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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Feb 22. 2021

중국 소프트파워의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

북경의 한 채식 레스토랑에서 내가 본 것 그리고 생각한 것

우리는 중국 문화의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나는 중국 문화가 오랜 역사로부터 오는 깊이와 매력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매력이 얼마나 '스며들 수 있을까'하는 영향력의 측면에서 보면 나는 중국 문화의 영향력에 상당히 회의적인 편이었다. 울긋불긋한 붉은색과 화려한 느낌으로 대표되는 중국 문화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는 있을지언정 이를 접한 사람들의 가슴에서 진심 어린 경탄을 끌어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작년 겨울 나는 이러한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불어닥치는 겨울바람을 피해 우연히 들어간 북경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서였다.


오늘 이 글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선 앞부분에서는 채식 레스토랑에서 내가 본 것들을 소개하고, 다음으로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소프트파워의 발전 가능성을 고찰해 볼 것이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서는 각자 관심을 갖는 내용만 골라서 읽으셔도 되고, 혹은 글의 흐름을 쭉 따라가며 중국 소프트파워의 발전 가능성을 함께 고찰해 봐 주셔도 좋겠다.




그 날 우리가 원래 가려던 것은 다른 음식점이었다. 그러나 추위에 떨고 길을 헤매며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절망한 우리는 무작정 다른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고, 그것이 바로 이 채식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은 북경의 중심 1환과 이를 둘러싼 2환의 사이에 위치한 "소호 상두"라는 쇼핑몰 1층에 있다. (지도 출처=구글 지도)


그랬기에 이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가게 안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다소 당황했다. 예상치 못하게 무척 개성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따뜻한 조명, 은은한 향기, 입구에 놓여있는 불상과 공물. 우연히 들른 레스토랑이 이토록 강렬하고 섬세하게 꾸며져 있을 줄이야.


草木禅房养生素食(朝外店)
http://www.dianping.com/shop/G69aFVTNyjTBroxy
레스토랑 입구에는 불상과 공물이 놓여 있었고, 모든 자리는 살랑이는 커튼을 내리면 독립된 공간으로 변했다. (사진 출처=따종디엔핑)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자, 그녀는 살랑이는 커튼을 내려 우리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곧 뜨끈하게 데워진 보온 방석을 가져와 우리의 의자에 깔아 주었다. 쑥 찜질팩이라고 했다. 또 뜨겁게 데워진 두툼한 물수건을 가져와 우리가 언 손을 닦고 녹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따뜻한 꽃차로 몸을 녹이며 메뉴를 골랐다. 당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메뉴로는 각각 1인당 398위안, 498위안, 698위안인 코스 메뉴가 있었다. 우리는 그중 398위안(한화 약 6만 8,000원)의 메뉴를 골랐다.


우리 자리 위 천장의 아름다운 장식, 메뉴를 고르기 전에 이미 제공된 꽃차와 허기를 달래줄 간식거리


이 음식점의 메뉴가 정말 흥미로웠다. 음식 이름 위에 네 글자씩 글귀가 적혀 있었다. 글귀와 메뉴를 연결 지어 보면 마치 한 편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기뻐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일 년 사계절의 순리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하며, 우리네 삶의 갖은 감정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했다. 과연 어떤 글귀와 메뉴였을까? 메뉴 사진과 함께 하나씩 간단히 살펴보자.


코스를 고르면 해당 코스에서 제공되는 메뉴 명단을 작은 생화와 함께 가져다준다


■ 良缘喜舍: 좋은 인연에 기쁜 마음으로 (차와 음식을) 올리다
(*喜舍=희사하다. 어떤 목적을 위해 혹은 자신이 믿는 종교에 기꺼이 돈 또는 물건을 바침을 의미)

건강차(꽃차)와 중국 전통 간식거리

앞서 우리를 맞이하며 내어왔던 차와 간식에 붙어있던 제목이 바로 "좋은 인연에 기뻐하며 (차와 음식을) 올리다"였던 것이다.


因果自在: 윤회를 구성하는 인과 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제철 과일

이 제목에서 우리가 돌고 도는 윤회로부터 벗어나 신선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달콤한 제철 과일은 이 황홀한 식사의 문을 여는 느낌을 준다. 또한 마치 한 편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느낌도 준다. 물론, 불교 교리의 인과설은 복잡하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청자에 따라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百味人生: 백 가지 맛의 인생

입맛을 돋워주는 네 가지 작은 접시(에피타이저)

이 제목에 포함된 네 개의 에피타이저는 각각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의 음식일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어 "백 가지 맛의 인생"이라는 문구와 조화를 이룬다.


春华秋实: 봄의 꽃, 가을의 열매
(*이 말은 '외적으로도 아름답고 내적으로도 충실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비파와 배에 뭉근히 끓인 제비집, 통곡물 버섯죽

제비집은 봄을 상징하고, 곡물은 가을을 상징하는 것 같다.


福和祥贵: 복, 화, 상, 귀
(*행복의 '복'; 조화/화합의 '화'; 길상의 '상'; 부귀의 '귀')

블랜디에 구운 버섯

이 코스의 메인 격의 요리다. 테이블에 서빙한 뒤 블랜디를 붓고 불을 붙여 화려한 식사의 정점을 찍는다.


福满乾坤: 복이 가득한 세상
(*乾坤=건곤. 여기서는 하늘과 땅, 즉 '세상'으로 해석할 수 있음)

강황 카레 훠궈

갖은 버섯과 야채가 풍성하게 들어가 있어 풍요로운 느낌을 주고, 샛노란 색은 마치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欢喜慈悲: 자비로움에 기뻐하다

특색 수제 면 요리

이 면 요리에는 토마토가 들어가 가을 노을과 같은 붉은색을 띠고 있다. 조그만 전이 담겨 있는 감 모양의 그릇 또한 예쁜 주황색을 띠고 있어 색의 조화를 이룬다. 곡식——감——주황색의 조화가 가을과 추수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자비로움에 기뻐하다'라는 제목에 있는 '자비로움'이란 아마도 일용할 양식을 주신 자연의 자비로움을 의미하는 것 같다. 또한 오늘 전체 코스의 맥락에서 보면 이 음식은 에피타이저(봄)와 메인 메뉴(여름)를 지난 시점, 즉 사계절 중 가을 무렵에 해당되는 메뉴이기도 하다.


四季回甘: 사계절 그 이후의 달콤 씁쓸한 뒷맛
(*回甘이란 뒷맛이 달콤한 음식처럼, 고생 뒤에 그 무렵을 되돌아보았을 때 느끼는 아름다움 혹은 그리움의 감정을 의미한다)

매장에서 직접 만든 디저트

이 날 제공된 디저트는 매장에서 만든 요거트였다. 꿀, 잼, 견과류가 함께 제공되었다. 흰 요거트와 둥근 그릇의 조화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는 마치 겨울의 흰 눈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둥글고 완전한 것, 끝 혹은 완성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오늘 접한 한 편의 이야기의 마무리로서 손색이 없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주문한 코스가 끝났다. 어떤가?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듣는 이에 따라 이 식사를 통해 사람 사이 만남과 헤어짐을 연상할 수도, 일 년 사계절의 순리를 연상할 수도,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어떤 이야기를 연상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한 편의 식사를 통해
'우리 삶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를 한 번 돌아보게 된다는 것


식사를 마칠 무렵, 종업원이 다가와 책갈피를 하나 뽑아볼 것을 제안했다. 책갈피를 뽑고 보니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종업원과 함께 문구를 해석해 주던 점장이 우리에게 알려준다. "'생명의 가장 높은 경지는 본래와 자연으로의 회귀이다'——이 글귀는 저희 창업자의 모토예요".


식사를 마칠 무렵 선물 받은 책갈피. 生命最高境界是回归本来和自然(생명의 가장 높은 경지는 본래와 자연으로의 회귀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채식 레스토랑에서 중국 소프트파워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이야기하는가?


"생명의 가장 높은 경지는 본래와 자연으로의 회귀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채식 레스토랑 창업자의 모토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모토를 아주 충실하게 그리고 아주 완벽하게 이 레스토랑 안에 구현해놓은 셈이다. 인테리어, 종업원이 가져다준 쑥 찜질팩, 채식 메뉴, 음식을 담은 접시, 그리고 코스를 구성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경솔한 것이 없었다. 레스토랑 안의 모든 요소는 바로 창업자의 모토 아래 정갈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한 편의 식사를 통해 이러한 모든 요소를 체험하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레 만남의 기승전결, 사계절의 순리, 삶의 희로애락을 떠올리고, '우리 삶의 본질이란 무엇이었던가'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소프트파워(Soft Power)란 원래 저명한 국제관계 학자인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Jr.)가 미국 쇠퇴론에 반박하며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군사력과 경제제재처럼 위협과 강제를 할 수 있는 힘을 하드파워로, 강제보다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설득하며 호감을 사는 능력을 소프트파워로 규정했다. 그는 미국이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두 측면에서 모두 우위에 있어왔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소련, 중국, 유럽, 일본 등의 국가들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프트파워는 문화적 가치, 정치적 가치, 외교정책을 주된 원천으로 한다. 따라서 한 국가가 가진 문화적 영향력은 소프트파워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소프트파워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상대의 마음에 가 닿게끔 가공하는 능력(전달력),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이 내 이야기에 공감하게끔 하는 능력(호소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 레스토랑은 중국 안에 이미 소프트파워를 창조해낼 능력이 갖추어져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그 날 우리가 우연히 들어간 이 레스토랑이 중국에서 누군가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구현해 놓은 유일무이한 공간은 아닐 것이다. 이 레스토랑은 중국이라는 공간의 한 점이고 중국 문화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아마 이토록 아름답고 세심한 결로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할 줄 아는 이들이 중국에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중국에서 민간 차원에 존재하는 이토록 강력한 창조력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이러한 문화적 역량이 아직은 중국 국내, 그것도 대도시에만 머물러 있지만 이것이 더욱 다듬어지고 조직화되어 중국 외부를 향할 때에 중국 문화가 세계 곳곳에 스며들어갈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산업 영역과 결합될 때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아직은 민간 차원에 머물러 있는 이 역량이 중국 정부 차원으로 전이될 때 거대한 자금이 투입되고 조직적인 육성 활동이 전개될 가능성, 혹은 중국 정부의 외교적 역량이 제고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나는 원래 중국 문화의 영향력에 상당히 회의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 생각을 수정한 지 오래다. 이제 우리도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때다. 내가 우연히 들어간 한 레스토랑에서 그 가능성을 보고 돌아왔던 것처럼 오늘 나의 글을 우연히 접한 독자분들께서도 중국 문화에 관해 새로운 관점을 얻어가시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소프트파워>

소중한 식사 자리를 함께하고 사진을 공유해 주고 메뉴의 해석까지 도와 준 선배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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