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오는 길, 그 험난한 길
이번에는 진짜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너번의 화유때보다 훨씬 진한 붉은 선..
금세 옅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 분명함에 나는 .. 안도했다.
남편은 그 날 저녁 꽃을 사서 퇴근했고, 세식구는 근사한 곳에서 식사도 했다.
기쁜 소식이라는 뜻의 ‘복음’을 태명으로 지었고, 그렇게 우리는 ’네식구 됨’을 확신하며 축하했다.
인우때도 임테기 두줄을 본 날 부터 물맛이 비려.. 나의 임신을 계속 실감할 수 밖에 없었는데.. 둘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시간마다 오는 굉장한 허기가, 급격한 체력저하와 엄청난 졸음이.. 내게 끊임없이 ‘임신’을 상기시켰다.
”와 이건 정말 임신이다!“
물론 또 연해질까봐, 또 사라져버릴까봐.. 나는 하루에도 다섯번씩 임신테스트기를 했고, 점점 더 진해지는 두 줄에 안도하곤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임신테스트기를 하니, 인우는 내가 테스트기만 꺼내도 “뉴뉴 동생?!”하며 눈을 반짝인다..)
그러다 ‘아 이쯤 되면 아기집 보이겠다’ 싶은 날 산부인과를 갔다. 혼자 가겠다고 했음에도 남편은 굳이 굳이 외출을 쓰고 병원을 동행했고, 그렇게 대기 내내 우리는 아기집 볼 생각에 설레여 있었다.
진료실들어가자마자 의사선생님께서도 ”인우 동생 한번 보자!“하셨는데..
아기집은 없었다.
피검사를 하자 수치는 임신수치로 나오지만, 턱없이 낮았다.
선생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더블링이 되는지 보자고 하시며, 이틀 뒤 다시 내원하여 피검사를 해보자는 말씀만…
진해지고 있으니 괜찮겠지?라는 긍정회로를 돌리며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이틀 후 피검사 결과..
다행히 더블링은 됐지만 딱 더블링만 된 숫자. 여전히 주수에 비해 낮은 숫자..
인우임신땐 호탕하게 ”축하드려요!“하셨던 선생님이 말끝을 흐리신다.
”임신은 맞는데..“
일주일 뒤 오라고 하셔서 그렇게 진료실을 나오려다.. 다시 선생님께 가서 “정말 임신이 맞나요?”했더니 맞다고는 하시지만.. 3년전의 그 호탕함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선생님의 불안함이 내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때부터 임테기에 대한 집착은 더 심해져서.. 하루에도 여러번 임테기를 했다.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더이상 진해지지 않는 두줄을 보며.. 남들은 다 역전해야하는 시기에도 여전히 대조선보다 옅은 선을 보며.. 또 한번의 이별을 준비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열심히 자라고 있을 복음이를 내가 먼저 포기하면 안되기에, 그런 생각을 떨치도록 노력했다. 괜찮을거야. 튼튼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거야.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매일 임테기를 하며 ‘적어도’ ‘연해지지 않음’에 안도하며 살던 중,
팬티에 피가 묻어나버렸다.
사무실에서 부리나케 달려온 남편과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는 다른 병원을 방문했다.
내가 인우를 출산한 병원이기도 했다.
의사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피검아닌 초음파를 먼저 보자고 하셨는데..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오늘도 안보이면 정말 안되는데. 오늘은 아기집 보여야하는데.. 이번엔 정말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바들바들 떨리던 중..
“엄마 여기 아기집 있네요!!! 아주 동그랗고 선명하네요!“
하는 선생님의 말에 울어버렸다.
인우가 연두였던 시절, 심장소리를 듣고도 나지 않던 눈물이.. 화면으로 보이는 둘째 아기집 모습에 왈칵 쏟아져버렸다. 내심 이별을 예상하고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잘 자리잡았다고 하니.. 안도감과 미안함이 뒤섞여 눈물로 흘렀다.
크게 확대하니 심장도 옅게 보였다. 5주로 추정된다 하시며, 다음번 진료때는 심장소리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혈은 조금 했지만, 사실 임신초기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피고임도 없고 자궁도 깨끗해서 괜찮다고도 하셨다. 혹시 모르니 그래도 유산방지주사를 놔주시겠다 하셨고, 임신확인서도 발급받았다.
임신확인서를 또 받다니.. 이제 진짜 임산부라며 기뻐했던 것도 잠시.
다음 날 새벽, 나는 유산을 했다.
철철흐르는 피의 양에 바로 알 수 있었다. 굳이 병원을 가서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내 몸에서 나오는 그 많은 피와 잔여물과 함께, 아기를 또 보내야했다. 나의 기대감, 설렘, 기쁨, 그 모든 감정들까지 다..
그리고 오늘 오후엔 생리팬티에 흡수되지 못하고 덩그러니 올려져있는 아기집을 보았다. 불안함에 인터넷을 뒤지고 뒤질때 본.. 배출된 아기집 형태와 정확히 동일했다.
억장이 무너지고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지만 첫째가 있는 상황에선 슬픔도 사치다. 차마 그 팬티를 어찌하지 못하고.. 조용히 접어 변기에 올려놓고 나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보낸 후..
아기가 밤잠에 들어가자마자 방에서 나와 퇴근한 남편에게 아기집을 보여주며,
나는 그제서야 목놓아 울었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
그 말만 반복하며 얼굴을 움켜잡고 엉엉 울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이, 아침부터 꾹꾹 눌러왔던 그 거대한 슬픔이 그제서야 나를 덮쳐왔다. 나를 짓눌렀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존재, 인우.
정신을 쏙 빼놓으니 슬퍼할 순간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인우를 보고 있으면 이 생명이 지금껏 건강하게 자라왔음이 기적처럼 느껴져서.. 너무나 감사하다. 그래서 그냥 고맙다. 다 고맙다.
그 고마움이 내 슬픔을 잠재운다.
내 슬픔을 위로한다.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왜 내게 복음이를 주셨다가 도로 가져가셨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짜피 내 신앙의 여정은.. 시작부터 “왜“ 투성였다.
“왜” 나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는지
“왜” 나는 이불 속에서 숨죽이며 눈물흘리며 찬양해야했는지
“왜” 나는 주일마다 가시방석같은 예배를 드려야했는지
그래서 또 하나의 “왜”가 추가되었을 뿐..
“도대체 왜..”라는 그 물음이 더이상 내게 상처를 주거나 아픔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니 내가 왈가왈부할 영역도 아니다.
그저.. 가장 좋을때에 인우를 주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우를 건강하게 보살펴주신 그 하나님이.. 또 가장 좋을 때에 우리 가정에 새 생명을 허락하시고 열 달을 소망으로 품게 하실 것을 믿는다.
나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니까.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