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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Mar 01. 2021

평균 나이 52세 아저씨들의 술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단 한 명뿐이었던 20대 여자가 얻은 뜻밖의 위로

모임 장소는 '오렌지'라는 이름의 음식점이었다. '오렌지 한식', '오렌지 ', ‘오렌지 중식’도 아닌 그냥 '오렌지' 말이다. 도대체  파는 집인지 종잡을  없는  음식점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종잡을  없는  모임이 열렸다.


평균 나이 52세 아저씨 다섯 분과, 스물여덟 살의 여자 한 명. 그 날 저녁 모임이 이 여섯 명의 조합이었던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우리 모임에는 원래 더 많은 구성원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젊은 구성원들은 마침 일이 있어 그 날 올 수 없었고, 막내 격인 내가 우리를 대표하여 그 자리에 가야만 했다.


솔직히 가는 길에 걱정이 적잖이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다. 스스로에게 '그냥 맛있는 음식이나 많이 먹고 온다고 생각하자'라고 말을 건네며 긴장을 달랬다. 하지만 그 날의 모임은 나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는 그 모임을 통해 마음을 달래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고 왔다. 뜻밖의 힐링을 하고 온 셈이었다.


사람이 어려운 것은
내가 어려서도, 내가 모자라서도 아니고
그냥 평생을 살아도 인간은 다른 사람을 잘 모르는 것이구나


술이 거나하게 들어갔을 무렵 한 박사님께서 그 날 낮에 느낀 서운함을 토로하셨다. 낮에 한 회의에 참석하고 왔는데, 그 자리에서 내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등에 비수를 꽂는 느낌을 받으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이가 많아지면 궁금한 게 없어질 것 같죠? 더 많아져요. 아는 게 많아지니까 궁금한 게 더 많아져. 근데 사람은 정말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애".


나는 사람 관계가 어려운 것이 어느 정도는 내 탓이리라 여겼다. 내가 눈치가 없어서, 내가 유머감각이 없어서, 내가 말이 서툴러서,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내가 사람 심리에 밝지 못해서...... 그런데 나보다 삼십 년을 더 사신 박사님도 사람이 어렵다고 하신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는 늘 자리를 만들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능수능란한 분이신데도 이런 고민을 하신다는 것이다. '아, 나 때문이 아니었어... 내가 모자란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던 거야. 그냥 모두가 이런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무리 짓지 마라
네 실력을 키워라
어떤 자리에 있어도 다만 '나'라는 이유로 빛나는 사람이 되어라


옆자리의 교수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건네셨다. "중국에서 공부한 (내 전공의) 박사생이라면 반드시 중국 공산당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중국어, 영어는 툭 치면 나올 정도로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한국 정부 기관에 몸담고 계신 한 분의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그 분은 '줄타기'에 연연하지 않아 비록 직위가 높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중국 관료들로부터 존중과 대접을 받는다고 하셨다. 그분께서 가진 인품과 덕성이 그분을 직접 만나본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었다.


박사 생활을 시작하고 벌써 한 학기가 흘러갔다. 첫 학기 동안 나를 가장 고민케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의 확장에 관한 것이었다. 누구는 어떤 교수님의 이름만 들으면 "아~ 그 교수님 알지. 나랑 친해"라는 반응을 달고 산다. 누구는 "박사 졸업하고 나중에 결국 도움 주고받는 건 유학생활 때 사귄 사람들이더라고"라며 사람들과 '깊은' 관계 만들기에 열중한다. 또 누구는 "오늘 피곤하다. 어제 교수님이 또 술자리에 부르셔서 달리다 왔어"라며 '중요한' 술자리에 얼굴 비추는 데 열심히이다.


그런데 나는 저런 말들을 절대 하고 싶지 않다. 누구랑 나랑 어떤 사이인지는 우리끼리 알면 되는 일이지, 그걸 '친하다', '안 친하다'라는 액자(frame)에 끼워 남에게 전시하듯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나중에 도움 주고받을 생각 하며 사람을 사귀기보다는, 그 사람이 너무 좋아 기꺼이 도움 주고받게 되는 사람들과 사귀고 싶다. 피곤한데도 남이 불러서 어쩔 수 없이 가는 자리 말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고 열정적인 자리로 내 삶을 채워나가고 싶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 하는 내가 순진한 사람이 아닐까, 제멋대로 살려고 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아닐까 걱정했다. 그래서 그 날 교수님의 말씀이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안심할 수 있었고, 나의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대로 내 길을 계속 걸어가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밖에도 그날 식사는 평균 나이 52세 아저씨들의 화려한 수다로 가득 채워졌다. 최근 어떤 탈모약을 먹었는데 효과가 좋았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에 들어가서 마음이 정말 홀가분하다, 코로나만 아니면 어디 어디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언제쯤 갈 수 있을까, 석사 시절에 교수님과 이렇게 대판 싸웠던 경험이 있다, 요즘 오십견이 오는지 팔이 다 올라가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는 정말 좋았다. 왜냐면, '사람 사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비슷한 것이구나. 삶은 여전히 어렵고, 알고 싶지만 영원히 완전히 알 수 없을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구나. 육체는 여전히 관리해야 하고, 능력도 여전히 유한하며,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는 스스로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것이로구나. 그러니까 오늘 내가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있더라도 그게 나의 끝인 것처럼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참 귀한 자리였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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