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별반짝 May 28. 2022

정말 사람은 안 변할까?

태어나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우리를 떠올리며

  “사람은 안 변해”라는 흔한 말이 듣기 거북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얼마 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떨던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이기주의 끝판왕의 행태를 보이는 중국인 동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해 온 친구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 동기는 인정 욕구와 성공 욕망의 노예로 사느라 시시각각 떼를 쓰고 사람들을 도구화하다 못해 끝내는 교수님의 서명까지 위조하는 만행마저 저질렀다. 친구는 그런 사람과 ‘동기’라는 운명의 실로 엮여버리는 바람에 몇 년째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야, 됐다, 됐어. 신경 쓰지 말고,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걔하고 무슨 말도 하려고 하지 마. 어차피, 사람은 안 변해.”


  다른 친구가 따뜻한 공감에 쿨한 해결책을 곁들이며 그 친구의 등을 토닥였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할 것 없는 대화였다. 그날 딱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었다면 그건 다름 아닌 나였다. 이상할 것 없는 대화를 자꾸만 되감아 곱씹어보는 나 말이다.


어차피, 사람은 안 변해.


  왜였을까? 자꾸만 “어차피, 사람은 안 변해”라는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이유를 찾기 위해 마음을 뒤적여보고 나서야 마치 그 말이 나에게 하는 말 같이 들려서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친구가 나를 겨냥해 던진 말처럼 들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그 말에 따르면 나 또한 변할 수 없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두려워서’였다.


  정말 사람은 안 변할까? 만약 사람은 안 변하는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나 또한 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사실 많이 변했다. 많이 발전했다. 마치 비 온 뒤에 죽순이 하루에 50 센티미터라도 자라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쑥 자라났다. 그리고 매일매일 계속 자라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나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러니까 초등학교 무렵부터 시작해 지금으로부터 2년여쯤 전까지, 무려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나는 늘 삶이 버거웠다. 마치 나를 둘러싼 공기가 산성을 띠고 있어서 피부를 따갑게 찔러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 눈빛 한 찰나, 표정 한 순간이 모두 심장을 쿵 내려앉게 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도 긍정적인 감정도 나에게 무한대로 증폭되어 다가왔다. 감정과 감각이 모두 예민한 아이였던 것 같다.


  예민한 기질은 사람들과의 건강한 소통을 가로막았다. 친구를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과 안정적인 관계를 꾸준히 이어나갈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 제때 배워야 할 배려나 공감도 배우기 어려웠다. 불안정한 관계는 다시 예민한 기질을 증폭시켰다. 악순환이었다. 이 거대한 악순환이 나라는 작은 인간을 커다란 검은 상자 안에 가두어 버렸다.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기분이 끝없이 이어졌다.


  인간관계의 악순환 속에서 전환점이 되어 주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었다. 배려할 줄 모르고 공감할 줄도 몰라서 투박하고 제멋대로인 나의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나도 모르는 나의 장점을 발견하고 나를 좋아해 주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자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이어보려 했던 남자친구들이 있었다. 누구든 허투루 대하지 않아서 나도 세상의 먼지가 아니었음을 알게끔 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닮고 싶어서 자꾸만 주위를 맴돌게 되는 멋진 롤모델들이 있었다. 너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내 눈을 보며 말해준 선생님도 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와 그 단단한 눈빛을 잊지 못한다. 나는 이들이 있어서 검은 상자의 벽을 깨고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안 변해’라는 말이 두렵다. 이 명제가 참이라면 나는 결국 변할 수 없을 테니까.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고 착각한 채 살아가다가 언젠가는 내가 여전히 그 검은 상자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닫는 날이 올 테니까. 나는 많이 변했는데. 많이 발전했는데. 그리고 앞으로 더 계속 발전하고 싶은데 말이다.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은 참 쉬운 말이다. 내뱉기 쉽다는 건 둘째 치고, 무엇보다도 세상살이를 쉽게 만들어준다. 살면서 우리가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은 남을 포기하기 위한 쉬운 이유가 되어준다. 그리고 우리 자신 또한 스스로의 관성을 못 이길 때 이 말 뒤에 쉽게 숨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우리가 ‘사람은 안 변한다’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사람은 안 변한다’라는 말 때문에 좌절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 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 성장하는 동물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함영대,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인문 고전, 20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