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ónde estoy en este mapa?
09/05/lunes
5월 9일 월요일
desde Palas de Rei hasta Arzúa
팔라스 데 레이에서 아르주아까지
여행한 지 36일, 걸은 지 33일
- 넌 몸 안 좋으면 아침까지 먹고 와.
은배는 오늘 걸어야 할 거리가 좀 된다면서 먼저 출발을 고했다. 그때 나는 세수를 하고 있었는데, 빨래 만드는 게 귀찮아서 화장실에 비치된 페이퍼 타월을 한 장 꺼내 얼굴의 물기를 닦아냈다.
기운이 별로 없었다. 하나 오늘 거리 정도라면 은배 말대로 일찍 나가는 것이 나았다. 나는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지체한 시간을, 아침을 거르는 것으로 채우기로 했다.
- (아침 메뉴)
그래도 조금 걸으니 요기할 만한 곳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 메뉴'가 쓰인 입간판을 따라 곧장 식당으로 들어갔다.
- 너도 아침 안 먹고 나왔구나?
- 여기 있었네요! 늦을 것 같아서 저도 그냥 나왔어요.
- 그랬구나. 그럼 천천히 먹고, 나 먼저 간다.
- 잘 가요!
식당에 들어갔을 때 은배는 이미 접시를 비운 상태였다. 반대로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목을 가다듬으며 식사 주문을 해야 할 때.
- 올라. (Hola.) 아침 메뉴를 시킬 건데요, 음료는 코코아로 주세요.
나는 가장 먼저 버터 덩어리를 따뜻한 바게트에 발랐다. 그리고 코코아를 한 모금. 버터가 녹을 즈음엔 그 위에 잼을 발라 바게트를 베어 물었다. 잘 구운 빵에선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바 테이블에 앉은 중년의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안경을 콧등에서 밀어 올리며 책을 뒤적였다. 너저분한 내 식사에 비하면 식당 주인도 조용하긴 매한가지였다. 뒷문으로 들어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문소리만 나면 그는 다시 나와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찬장을 정리하거나 잠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그새 사람들이 많이 늘어 있었다. 수다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 참, 약! 나는 배낭을 앞으로 돌려 메고 소염제 한 알을 얼마 남지 않은 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겼다.
사람들이 세요를 찍자며 어느 카페로 몰려 들어갔다. 나도 아까 식당에서 세요 받는 걸 깜빡했는데 같이 찍을까? 하지만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또 뭘 시켜먹는 건 못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세요만 찍고 나올 만큼 내 얼굴이 두껍지도 않고. 그냥 가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목전에 두고 사람들은 세요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여권이란 언제나 새 것보다 많이 써서 낡은 것이 더 멋있는 법이니 나도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돈을 받고 세요를 찍어주는 곳이 보일 때면 씁쓸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러면 나는 그간의 찍은 도장들을 바라보았다. 서두를 필요 없지. 마을에 도착하면 언제나 성당은 있으니까.
눈 앞에 초록색을 제외하면 내가 서있는 좁은 길 뿐 다른 건 없었다. 좁은 길은 흙길일 때도 있었고 물속에 박힌 징검돌일 때도 있었지만, 주변 나무에 찰싹 붙은 이끼와 잎사귀는 변함없었다. 진정한 초록색이란 이런 것이다 뽐을 내기라도 하는 것인지 숲은 울창하고 매우 반짝였다. 그렇게 온통 초록색이니 그곳은 내가 어디에 갇힌 것인지 속박을 피해 빠져나온 것인지 헷갈리게 했다. 그래서 편하면서도 무서웠다. 더군다나 내가 페이스메이커로 찍어놓았던 사람을 막 놓친 후라 더 그랬다. 그런데 또 다른 순례자가 적당한 속도로 나를 제쳐 걸어갔다. 전 마을, 노란 재킷에 빨간 가방을 메고 검은 바지, 갈색 신발을 신고 돌담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던 사람이었다. 소염제의 약효가 들면 무릎이 아닌 고관절이 아파서(?) 오르막보다 내리막길이 쉽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타난 후로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 오늘 왜 이렇게 빨라?
은배는 이제 막 커피를 시키고 쉬려고 하는데 내가 왔다고 했다. 느려도 속도만 유지하자며 걸어온 길이었는데 놀랄 얘기였다. 제법 수월해진 길에 새로운 동행이 생기니 걸음을 쉬지 않아도 된 덕이리라. 어쨌든 나는 주스 한 잔을 시켜 놓고, 신발 속 돌멩이를 빼내고 바지를 걷어 올려 약을 발랐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들어온 카페엔 사람이 가득했다. 은배와 나는 바깥에 친 천막으로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 비 그치면 움직여요.
우리는 덕분에 막바지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그다음에 한번 더 식당을 들렀는데 우연히 맛집이어서 정말 정말 충분한 휴식이 되었다.)
비가 주춤하더니 마을에 들어서자 다시 억수같이 내렸다. 휴대폰으로 길을 찾는데 화면이 빗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휴대폰을 쥔 손을 판초에 숨겨 넣었다가, 건물 처마가 보이면 재빨리 꺼내 위치를 확인하길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유리문 앞에서, GPS는 목적지 도착을 알렸다. 어두운 빛깔의 나무로 덧대여진 곳. 여느 곳과 다르게 진한 갈색의 뼈대를 가진 침대엔 붉은 이불이 걸려 있었다. 대신 침실엔 천장을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방의 천장은 따로 막지 않고 전체 집의 천장만 높게 낸 것이었다. 그래서 숙소 자체가 하나의 큰 방처럼 느껴졌다.
-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쉬고 있어요.
슈퍼를 들르기 전 나는 또 변기 위에 앉았다. 얼마나 오래, 자주 들락날락했던지 화장실 앞 복도에서 만난 여자가 코를 막고 비웃기까지 했다.
부엌은 복도 끝에 난 문을 지나 별채에 마련되어 있었다. 은배와 나는 슈퍼에서 사 온 것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 왜 자꾸 배가 아프지?
- 뭘 잘못 먹었나?
- 글쎄, 먹는 거야 매일이 똑같은데……
아무래도 이건 신경성인 게 분명하다! 끝을 감지한 것이다. 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단계, 끝이라는 단계를 나도 모르게 알아차리고 긴장을 한 것이다.
- 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울 것 같아. 그리고 그 울음보가 터져야 복통이 사라지려나 봐.
instagram.com/lupe.lo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