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하상 Mar 09. 2019

그놈의 공무원

   글쓰기 모임에서는 한 시간 동안 자유로운 주제로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쓴다. 그러고 나서 30분 정도 서로가 쓴 글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나는 글 쓰는 시간보다 서로 어떤 글을 썼는지 얘기하는 시간이 더 좋다. 처음 내가 글 쓸 때만 해도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지, 날 이상하게 보진 않을지 걱정했지만 얘기를 해보면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공감해줌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루는 내 또래 분께서 알바가 잘 구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담은 글을 써봤다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체적인 인생 플랜이 있는데도 부모님께서는 공무원을 강요하시기에 집 안팎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였다. 평소에 되게 귀여운 글들을 쓰셔서 나와는 다른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20대 초중반에 누구나 겪어야 할 관문인가 싶을 정도로 내 얘기와 닮아있었다. 사실 우리 아빠도 나에게 공무원을 권한 적이 있었다. “네가 공부만 한다 하면 아빠는 평생 지원해줄게!” 내 인생에 공무원이란 플랜은 없었기에 아빠의 제안이 나에게 먹힐 리 없었다. 평생 지원받을 생각도 없는데 무슨 소리인가! 그래서 난 “액티브한 일을 하고 싶어”라고 내 의견을 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아빠의 호통이었다. 사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빠가 말한 내용이 기억도 안 난다. 네가 아직 인생을 너무 모른다는 뉘앙스의 말이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나는 너무 놀라서 ‘왜 저래?’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빠가 어떤 의도로 얘기했는지 이해는 한다만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그 말을 받아들이진 않을 거다.

   

  그분의 말에 내 경험을 반추해보며 공감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고놈의 공무원! 고놈의 공무원이 뭔데 맨날 우리는 부모님께 공무원을 매번 권유받으면서 속 끓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위로보다는 그 상황에 대한 돌파구를 하나씩 제안했다. “그 말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다음에 할 게라 하면서 미뤄봐요, 그냥 알겠다고 하고 넘겨버리는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서로의 재밌고 기발한 방법들로 분노의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넌 아직 세상을 몰라. 너의 꿈은 허황됐어, 나이 더 먹으면 엄마 아빠가 왜 그런 얘기했는지 뼈저리게 느낄 거다!”라고 하면서 인생론을 얘기하는 레퍼토리는 어느 집이든 공통적인 레퍼토리다. 나이 그렇게 많이 안 먹어도 엄마 아빠가 하는 말 다 이해할 정도로 우리들 머리는 컸다. 엄마 아빠는 평범하고 안정적이게 돈을 벌면서 본인들만큼 힘든 길을 안 걸었으면 하는 마음...  모를리가 없다. 모임에 다른 분께서 그런 얘기를 하셨다. “부모님이 말하는 평범함이 지금 세대에서는 결코 평범함이 아닌 특별함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아실까?”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평범해지고 싶은 게 꿈이 되어버렸으니까... 

  

  최근에 아빠가 다시 서울로 가는 날 위해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주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 너가 좋아하는 그게 제일 중요해” 


아빠를 너무 보수적인 사람으로만 봐왔던 나를 한 대 때리는 말이었다. 더 이상 공무원이 되길 요구하는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가 어떤 계기로 생각을 바꾸셨는지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고마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빠의 힘들었을 회사 생활에 대한 느낌이 함께 전해지는 순간이여서 씁쓸하기도 했다. 

작가의 이전글 더 이상 공주가 아닙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