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그곳에서 자유롭게 반짝이길 바라며
어느 날, 저녁 8시에 아기를 재우고나니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와서 나도 잠이 들어버렸다. 보통 늦게 잠드는 남편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누웠고 이불을 사부작사부작 거리는 소리에 나는 잠이 깨버렸다. 7시간이나 잤으니 오늘 하루 잘 잠은 다 잔 거 같아서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최근에 ‘미라클모닝’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워낙 늦게 자는 올빼미형이라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부터 1일인가? 하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일어났다.
상쾌했다.
글 읽는 게 느려서 책을 못 읽는 나인데 책 한 권을 다 읽고, 명상도 했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 신청하려고 써놓은 글도 다듬었고 이제 신청만 하면 되겠다 하고 마무리했다. ‘미라클모닝’ 말처럼 정말 놀라운 아침이라하며 흡족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야행성인간인 나에게 그것은 마치 ‘운수 좋은 아침’과 같았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니만’
아침 8시까지 글을 썼고 모처럼 늦잠 자는 아기를 깨워서 아침밥을 먹였더니 어느새 시계는 9시를 향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봤더니 7시 반에 고모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2통 와 있었다. 고모랑은 자주 연락하는 편이 아니어서 이른 아침의 부재중 전화 두 통에 왠지 불안감이 느껴졌다.
“고모~ 웬일이야?”
“아기는 잘 크고 있나?”
“응 잘 크고 있지~”
아기 안부를 묻는 말에 조금은 안도를 했었다. 그냥 이렇게 끝까지 안부 묻는 전화이길 바랐다. 고모 목소리가 안좋아보이긴 했지만 아침이라 그럴 거라고 생각하려 했다.
“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
청천벽력 같았다. 왜? 언니가 왜?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었다. 믿기 어려웠다.
사촌이지만 나와는 친언니, 친동생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산 세월만 해도 5년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한 이불을 나누어 덮었고, 내가 대학생이 되어 상경했을 때 우리는 한 집에서 같이 살기도 했다.
ㅡ
돌도 안 된 아기를 장례식장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에게 아기를 맡기고 빈소로 향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해는 벌써 졌고, 로비로 들어섰을 때 빈소의 층호수를 안내해주는 디스플레이 화면이 먼저 눈에 띄었다.
곧바로 울음이 터져버렸다. 화면에는 영정 사진도 함께 표시되고 있었는데 다른 고인들은 다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었고, 그 사이에서 언니의 사진 속 모습이 너무 꽃다워서 눈물이 났다.
수많은 기억들과 추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랐다.
초등학생 때 씩씩거리며 언니랑 싸우다가 언니 손에 상처 낸 일, 내 살결이 부드럽다며 언니가 내 팔뚝을 어루만지며 잠든 일, 만화책을 쌓아놓고 함께 밤새 읽었던 일, 오래된 할머니 집에서 야밤에 뒷간 가기 무섭다며 서로 기다려준 일까지…
중학생 때는 어떤 고등학생에게 삥 뜯긴 적이 있었는데 언니가 가해자를 찾아서 어디 우리 동생 삥을 뜯냐며 혼쭐 내준 일도 있었다.
언니는 나에게 큰 어른이었다. 내가 학생일 때 언니는 돈도 벌고 있었고, 직접 운전해서 서울도 누빌 수 있었고 혼자서 해외여행도 나갈 줄 알았다. 가끔 언니에게 힘든 일이 생길 때는 '어른에게는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하며 '어른이니까'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그런 일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언니가 겪었을 상처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ㅡ
내가 24살이 되던 해 5월, 언니는 내게 자유롭게 여행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전까지는 해외여행이라고는 단체 패키지여행으로 한 게 다였는데 언니와 함께 처음으로 홍콩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그 당시 나는 가난한 대학생이어서 갈 수 있을지 고민을 했더니 언니는 선뜻 비행기표, 숙소 비용을 다 부담하겠다고 했다. 그 정도로 여행의 가치를 내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언니는 여행을 좋아했다. 20대 때 돈 버는 족족 여행에 바쳤고, 나는 그 부분을 걱정하기도 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언니는 여행할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우리가 홍콩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꺼내보았는데 너무나도 반짝이고 있었다. 왜 지난날의 모습들은 유독 반짝이는 것 같을까. 어쩌면 현재 이 순간도 반짝이고 있는데 단지 모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먼 훗날 지금 이 순간을 다시 돌아보면 또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언니는 그걸 깨닫지 못한 채 떠나버렸다.
열심히 마일리지를 모으더니 1등석 타고 하와이 갈 거라했는데 하필 코로나가 터져서 예약해 놓은 비행기표를 취소해야 했던 비운의 언니.
항상 화통하던 언니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고마웠고 미안하고 보고싶다.
그곳에서 좋아하는 여행 맘껏 하고 자유로워지길.
커버이미지 출처: Sam Willis 님의 사진, 출처: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