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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Jan 26. 2024

옷을 벗고 춤추고 싶다

미셸 푸코의 <광기>

푸코의 광기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비정상'에 대한 역사를 파고든다. 푸코는 동성애자였다. 70년대만 해도 동성애는 정신질환의 하나로 진단되었다. 푸코는 정말 자신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고민을 해오던 중 정신병동의 연구자로 참여하게 된다. 이때 정신병동에 그가 연구한 것은 정신병의 원인이나 치료가 아닌 <광기의 역사>이다. 미셸 푸코는 정신병동에서 '광기'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존재했으며 어떤 위상으로 변화했는가에 대해 연구한다. 광인은 누구인가? 광인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에 대해 의문을 품고 광기가 진정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역사적 문헌을 통해 파헤친다.   


푸코에 따르면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광기는 이성으로는 얻지 못하는 신비로운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광기에 대한 경멸과 위협이 있었으나 지금과 같은 위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광기는 문학작품에서 어릿광대, 익살꾼등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삶의 진실을 말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기가 되면서 광기는 이성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구분되었고 반 사회적 범죄로 여겨졌다. 미친 사람들은 감금이 되고 처벌을 받게 된다. 당시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광인뿐 아니라 거지, 범죄자 등은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함께 감금하고 처벌했다. 근대에 이르러 산업혁명의 발달로 일손이 부족하게 되자 광인을 제외한 범죄자들은 일을 시키기 위해 석방되었고 수용시설에는 광인만 남게 되었다. 이때부터 광기는 감금이 아닌 치료의 대상이 되었다.  


진정한 이성은 어떻게든 광기와 연루되어 있고, 광기가 내는 길로 마땅히 접어들게 되어 있다.  -『광기의 역사』미셸 푸코


그러나 광기는 현대의 정의처럼 치료를 해야 하는 질병 그 자체가 아니다. 고야, 반 고흐의 사례에서 보듯이 광기는 결국 이성을 드러내게 된다. 고야는 집에 은둔한 채 '검은 그림 연작'을 그리며 인간 내면의 어두운 진실을 드러냈으며, 반 고흐는 살아있는 자연의 에너지를 집어삼킬듯한 화풍으로 담아냈다. 이처럼 광기는 '광기'그 자체가 아니라 광기라는 과정을 통해 이성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보이지 않는 인간의 진실, 역동하는 세계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미쳤다'는 것은 그 시대의 사회(이성) 구조가 만들어낸 하나의 관점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한때 진실을 말하던 신비로운 존재에서 반사회적 범죄로 격리되었다가 지금은 치료의 대상이 된 광기. 그 광기는 현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전의 질서의 가시적 요새였던 것이 이제 우리 의식의 성으로 변했다는 것으로 우리가 인정하기만 한다면,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거의 변함없는 지극히 상징적인 처지이다.  -『광기의 역사』미셸 푸코


푸코는 광기를 항해와 관련된 이미지 자료로 설명한다. 15세기에는 광인들을 배에 태워 도시에서 추방했고 배에 갇힌 광인들은 불확실한 바다로 들어간다. 광인들은 어디로 도착할지 모른 채 떠나간다. 만일 항로에 목표가 없다면, 항해를 할 만한 행해 기술이 없다면 떠나온 항구와 도착할 항구사이에서 엄청난 혼돈에 시달리게 된다. 광인들은 가장 자유롭지만 가장 개방적인 항로에 갇히는 꼴이다. 광인 자유로우면서도 불안한 처지에 놓이게 돠는것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항로에 갇히는 것이 두려워 항해를 하지 않는다면 한때 우리를 요새처럼 보호하던 기존의 질서는 '의식의 성'이라 부르는 감옥이 되어 자아를 감금한다. 그러니 '의식의 성'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항해를 준비해야 한다.


(c) 모린 플레밍 홈페이지 maureenfleming.com


나의 광기


20년 전 보았던 <애프터 에로스>의 공연 장면이 몸에 각인되어 있다. 한명의 무용수가 얇은 베일 하나만 몸에 두른 채 누드인 채로 춤을 추는 공연이었다. 아름다운 몸,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신비로우면서도 황홀했다.


옷이라는 것은 자기 보호의 도구이자 사회적 관계 맺기의 장치이다. 어쩌면 옷은 날 때부터 우리를 보호하면서도 구속했던 첫 번째 도구일 것이다. 옷은 몸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본래의 자신을 감추기도 하고 과장되어 보이게도 한다. 아마 그런 이유로 젊은 시절에 맨살이 나오는 연극과 공연에 끌렸던 것 같다. 벗은 신체는 억압된 금기를 자극했다.


내가 청년기를 보내던 90년대는 'X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을 시절이었다. 이때 젊은 세대들은 기성의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며 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말하는 것이 소위 상식인 시절이었다. TV에서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대한 찬반토론이 흔한 주제이기도 했다. 나는 여자들에게 금기된 것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 생물학적 조건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더 나아가 사회가 한 인간에게 짓는 한계를 벗어나고 싶었다.


위험한 레저를 즐겼다. 번지점프를 하고 래프팅을 했다. 억울한 일을 참지 못했다. 내 지갑을 훔쳐간 소매치기를 쫓아가 잡기도 했고 승차를 거부하는 택시기사와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가기도 했다. 정해진 진로를 가는 것을 거부했다. 전공을 바꾸어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인문학을 전공했지만 컴퓨터를 배워 IT회사에 취직했고 직장 내에서도 보직을 넘나들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사람을 사랑한 적이 있다. 다 끝난 사랑을 죽은 아이의 시체를 붙들듯 놓아주지 못했다. 열심히 일궈 쌓아 올린 것들을 한순간 허물어 버린 적이 있다. 내 가치관, 신념을 부순 적이 있다.


과연 이런 광기들은 무엇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일까? 나는 세상의 오만하고 무례한 통념을 거부하고 싶었다. 겉치레는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세련되게 거짓말하는 사람을 혼내 내주고 싶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싶었다. 허례허식을 벗고 싶었다. 그렇다. 내 광기는 옷을 벗는 것이다. 내게 허물 같은 그 옷을 벗어내는 것이다. 나는 옷을 벗고 자유롭게 춤추고 싶다. 나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싶다. 기쁨과 슬픔을 차별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c) 모린 플레밍 홈페이지 maureenfleming.com



광기를 통과하기 위해


인간이 광기 속에서 자신의 진실을 발견하므로, 치유가 가능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진실과 광기의 바탕으로부터다. -『광기의 역사』미셸 푸코


파괴되지 않는다면 생성은 일어나지 않는다. 창조는 파괴를 통해 일어난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순간 공포가 엄습한다. 그것은 한 번의 객기와는 다르다. 술김에 하는 치기와는 다른 것이다. 은밀한 이성의 광기는 내 의지가 하는 것이다.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의 광기는 고통스럽다. 내 앞에 불길에 맞불을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 타서 죽어 버릴 수 도 있다는 공포가 오지만 결기를 부려야 하는 순간이다. 물러설 곳이 없을 때 할 수밖에 없는 최전선의 결정이다. 멈추면 다 망쳐 버린다는 것을 이성이 자각했기에 저지를 수 있는 오기이다. 차가운 이성이 보여주는 섬뜩한 칼춤이다.  


<애프터 로맨스>의 무용가 모린 플레이밍은 어떻게 옷을 벗고도 저렇게 우아하고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에게 춤은 무엇이었을까? 모린 플레이밍은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그녀가 나신으로 춤을 추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고통으로부터의 극복이었다. 무대의 조명은 그녀를 사랑스럽게 비춘다. 그녀를 조심스레 비춘다. 그 빛은 그녀를 더욱 고혹적으로 만들어 준다. 무대의 빛을 담당한 조명감독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누구보다도 그녀의 몸짓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사랑하는 이가 빛을 비춰준 것이다. 그녀의 몸은 날것처럼 비릿하지도 꾸민 것처럼 거북하지도 않았다. 그저 바람과 함께 나는 새 같았다.


내가 어린 시절 버지는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마다 기념사진을 찍어주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에서 열리는 무용 발표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88 올림픽 등 중요한 국제 대회를 몇 년 앞두고 있는 때여서 우리 팀은 '올림픽'을 주제로 안무를 구성하였고 나는 체조선수의 역할을 맡았었다. 9살 소녀는 아빠 앞에서 포즈를 바꾸어 가며 재롱을 부렸다. 아빠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딸내미의 동작을 보며 눈웃음을 흘리셨을 것이다. 린다 플레밍에게는 조명을 비추던 남편이 있었고, 9살 그 시절의 나에게는 사진기 셔터를 누르던 아버지가 있었다.


옷을 벗고 춤추었던 적이 있다. 내면을 드러내는 감정글쓰기 수업에 참여했었다. 모든 것을 샅샅이 드러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감춘 것도 없었다. 감정을 터뜨려야 했을 때는 터뜨렸고 때가 아닌 것들은 남겨두었다. 그때 옷을 벗고도 수치심이 들지 않았다. 가볍고 자유로웠다. 그때 옷을 벗고도 춤을 출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글을 응원하고 지지해 준 사람들의 침묵의 음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모를 비난이나 수군거림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세상을 믿었다. 어린아이가 세상을 신뢰하며 걸음마를 배워가듯이 내가 넘어지면 손잡아줄 '너'가 있다는 것을 믿었다.


지금도 글을 쓰며 옷을 조금씩 벗고 있다. 거추장한 옷을 입고 춤을 출 수는 없다. 하고 싶었던 말도 조금씩 하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미숙함은 드러낼수록 성숙해진다. 미숙함을 드러낼수록 내 그릇의 크기를 알게 한다. 그릇에 무엇을 어떻게 채울지 더 분명하게 보인다. 미숙함을 드러낼수록 가벼워진다. 많은 생각 속에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런 자기 인식은 삶을 단순하고 가볍게 한다. 이제 알겠다.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사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가벼운 사람이다. 그것이 삶이라는 무대에서 옷을 벗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을 진지하게 마주치며 나아갈 때 그 몸짓은 아름다운 춤이 된다.


옷을 벗고 춤춘다는 것이 미친 짓은 아닌 것 같다. 불가능한 일이라 치부했던 생각이 이를 어렵게 한다. 어쩌면 어려운 과제라는 생각이 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이 발목을 잡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두려움이 느껴진다면 이제는 기억할 테다. 카메라 렌즈로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너'의 눈빛을. 파괴될 것 같은 공포감에 압도될 때 알아챌 것이다. 따뜻하고 다정한 조명이 내게 비추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삶 속에서 춤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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