기도 전에 직격탄을 맞아 산산조각이 났다. 그 점주님은 나에게 욕도 하지 않고 푸념도 늘어놓지 않고 그저 쳐다만 보셨는데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아내분이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들어도 가지 않으셨다. 오픈준비하러 매장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매장은 깔끔하고 정갈했으며 새로 구운 빵냄새가 가득 퍼졌다. 빵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몰려들어야 하는데,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수군거리는 소리만 들렸었다.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나는 열심히 직원교육과 매장기기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점주님이 힘 없이 그만두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다음날 그 점주님은 오픈도 하지 않고 폐업하기로 결정했다고 통보를 해왔다. 억장이 무너졌다.
그때 '효리네 민박'이 유행을 탔고 난 그것에 열광했으며 빠져 살았다. 나도 이효리처럼 살고 싶었다.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기며 낮잠을 자고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제주도는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섬이지만 '영흥도'는 멀어도 차로 움직일 수 있으니 나에게는 최적의 장소이지 싶었다.
김창옥 님의 강의를 듣는데 "결혼은 누구와 해야 하나요?"란 질문에
"누구와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이고, 언제 결혼을 하는지는... 결혼을 해야 될 때 결혼할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실 신랑을 처음 만났을 때 운명이고 뭐고 그때 내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 아! 나 이 사람이랑 결혼하겠는데?'
결혼할 때가 되어 결혼할 사람이, 거기다 바다에서 느긋하게 생활하고 싶은 내 욕구까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환경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