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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an 18. 2023

시어머니의 3종세트




명절을 앞두고 시댁 분위기 파악을 위해 오랜만에 조카와 통화를 했다. 자취를 할 때는 종종 통화를 하곤 했는데 본가로 들어간 후론 듣는 귀가 많아 짧게 카톡으로 안부만 주고받는 정도가 되었다. 시어머니였다면 상대방의 상황이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연락이 소원해진 것에 대해서만 서운하다 화를 내셨을 테고 그 화가 더욱 소원한 사이가 되는, 무한루프를 만들었을 테지만 전화공포증이 있는 나는 소원해진 전화가 그다지 싫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는 무소식이 희소식이고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은 언제고 또 자연스럽게 다시 만날 수가 있는 것을 의미하니까.





“다리는 괜찮아?”

“멀쩡합니다. 잘 걸어 다녀요.”

“설 지나고 나았다하지. 핑계김에 좀 쉬게.”

“아휴, 아닙니다. 그나저나 할머니 벌써 신나셔서 걱정이에요. “

명절에 식구들이 모인다고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반나절도 못 가는 반가움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안 좋은 것보다는 낫지 싶었다.


얼토당토않게 정반대의 것들은 비슷하게 닮아있다. 시어머니의 기분이 너무 업되어 있는 것은 안 좋은 것만큼 위험하다. 업된 시어머니는 목소리가 커지고 그 에너지는 우리 8명이서도 감당이 안된다.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것만큼 기분 맞추기가 쉽지 않고 90%는 그 과함에 오히려 싸움이 나기도 한다. 결국 기분이 좋아도 기분이 나빠도 늘 똑같은 결말을 맞는다. 이 정도면 다들 지겨워 안 볼만도 한데 도살장에 소 끌려가는 얼굴로 꾸역꾸역 명절을 지내러 모이는 걸 보면 시어머니가 자식들은 참 효자로 잘 키우셨다. 물론 시어머니는 절대 인정하지 않지 않으시겠지만..



“며칠 전에 오셔서 이미 3종 세트하고 가셨어요.”

“웬일로 집엘?”

형님 집과는 걸어서 30분, 택시로 10분 정도의 거리이지만 시어머니가 형님댁으로 오시는 일은 거의 없다. 형님이 일을 하시기 때문이기도 하고 간혹 오시게 되면 늘 서로 빈정상하는 일만 생기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만남은 시어머니댁에서 하려고 하는 편이다.

“아빠가 모시고 오셔서 저한테 맡기고 가버리시더라고요.”

망할 놈의 대리효도 근성.

“그래서 3종세트는 뭔데?”

“돈 없다. 집좁다. 할머니가 왜 싫으냐”

“ㅋㅋ 끈기 있으시네. 그 레퍼토리는 변하질 않네."

“그러게요.”


그랬다. 3종세트는 시어머니의 모든 대화의 시작과 끝 멘트다. 기분 좋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할머니가 혹은 시어머니가 왜 싫으냐’로 뜬금없이 이야기가 튄다. 그럼 당연히 우린 입을 다물고 그나마 위태위태하게 이어져오던 대화도 끊기고 만다. 기분이 보통일 땐 ‘집이 좁은데 돈이 없어 새집으로 이사를 못 간다.’로 이야기가 시작돼 집 인테리어가 맘에 안 든다, 죽기 전에 새집에서 살아보고 싶다(여기서 새 집은 새로 지은 아파트임) 등등 끊임없이 본인의 불평과 희망사항을 늘어놓으신다. 우리 입장에서 어느 것 하나 쉬이 대화를 이어갈 수 없는 주제다 보니 대화는 점점 더 단절되고 그렇게 서로 간의 골은 깊어져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시어머니의 좁은 집은 우리의 선택도 권유도 아니었다. 어느 해 설, 시댁에 가보니 시어머니가 집을 매매해 놓으셨다. 우리 중 누구와 상의도 하지 않고 하신 일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 연세에 혼자 집을 매매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혹 내가 그 나이까지 살아남아있다면 나에게 그런 힘이 있을까를 생각해 봤을 때 재력도 그렇고 배짱도 그렇고 어느 것 하나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문제는 매매한 집 그 자체였다. 매매한 집은 지금 집으로 이사 오시기 전 혼자 사는데 30평대는 관리비만 많이 나온다며 잠시 살았던 아파트였다. 그때도 집이 좁고 오래되었다며 1년을 채 살지 못하고 이사를 하셨다. 그런데 같은 집을, 이번엔 아예 매매를 하신 것이다. 당시 어땠는지를 잊어버리신 걸까?

이미 저질러진 일에 이렇다 저렇다 해봤자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괜히 분위기만 나빠질 것을 알기에 아무도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가장 못하시는 일 중에 하나가 다른 이에게 비판을 듣는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특히 시어머니에게는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반역(?) 행위였기에 아무도 시어머니에게는 의견을 내지 않는다. 내면 낸다고 안내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하셔서 늘 문제지만. 무엇보다 본인 돈으로 본인집을 사셨다는데 문제가 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때랑 집구조가 달라서 좀 넓어. 그땐 방이 3개였는데 이번건 2개라 답답하지 않고 괜찮더라.”

그것이 시어머니의 변명 아닌 변명이었다.


그렇게 20년도 더 된 복도식 25평 아파트를 리모델링하고 입주를 하신 것이 4년 전. 입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다. 갑갑증이 있어 단 하루도 집에 있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좁아터진 집에서 본의 아니게 감옥살이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미 집을 사면서부터 리모델링하는 내내, 이사를 가셔서도, 시어머니는 그 집을 맘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거기에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는 시어머니의 집에 대한 불만을 빠르게 늘려갔다. 당장이라도 이사를 하고 싶으신 것이 눈에 보였지만 전세와는 다르게 매매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고 돈을 들여(맘에 들지는 않지만) 리모델링까지 했으니 또 이사를 간다고 하기엔 리모델링에 쓴 돈과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애쓴 형님한테 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셨을 것이다. 진퇴양난은 이런 경우이지 싶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여전히 이사를 꿈꾸며 어쩌면 이사에 대한 꿈을 포기하기 위해, 나에게 집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신다. ‘여기를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언니가 못하게 해서 집이 쓸모가 없어졌다’를 시작으로 가구를 싹 바꿨어야 하는데 이런 가구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하이라이트를 싼 걸 싸놔서 화력이 약하다 등등. 언젠가 대꾸할 말도 없는, 똑같은 레퍼토리를 듣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가끔 나는 이렇게 엉뚱한 생각이 들고 그것을 내뱉는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럼 지난번 사시던 집을 사시지 그러셨어요. 이거랑 가격차이도 별반 없었잖아요. 그 집도 판다고 했었다면서요. 어머니한테 살 생각 있음 깎아준다고도 하지 않았나??”

그럴 때면 시어머니는 말끝을 흐리시며 시아주버님 탓을 하신다. 시아주버님이 그 집 사는 걸 질색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시어머니는 본인의 잘못이 명확할수록 다른 이에게 책임을 돌리는 분이시다. 그 좁은 집을 살수뿐이 없었던 것이 시아주버님의 잘못인 양 떠넘기시려고 하는 걸 보니 그 집을 사신 것이 잘못임을 본인도 인정하시는 듯했다. 암튼 시아주버님이 책임의 전가대상이 된 이유는 '이 전에 살던 집이 맘에는 드셨지만 살던 집을 리모델링하려면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 것보다 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집은 덜컥 매매하실 만큼 배짱이 있으시지만 리모델링 과정을 본인이 하실 정도는 아닌지라 시아주버님 손을 빌려야 할 테고 당연히 시아주버님은 좋게 들어줄 리 없으니 내 아예 다른 집을 사버렸다. 인 듯했다. 나는 굳이 집을 사야 하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들었지만 집을 사고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생각을 하시는 시어머니와는 말이 통하지 않을 테니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로 했다. 모든 걸 시아주버님이 잘못하신 걸로.. 내가 아닌 게 어디야.



한때는 시어머니가 한없이 어렵고 무섭고 불편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해하려 애쓰던 시절을 지나 시어머니의 본모습을 알게 된 지금, 어른스럽지 않은 모습에 가끔은 짜증스럽고 다른 이를 배려하지 않은, 삐뚤어진 방식으로밖에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모습에 가끔은 안쓰럽고 그 모습이 나의 미래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끔은 두렵다.


드라마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것은 예쁜 남녀 주인공이 아니라 진정한 어른이다. 나는 과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문득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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