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og's Purpose. 그저 지금을 사는 거야.
원작의 제목은 <A Dog's Purpose>, 한국에선 <베일리 어게인>으로 개봉한 영화 베일리 어게인을 봤다. TV를 보다 우연히 베일리 어게인을 소개하는 광고 영상을 봤고 나의 흥미를 끌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보고 싶다는 마음을 느끼게 했다. 그 광고는 적어도 나에겐 성공했다. 아, 실패였을 수도 있겠다. 나는 IPTV에서 보지 않고 Youtube 영화에서 봤으니 말이다. 이 작품의 원작은 소설이다. 미국에서 출판된 이 작품은 뉴욕 타임스에서 52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원작의 제목에서 보면 영화의 중심을 이해할 수 있다. 강아지의 입장에서 보는 삶의 의미, 그것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내가 재밌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두 가지다.
강아지의 입장에서 영화가 전개되는 점
환생을 강아지에 적용시킨 점
주인공 강아지의 이름은 베일리, 그가 만나게 된 견주는 이든이다. 베일리와 이든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산다. 이든은 베일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바로 '함께 하는 것'이다. 이든은 언제나 베일리와 함께 였고, 둘은 매일을 행복하게 보냈다. 그러던 일상에 변화가 온다. 이든이 집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때 베일리의 대사는 깊게 남는다.
"인간들은 참 복잡해. 개들이 이해 못 하는 일들을 한다니까. 이별 같은 일."
이든과 함께여야 하는 베일리는 이든이 집을 떠난 후로 무기력에 빠진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노는 것도 재밌어 하지 않는, 힘없는 강아지로 나이를 먹는다. 결국 베일리는 죽음에 이르고, 눈을 감기 직전에야 이든을 만난다. 슬픔과 안도감을 뒤로 한 채, 생을 마감한 베일리는 환생한다. 첫 번째, 두 번째 환생은 생략한다. 세 번째 환생에서 베일리는 주인으로부터 버려진다. 유기견의 삶을 맞이한 것이다. 떠도는 삶을 이어가던 베일리는 어느 날 익숙한 냄새를 맡는다. 본능적으로 그 냄새를 따라간 베일리는 이든과 함께 살던 집에 이른다. 베일리의 모습은 전혀 달라졌지만, 베일리는 베일리였다. 늙은 이든을 알아본 베일리는 다시 그와 함께 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든은 베일리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의 모습이 가여워 함께 있기로 결심한다. 홀로 늙은 이든에게는 슬픔이 서려 있었다. 베일리는 그 이유를 이든이 홀로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후각을 이용해 이든의 첫사랑, 한나를 찾는다. 베일리는 한나를 이든의 집으로 데려왔고, 그 둘은 남은 생을 함께 하기로 한다.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든과 한나는 함께여서 행복했고, 베일리는 그런 그들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베일리는 자신이 예전의 베일리라는 것을 이든에게 증명하려 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추억을 이용해서 말이다. 이든이 마침내 베일리를 알아본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개로 살면서 깨달은 건 이거야. 즐겁게 살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서 구해주고, 사랑하는 이들을 핥아주고, 지나간 일로 슬픈 얼굴 하지 말고, 다가올 일로 얼굴 찌푸리지 마. 그저 지금을 사는 거야. 지금 이 순간을. 그게 개가 사는 목적이야."
영화는 위의 대사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사람이 아닌 개의 시선으로, 베일리의 목소리로 이 메시지를 들으니 더욱 묵직했다. 개가 사는 목적은 그런 것이다. 매일을 행복하게 사는 것. 함께 하는 것.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느낀 것이 함께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홀로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다. 동감하는 바이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일 때, 비로소 행복한 것이다. 나도 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행복하게, 함께, 그렇게 사는 것. 그것이 나의 목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