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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Feb 19. 2021

함영대,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인문 고전, 2014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오로지) 목차(뿐)

마음 한 구석이 참 개운치 않다. 독서 감상을 기록하기로 마음먹고 첫 번째로 쓰는 글이 무척 비판적인 말로 가득한 글이 될 것 같다. 오늘 이 글을 통해 나를 보는 사람들은 어쩌면 내가 남을 비판하길 좋아하며 이를 통해 똑똑한 사람이 된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인격체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혹여나 이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고생했을 작가님 혹은 출판사의 관계자 분들이 이 글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대해 가능한 명료하게 밝히는 것이 어쩌면 그분들께 더 좋은 피드백이 될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글을 시작해 본다. 이 글은 한 독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도서(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418688)



내가 이 책에서 남길 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목차'밖에 없다


이 책은 20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 주제에서 고전적인 다섯 개의 문헌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져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20가지 주제는 모두 무척 재미있는 화두들이다.

삶의 자세/인간 소외/정보화 사회/과학 기술과 과학철학/환경/생명 윤리/개인과 사회/갈등과 합리적 의사 결정/법과 도덕/여성/학문과 진리 탐구/교육/인간과 경제/문화/역사/근대 이성 비판/예술/소수자와 인권/국제 관계/언어와 언론


게다가 각 주제별로 소개하는 다섯 권의 문헌 또한 정말 각 영역에서 고전 중의 고전들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책의 목차를 보고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 두 가지였다.

1. 다양한 주제에 걸친 총 100권의 문헌의 요약을 읽어볼 수 있다. 혹은 적어도 각 문헌의 주제와 핵심 주장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수 있다.
2. 각 주제별로 생각해볼 만한 질문들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외국에서 해외배송으로 이 책을 구매해야 했기에 오로지 목차만 보고 책을 선택해야만 했다. 책이 도착했을 때, 나는 이 책을 읽어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만약 서점에서 이 책을 마주쳤었다면 결국 나는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책에  가지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 문헌에 대한 해제가 얕고 불충분하다.

둘째, 각 주제에서 우리에게 주는 질문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다.

셋째, 책의 구성이 난해하다.

넷째, 문장이 읽기 난해하고 무미건조하다.

내가 이 책을 구매한 목적, 아니면 책의 완성도, 어느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 네 가지 한계점은 한 권의 책으로서 매우 치명적인 단점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사지 않았어도 좋았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우선,  책은  고전을 충분히 소개해주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저자가 감히 다른 영역의 고전에 대한 무리한 해제를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만약 이 책이 시도한 것처럼 전문영역 단위로 묶어 고전을 소개하고자 했다면, 각 전문영역의 전문가들을 두루 불러 모아 한 권의 책을 엮어냈어야 했다.


저자는 동양학, 학문학 연구가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제시한 대부분의 주제는 그의 전문 영역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 반대로, 그 주제에 포함된 다섯 권의 문헌은 해당 주제에서 고전 중의 고전이요, 그 글을 써낸 이들은 해당 영역에서 학자 중의 학자다. 차라리 이 책의 저자가 한 개인으로서 각 문헌에 대해 갖는 자신의 감상 혹은 생각을 써냈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여러 분야에 대해 비전문가로서 갖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마치 동양학·한문학 전문가가 자신이 몸담은 영역에서 통용되는 지식 그리고 문제를 사유하는 방식을 무려 스무 개나 되는 다른 영역들로 무리하게 확장시킨 결과물로 보인다.




다음으로, 각 주제에서 저자는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문답을 제시한다. 즉 각 주제와 관련된 생각 해 볼만한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들은 대답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왜냐면 질문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다. 그래서 대답하기 어렵고, 대답을 하면서도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것이 많다. 마치 대어를 낚는다며 대양 한가운데에 나가서는 바닷물 표면에 뜰채를 휘두르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미국 패권의 몰락>을 소개하는 절에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패권은 몰락하는가?" 이는 물론 국제관계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논의를 구성하는 하나의 질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책의 해당 절만 읽고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충분한 사전 지식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나는 이 질문 자체가 해당 논의에 대한 저자의 불충분한 이해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저자가 정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책 혹은 관련된 논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아마 이렇게 질문했을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패권이란 무엇인가? 패권은 영원한가 혹은 변화하는가?" 즉 먼저 패권에 대한 정의를 이끌어내고, 그 다음에 그것의 속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제관계학 내에서도 패권은 단일한 정의를 가진 개념이 아니고 학자 혹은 관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 개념이며, 어떤 정의에 기반하는가에 따라 속성에 대한 논의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이 책의 구성 또한 무척 난해하다. 아무래도 각각의 문헌을 어떻게 소개해야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한 걸음 더 사고해볼 수 있을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각 문헌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문제 제기, 내용 개괄, 한 구절 경구, 문답 하나, 답변의 길잡이, 저자 소개, 함께 읽어볼 만한 유사 문헌

 번째로, '문제 제기, 내용 개괄,  구절 경구'까지  부분은 마치 불규칙하게  덩어리로 나누어져 있는 밀가루 덩어리들 같다. 무려 100개의 문헌을 소개하면서도 '문제 제기'부분에서, '내용 개괄' 부분에서, '한 구절 경구' 부분에서 각각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관한 규칙이 없다. 게다가 이 세 부분은 사실 모두 "문헌 요약"에 해당하는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길이는 길고 구성은 참 불규칙한 세 덩어리로 나누어져 있지만 결국은 중복되는 내용이다. 이렇게 불필요하게 긴데다 불규칙하게 나눠져 있기까지 한 텍스트는 읽어 봤자 의미 있게 활용하기가 어렵다.  번째로, '문제 제기' '문답 하나' 불필요하게  개로 쪼개져 있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저자가 해당 문헌을 통해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그 기능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번째로, '저자 소개'  문헌 소개의  처음에 나와 있어야 했다. 독자가 한 가지 문헌에 대한 압축적인 소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 책의 배경이나 저자에 대한 소개와 같은 큰 맥락이 먼저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문장은 읽기 어렵고 무미건조하다.  책의 어떤 문장들도  심장을  빨리 뛰게 하지 못했고, 어떤 문장들은 심지어 안타깝게도 저자에 대한 매력을 반감시킬 정도였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물론 모든 글이 좋은 글은 아니다.   정리되고 체계적이며 설득력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이 공감을 얻는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목차를 지나 본문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여기서부터 나오는 글을 쓴 작가와 서문을 쓴 작가가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만약 독자가 다양한 주제에 관해 견문을 넓힐 수 있게 돕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이 책의 콘셉트라면, 477페이지에 나오는 '일치감치 소수 병력만을 파견하면서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실리를 획득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세 번째 규모로 대단위 병력을 파견하고도 명분과 실리 획득에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국제 관계에는 나라 간의 역학 관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수준 높은 외교력과 이를 뒷받침할 국력 구비가 필수이다'와 같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개인의 생각을 마치 이미 정립된 보편적 사실인 것처럼 제시해서는 안되었다. 이것은 고전 문헌 소개라는 명분으로 독자들의 경계를 늦추고, 저자 개인의 생각을 들이미는 행위로 느껴진다. 나는 이러한 지점들에서 저자를 향해 격한 반감이 들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유일하게 남길 만한 부분은 바로 '목차'다. 이 책의 목차는 현대 사회의 화두가 되는 스무 가지의 주제를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각 주제와 관련된 고전 서적을 정리해 둔 '추천 도서 목록'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이 책을 사지 말고, 목차에 정리되어 있는 책들을 직접 읽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 드러나는 관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스스로 직접 생각하고 정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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