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자 Jan 19. 2023

아빠가 쓰는 출산일기

우리 딸은 오랜 시간 역아로 있었다. 그래서 자연분만을 간절히 원했던 엄마의 바람과 달리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그럼에도 최대한 오랫동안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 39주를 넘겨 수술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었다. 그럼에도 끝내 아쉬움을 떨칠 수 없는 와이프를 보면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37주가 넘어가면 역아인 아이가 거꾸로 도는 일이 거의 없으니, 제왕절개로 마음을 굳히는 것이 좋을 거라고 충고도 해주셨다.


그랬는데! 갑자기 38주에 거꾸로 돌아누운 우리 아기. 엄마는 신이 났다. 의사 선생님도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자연분만을 도전해 보자며 와이프를 격려해 주셨다. 그래서 당초 39주로 예정되었던 제왕절개 수술은 취소를 하고, 진통이 시작되면 병원을 찾는 것으로 했다. 그러고 나서 시작된 엄마의 무한 걷기와 짐볼 시간들. 많이 움직여야 자연분만이 수월하다는 이야기에 엄청 걸었던 것 같다. 추운 날씨지만 실내 쇼핑몰에 가서 만보 이상을 걷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일을 4일이나 지나서까지 아기는 나올 생각이 없었다.


병원에 가니 유도 분만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날을 정해서 입원. 옥시토신이라고 하는 촉진제를 맞으면서 유도분만 절차를 시작했다. 자궁 수축은 꽤 강하게 일어났으나, 생각보다 와이프 통증은 크지 않았다. 간호사, 의사 선생님들이 이 정도 수축이면 통증이 상당할 텐데 신기하다고 할 정도였다. 와이프는 아무리 생각해도 소위 말하는 인자강, 인간 자체가 강한 체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꼬박 2일을 유도했으나 결국 유도분만은 실패에 돌아가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선택지를 두 개 주셨다. 집으로 돌아가서 진통이 본격화되면 다시 병원에 오던가, 이 정도 유도분만을 했으면 이제 그만 제왕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도 그렇고 와이프도 다시 집에 가서 진통이 오면 다시 입원하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냥 제왕절개를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가 동의 의사를 표현하니 수술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수술실 소독 및 준비를 하고 한두 시간 뒤에 바로 수술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술실에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에 옆방 산모 분의 아기가 심장 소리가 심상치 않아 먼저 수술을 해야 하니 양해를 해달라고 하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흔쾌히 양보를 해드리고 오후 5시쯤 아기가 우렁차게 울음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수술실 근처는 가지도 못하고 저 멀리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바로 옆이 신생아 실이라 여러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던 찰나에 심상치 않게 들리는 한 아기의 울음소리. 그것은 바로 우리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잠시 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서 눈앞을 지나가는 아기. 한눈에 봐도 나와 너무나 똑 닮은 얼굴에 순간적으로 엄청난 감동이 밀려왔다. 그런데 막 감동의 눈물이 터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펑펑 울 것 같았는데. 수술실에서 막 나와서 이불을 돌돌 두르고 있는 와이프와 잠시 기다리고 있다 보니 깨끗하게 단정한 아기가 들어왔다.


간호사님이 간단한 신체검사를 해주시고 아기를 안을 수 있게 해 주셨다. 아기를 안고 보니 정말 작았다. 작고도 작고도 작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처럼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 순간 각인이 되었다. 동물의 세계에서 이렇게 작은 생명을 품에 안을 수 있는 것은 그 부모 밖에 없다. 우리의 몸에는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는 순간 일종의 각인이 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얼굴을 쳐다보는 5초 남짓한 시간만에 이 아기의 아빠가 되었다. 와 똑 닮은 얼굴은 덤이었다.


사진을 찍고 아기는 다시 신생아실로 돌아가고 와이프는 곧 병실로 이동하게 되었다. 아기와 첫 면회는 당장 저녁이었는데 와이프는 거동이 안되어서 가지 못했고, 나 혼자 가서 유리너머 10분 정도 아기를 보고 왔다. 한순간도 놓칠 수가 없어서 10분을 휴대폰으로 찍어가며 아기를 눈에 담았는데 10분 내내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었음에도 매분 매초가 감동이고 사랑이었다. 지금은 없어졌는데 당시에는 짙은 쌍꺼풀이 있어서 더 설레었던 것 같다.


다음날부터 5일 차까지는 와이프와 같이 면회를 다녔다. 하루에 2번, 10분 동안 아기를 보는 시간만 기다렸던 것 같다. 가끔씩 눈도 뜨고, 고개도 돌리고 하면서 뭔가 활동이 왕성해지는 아기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럴 때면 그 장면만 편집해서 양가 부모님들에게 공유하곤 했다. 배짓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와이프는 처음에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엘리베이터를 타고 신생아실로 이동했는데, 하루하루가 다르게 허리가 펴지더니 나중에는 거의 수술한 사실을 잊을 만큼 멀쩡하게 다녔다. (물론 통증은 남아 있었겠지만.)


출산 과정은 엄마에게 매우 가혹한 행위다. 자연분만은 진통이라는 큰 허들이 있고, 제왕절개는 기약 없는 진통은 없으나 수술 이후에 5일 정도, 혹은 그 이상의 통증이 수반된다. 물론 그 이후에도 산후조리가 필요할 만큼 신체에 부담이 가는 행위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자연분만이 아무래도 산모의 신체에 가는 부담이 적긴 한데, 요즘 트렌드는 대부분 제왕절개로 가는 것 같다. 우리가 있던 병원의 병실에는 산모가 어떤 방식으로 출산을 했는지 전문용어로 기재가 되어 있었는데, 십여 명의 산모 중에 자연분만은 마지막날 한 분밖에 없었다.


제왕절개는 최근의 산모와 병원 모두에게 유리한 방식이구나 싶었다. 맞벌이가 많은 요즘 시대에 제왕절개는 출산 일정을 사전에 모두 픽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병원도 입원일이 늘어나니 의료수가가 높을 것이고,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환자의 입원과 퇴원이 예측가능한 것은 장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와이프와 우스갯소리로 유도분만 시 투여한 촉진제가 알고 보면 그냥 식염수가 아니었을까 하기도 했다. 당연히 사실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나름 유도를 하였으나 이 유도는 제왕절개 유도였던 것으로.


5일 차가 되면 와이프는 병실에서 환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데에는 큰 부담이 없는 몸상태가 된다. 병원 밥에 살살 질려갈 때쯤 조리원에 입소하게 되었다. 같은 건물 내에 있는 조리원이라 여러모로 편했다. 아기와 산모의 진료도 같은 건물에서 이루어지니 추운 겨울에 외출 횟수가 줄어든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조리원은 병원보다 시설이 조금 더 좋았다. 그리고 샴푸실이나 마사지실 등 여러 편의시설들이 많아서 한눈에 봐도 산모에게 좋아 보였다.


샴푸실을 태어나서 처음 이용해 봤는데, 매번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것을 받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와이프의 머리를 샴푸의자를 이용해서 감겨주니 재미있었다. 샤워는 조리원 들어가고도 한참 있다가 가능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머리라도 감고 나니 와이프가 한결 개운해 보였다. 옆에서 크게 도와줄 것이 없었던 지라 이렇게라도 와이프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나 역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토요일에 조리원에 입소를 한지라 나도 토일 이틀은 조리원에서 같이 생활을 했다. 다만 코로나로 인해서 남편은 조리원에 계속 있거나, 한 번 외출을 하면 다시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는 출근을 해야 했던 지라 일요일 저녁까지 함께 있다가 나는 집으로 복귀를 했다. 토일 이틀 동안 아기와 함께 모자동실을 하였는데, 하루에 두 번 무조건 모자동실을 해야 하고, 그 뒤로는 산모가 원하면 언제든지 모자동실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아기가 너무 좋고 사랑스럽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기를 케어하기엔 너무 준비가 안되어 있는지라 기본 모자동실 시간과 추가로 적당한 시간을 모자동실하였다.


그러면서 최대한 이모님들의 노하우를 배우려고 노력을 했다. 그래서 기본적인 케어가 필요한 순간엔 이모님을 모셔서 어떻게 대처하시는지를 배우고 나서 아이를 신생아실로 보내곤 했다. 확실히 아이가 너무 좋고 사랑스러운 것과 별개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를 보는 것은 매우 긴장되고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기도 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조리원 기간은 정말이지 아이가 얌전한 시기다. 거의 잠만 자고 거의 울지도 않았다. 코로나 시기라 산모들 간의 교류도 거의 없어서 와이프는 조리원을 1주일만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40주를 며칠 넘겨서 나오기도 했고, 아빠의 길이와 엄마의 피지컬을 모두 물려받은 덕분에 태어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몸무게는 3.4kg 정도로 평균보다 살짝 높은 수준이었지만 키가 52cm가 넘어서 상당히 큰 편이었다. 실제로 5주 차가 살짝 지난 지금은 키는 백분위로 97, 몸무게는 90 정도이니 자이언트 베이비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아무튼 그 덕분에 조리원에서도 이모님들의 경계 대상이었다. 한 번은 와이프가 수유를 하고 있는데, 인수인계하시던 이모님들이 우리 아기가 힘이 세니 조심하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나는 조리원 기간 내내 출근을 했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주로 만났다. 가끔 조리원에 들러서 와이프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넣어주고 왔는데, 만나지는 못하고 지정된 테이블에 놓고 오면 나중에 와이프가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주로 디카페인 커피나 달달한 과자들을 놓고 오곤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와이프의 요구가 잦지 않았는데, 수유 중이라 어차피 먹을 수 있는 음식에 한계가 있다 보니 조리원에서 나오는 음식과 간식들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아기가 생기기 한참 전부터 육아에 대비해서 NAS를 집에 구축해 두었다. 가정용 서버 같은 것인데, 사진을 올려 사용자들끼리 공유할 수도 있고, 가정용 IP Camera를 연동해서 일정 기간의 영상을 저장하거나 특정 이벤트를 추출해서 저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아기가 생기고 본격적으로 NAS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매우 유용하게 쓰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들에게 어플과 아이디를 알려드리고, 우리는 수시로 사진을 찍어 올리니 무척 좋아하셨다. 물론 사진을 공유하는 상용 서비스도 많으나 용량의 제한, 가격의 부담, 가정 IP Camera의 개인정보 관리 등을 생각하면 NAS 구축이 여러모로 좋은 것 같다.


와이프의 조리원 기간 동안은 이렇게 공유받은 사진들을 보면서 아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키워갔다. 날로 다르게 눈이 커지는 아이를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특히 기저귀를 막 갈고 난 다음에 아기가 가장 활발해 보이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팔을 이리저리 봉산 탈춤 추듯이 움직인 채 찍힌 사진들은 대부분 기저귀를 막 갈고 난 다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치 술에 만취해서 정신을 잃은 것처럼 찍힌 사진들도 있었는데 이런 사진들은 분유를 배불리 먹고 거의 퍼진 사진들이었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들이 아기 사진을 보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와이프는 조리원이 끝날 즈음에는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으나, 아무래도 수술 부위에는 계속 불편함이 있었다. 조리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 만에 아빠가 코로나 확진이 되면서 와이프가 크게 고생을 했다. 아빠의 흔적이 닿은 모든 곳을 소독하고, 이불과 옷가지를 빨래하느라 몸이 성치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무리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3일 뒤에 와이프도 확진이 되었다. 아이가 집에 오면 펼쳐질 육아의 힘듦에 대해서 각오는 했었지만, 엄마 아빠의 공동 확진은 계획에 없던 일이라 우리 부부는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우리는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일들이었지만, 우리는 잘 헤쳐냈고,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다. 아기를 바라보면서 언제 열이나 대학병원으로 달려갈지 늘 조마조마한 불안감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콧물과 기침 가래로 고생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안쓰러운 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물론 대학병원에 가서 몇 가지 진료를 받아야 할 일정은 남아있지만 지금 이 정도로 안정된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나의 가장 약한 모습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격 지심이 가장 크게 폭발하는 것이 바로 육아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가장 못난 것,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들을 육아는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그것에 대해서 반응하게끔 부추긴다. 그리고 부부는 각자 서로 다른 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다행인 것은 와이프가 무던하고도 덤덤하게 아이를 대하고, 그런 모습에서 아기가 안정감을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늘 걱정 투성인 아빠의 불안감을 엄마가 덮어줄 수 있음이 한없이 감사한 요즘이다.


10여 달의 임신기간과 출산기간을 거쳐 이제 드디어 아기는 우리의 품에 안기었다. 엄마 아빠의 사이에 같이 쏘옥 안겨있을 수도 있고, 양 볼에 엄마 아빠가 동시에 뽀뽀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엄마가 아이를 달래는 동안 아빠가 분유를 탈 수도 있게 되었고, 엄마가 기저귀를 가는 동안 아빠가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꺼내올 수도 있게 되었다. 무사히 우리 품에 아기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한 순간이다. 이 아이가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한 인간으로 독립해서 이 세상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육아의 단계도 지금처럼 잘 이겨낼 생각이다.


아빠의 출산일기 끗.

매거진의 이전글 37일 차 : 이쁨을 저장할 방법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