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없다며 혀를 차고, 욕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마나 아찔했는지 꾸밈없이 남겨두기 위해 글을 쓴다.
아침 6시 반, 10개월 된 아기의 분유를 타주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됐지만 나는 잠이 덜 깨서 분유 먹는 아기 옆에 누워 잠을 이어갔다. 분유를 다 먹은 아기가 거실에서 놀 때도 옆에 누워서 졸면서 노래 불러주고, 아기의 말에 실눈 뜨고 반응해주고 그야말로 비몽사몽이었다. 그렇게 잠이 덜 깬 채 아침이 지나가고 있었고 9시가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다.
아기 아침밥을 차려주고는,
"근데 연유가 왜 안보이지? 연유야. 간식 먹자"
연유는 우리 부부가 연애시절부터 함께 키운 고양인데 가족으로 함께 한 지 7년이 되었다. 마음으로 품은 첫째 딸과도 같아서 아기에게는 '연유 언니'라고 부르도록 했다.
으레 간식의 '간'자만 꺼내도 반응하는 아인데 '간식 먹자'하고 아무리 불러도 연유는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들은 갈 때가 되면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서 마지막을 다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어디 깊숙한 곳으로 숨은 건가, 혹시 쓰러진 건 아닌가, 아니면 아예 집을 나간 건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남편과 나는 그제야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보통 이 쿠션 위에 누워 있는데 오늘 아침엔 안보이긴 했었어."
"보통 우리가 잠자리에 누우면 침대 위로 올라오는데 어젯밤엔 안 올라왔잖아"
"그럼 어젯밤부터 없었던 거야?"
정신이 아찔했다. 연유가 사라진 사실에 혼미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없어진 걸 밤새 눈치 못 채고 있었다는 사실이 소름 돋았다. 이러고도 집사라고 할 수 있는가? 하고 자책했다.
아기가 태어난 뒤로 연유에게 소홀했던 것에 대해 벌을 받는 것 같았다.
집안을 샅샅이 뒤져봤다. 틈이란 틈 사이는 다 살펴보고 세탁기 뒤, 서랍 안, 옷장 안, 소파 밑 다 뒤져보았지만 연유는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아파트 1층부터 꼭대기까지 둘러보았고 주차장에 있는 차들 밑에도 들여다보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실종 전단지를 인쇄해서 아파트 단지에 붙여놓으려고 문서 작업을 했는데 우리가 그동안 연유에게 얼마나 소홀했는지 또 한 번 느꼈다. 전단지에 사진을 넣으려고 핸드폰 사진첩을 열었는데 최근에 연유를 찍어놓은 사진이 없어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매일같이 연유 사진을 찍어줬었는데...
조리원 퇴소 후 아기를 처음 소개하던 날, 연유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기를 바라봤고 가까이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5개월 동안 캣타워에 올라간 적이 없었다. 신생아 때 새벽 수유한다고 밤중에 일어나면 꼭 공동 육아라도 하는 마냥 내 옆을 지켰다. 그러다가 아기가 커가면서 행동반경도 넓어지고 자꾸 연유 꼬리를 만진다거나 귀찮게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현관문을 드나들 때 나간듯했다. 그걸 우리는 눈치채지 못했고.
힘이 약한 아인데 야생고양이들에게 공격받진 않았을까, 불길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출근 시간을 미룰 수가 없는 남편이 출근한 다음이었다. 아파트 계단을 한 번만 더 살펴보자며 다시 훑었다. 우리 집에서 위로 네 층 올라가니 연유가 있었다. 그 집 앞에 놓여 있는 유모차 아래에 웅크리고 엎드려 있었다. 남편이 훑어볼 때 못 보고 지나쳤나 보다.
겁이 많은 연유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동요하지 않고 제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나 여기 그대로 있으니 다시 찾으러 오라고.
연유를 다시 찾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미안해 연유야. 돌아와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