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파커 Mar 17. 2024

나는 어쩌다 혼자 물회 먹는 여자가 됐나..

솔로활동의 기본, 혼밥.. 어디까지 해봤니 

 

일본 드라마 '와카코 술' 캡쳐 장면. 


혼술, 혼영, 혼밥, 혼행. 이 당당하고 독립적인 단어들에는, 고독과 슬픔이 배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혼자’ ‘홀로’라는 말은 태생적으로 그렇다. 그리고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둘’이 되어야 하고, 또 ‘셋’이 되어야 하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로, 또 과정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아무리 1인 가구가 늘고, 자녀 없이 사는 부부가 늘어도 말이다.  어떤 가수는 솔로에게서 ‘빛’이 난다고 했으나, 현실에서 그 빛은 화창함 보다는 측은함을 더 많이 뿜어낸다. 그러고 보니, 혼밥이나 혼술, 혼영, 혼행 등을 ‘처음’ 경험했던 때들은, 그렇게 ‘빛나던’ 시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명랑하고 의식적인 솔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처음’은 자발적인 것도 사실 아니었다. 우연히, 혹은 반 강제적으로 발을 들이게 됐는데, ‘어라, 이게 생각보다 괜찮군’ ‘이거 굉장히 묘한 즐거움이 있군’ 하다가 빠져들었던 것.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고, 그것은 인생의 수많은 법칙 중 하나다. 


 처음으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경험을 ‘처음’ 해 본 순간을 떠올려 본다. 그러니까, ‘혼밥’ 이라는 것을 제대로 한 날이다. 이때, 그것은 집과 같은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식당이어야 한다. 하루 두 끼를 매일 같이 혼자 먹었던 시절이 있다. 생각해 보면, 노량진의 공시생들은 매일 그러고 살 것 같은데, 나는 사실 20대 중반까지도 학교 식당에서도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카페에서 커피나 디저트를 먹는 건 혼자 가능했는데, 끼니를 채우기 위해, 그러니까 생존을 위한 밥을 씹는 일은, 이상하게도 혼자 되지 않는 것이었다. 대학원생 때는, 조교 일을 하면서 쓰는 연구실이 있었는데, 점심 때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면, 햄버거나 샌드위치 등을 사 와서,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서 혼자 먹곤 했다. 아무도 나 따위 밥 혼자 먹는 것에 관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이상하게 어려웠다. 

이미지 픽사베이


식당에 가서 겨우, 드디어,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건, 수습기자 시절이다. 새벽에 경찰서를 돌며 취재를 하고(이제 이런 교육법은 없다고 한다), 바로 위 선배에게 아침 보고를 하고 나면, 허기가 져서 뭐라도 먹어야 했다. 남의 시선이고 뭐고 일단 먹어야 살겠기에 생존 본능 같은 것이었는지, 나는 아무 데나 가장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라면도, 콩나물 국밥도, 김치찌개도, 짜장면도, 짬뽕도, (속이 안 좋은 날은) 닭죽도, 만둣국도, 진짜 푹푹 잘도 퍼 먹곤 했다. 혼자라는 걸 신경 쓸 겨를 따위도 없었다. 후딱 먹고, 다음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다음 보고를 해야 했고, 그러고 나면 다시 ‘혼밥’(점심)의 시간이 왔다. 

 밥을 혼자 먹어도 ‘안전’(당연하다!)하다는 걸 처음 경험한 것은, 그때였고, 그렇게 수습 생활을 마치고도, 나는 혼자 밥 잘 먹는 사람이 됐다. 앞서 소개한 일본 드라마 ‘솔로 활동 여자의 추천’의 주인공은 호텔에서 애프터눈티 세트를 홀로 즐기고, 역사가 깊은 중식당이나 문턱이 높아 보이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찾아, 호화로운 한 끼를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기도 한다. 요즘 내 주변엔, 프렌치 레스토랑이나 스시 오마카세 등 ‘파인 다이닝’을 혼자 다니는 걸 취미로 삼은 지인도 있고, 집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혼자 즐기는 비슷한 또래의 비혼 여성 친구도 있다. 사실 엄청난 미식가이거나, 애주가도 아니어서, 나는 전자 스타일도 후자 스타일도 아니다. 물론, 평범한 인간인지라, 맛있는 음식은 당연히 좋아하고, 삼겹살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5 안에 꼽는 ‘한국인’이긴 하다. 그래도 먹는 것을 취미로 할 만큼 미식가는 아니고, 혼자 고기를 구울 만큼 바지런한 성격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달리기만큼이나 솔로 활동의 기초 체력으로서 ‘혼밥’을 중요시 여기는데,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은 중요하고, 이 장벽을 넘지 못하면, 그 어떤 ‘솔로 활동’도 원활히 진행될 수 없으며, 그 의미도 퇴색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혼자 여행을 간다고 생각해 보자. 여행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여행 중 가장 빈번하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가끔 ‘솔로 활동’에 대한 자신의 능력이 얼마만큼인지, ‘혼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겨루게 되는 때가 있다. 그것은 연예인이나 정치인에 대한 걱정이 무용한 만큼이나, 쓸데 없는 이야기 중 하나이긴 하지만.. 여하튼 ‘혼삶’ 인류들은 종종 이런 무용한 배틀을 한다. 나는 혼자 이것까지 해봤다. 이런 것까지 혼자 먹어봤다  같은 것. 그때, 주로 1인분은 잘 주지 않는 고기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혼자 술을 마셨다는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데, 요즘엔 식도락 커뮤니티가 많아서, 평양냉면이나 스시 오마카세, 또 특급호텔 뷔페까지 혼자서 아주 잘 먹고 다니는 사람들이 무척 많은 것 같다. 실제로, 다니다 보면 그런 혼밥러들이 보이기도 꽤 많이 보여서, 엄청나게 낯설지도 않다. 한때는, 일본의 개인주의 문화가 한국에도 상륙했다면서 혼밥 현상이 뉴스가 되던 시절이 있으니, 돌아보면 그게 뉴스라는 사실 자체가  더 놀라울 정도다. 

SBS Biz 'Pick Up! 트렌드 스페셜' 캡처

대단한 미식가도, 고기 마니아도 아니지만, 나는 혼밥러들과 ‘누가누가 혼자 잘 먹나’를 겨룰 때마다, 도저히 의문을 가질 수 없는 1승을 거두곤 한다. 그것은 내가 한 여름 휴가철, 연인과 가족 단위 피서객이 가득한 강원도 고성의 어느 바닷가에서, 혼자 물회를 시켜, 후루룩 후루룩 마셔댄 여자이기 때문이다...

 아직 까지, 나는 그보다 굉장한(?) 혼밥은 들어보질 못했다. 그런데, 사실 그건 물회가 너무 먹고 싶어서, 고속도로를 달려 고성까지 달려간 것은 아니었고(그렇게 적극적인 성격도 못된다), 지방 출장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침 식사 시간이었고,  배가 고프던 참에 바닷가 인근을 지나고 있었던 것 뿐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 홀로 식당에 들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른 것. 휴가시즌이라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 꽤나 무심하게 가게에 들어가, 또 무심하게 물회를 시켰다. 주인 아주머니는 도저히 1인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커다란 물회 한 그릇을 가져다 주셨는데, 그때 진실로 무심했던, 그 질문이 종종 귓전을 때리는 것이다. 


아니, 아가씨 혼자 왔어? 아니, 어쩌다….


아직 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왜 나는 그날 혼자 물회를 시켜 먹었는가. 지금도, 왜 많은 밥을 ‘홀로’ 먹는가. 
물회는 혼자 먹어도 맛있고, 혼밥은 죄가 없다. 그래도 종종 생각은 한다.


나는 어쩌다, 혼자 물회 먹는 여자가 됐을까.. 

하고. 

 

그리고 답은 

뭐, ‘어쩌다’가 아닐까. 



*이 글은 2023년 7월에 작성됐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명랑의 기본은 체력.. 그렇게 '달리는 인간'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