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할머니가 아홉번 째로 낳은 자식이다.
할머니 나이로 마흔에 아빠를 가졌는데, 할머니는 그게 너무 '여러워서' 제발 떨어지라고 산에서 대굴대굴 굴렀다고 했다. 그렇게 대굴대굴 굴렀는데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한창 바쁜 모내기철에 태어난 아빠는 올해로 딱 육십이 되었다.
할머니가 생의 마지막 무렵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내가 저걸(아빠)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어. 그 때(대굴대굴) 떨어졌으면 어쩔 뻔 했어. 이 좋은 세상을 못 볼 뻔 했어. 우리 막둥이 덕분에 좋은 세상 살았어.
뱃속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던 아빠의 삶은 그 후로도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탔다. 요즘에도 작게나마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데, 육십이 된 아빠는 어느 순간부터 오르락 시절의 '왕년'을 얘기하는 '라떼'아저씨가 되었다.
물론 우리 아빠는 참 많이 빛났던 사람이다.
그 시절에 공부를 하겠다고 다리도 없었던 진도를 벗어나 도시로 유학을 왔던 것도, 영어 한 줄 못 했으면서 1년 넘게 스페인에서 무선사로 일했던 것도, 직원들을 여럿 두고 꽤 크게 광고사업을 했던 것도 참 멋진 '왕년'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또 참 많이 힘들었던 사람이다.
간판을 달다 사층 높이의 건물에서 떨어져 죽을 뻔 했던 삶, 친구들에게 연달아 사기를 당해 쫓기듯 진도로 내려오게 된 삶, 그 삶을 포기하지 않고 붙들어준 엄마를 만났지만 가족들이 인정해주지 않았던 삶, 고향에서 다시 시작해보자고 이를 악 물었지만 신용불량신세를 한참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삶. 아빠의 왕년 뒤에는 수 많은 내리락의 날들이 있었다.
나라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 같은 수 많은 내리락을 결국 이겨낸 아빠다. 그렇게 딱딱해진 아빠는 말랑말랑한 나와 동생과 엄마가 성에 안 차나보다.
어떤 좋지 못한 결과에 잘잘못을 따지고(하지만 결코 아빠의 잘못은 아닌), 으쌰으쌰 한 번 해쳐나가보자가 아니라 짜증부터 내며 분위기를 으슬으슬하게 만든다.
오늘도 역시 절임배추 작업장에서 화 낼 일도 아닌데 언성을 높이는 모습에 절레절레하면서 한 편으로는 참 짠하기도 했다.
고집불통에 가끔은 참 밉기도 한 '꼰대'아저씨지만 저렇게 악착같이 변해버린 데에는 나와 동생,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어떤 책임감, 이제는 더 이상 실패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버려서.
깊게 패여가는 주름과 검버섯 비슷한 자국들, 새치염색 한 번으로는 한 달도 못 견디는 흰머리들을 보면 짠한 마음이 울컥 들다가도 엄마에게 짜증내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울컥이 차오른다.
아빠를 보면서 내 마음도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아빠가 밉다, 밉다 하면서 왜 갈수록 나는 아빠를 닮아가는 것 같지. 내가 오빠에게 하는 행동이나 말투에 아빠의 것이 묻어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빠의 발가락 때만큼도 못 하게 용기없고 도전정신 없는 나는 짜증마저도 내면 안 될 것 같다. 언젠가 내 자식이 인터넷 일기장에 몰래 내 욕을 써놓기 전에 나는 아빠처럼 딱딱하게 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