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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엄마 Apr 28. 2019

진짜 러브스토리는 지금부터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

 오늘, 또 하나의 커플이 지옥과 천국을 넘나드는 아이러니한 결혼의 세계로 진입했다.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힘들 정도로 그 둘은 눈이 보이지 않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 나도 저렇게 웃는 사진이 분명히 있었지! 집으로 돌아와 클라우드 저장소 속의 웨딩 사진을 뒤지다보니 눈앞에서 먼지가 날아다니는 느낌이다. 결국 그들을 찍은 사진과 비슷한 것을 찾아 오늘의 신부에게 전송했다. '사는 거 다 비슷하구나.'하면서. 결혼의 시작은 이렇게나 낭만적이고 희망차다. 그러나 낭만은 잠시 뿐, 우리는 놀라울 만큼 자질구레한 것들로 물어뜯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혹독하면서도 지루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부부는 서로에게 내어줄 무언가가 없게 된다. 때로는 '넌 날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는 부정적인 이벤트가 발생할 수 있다. 결혼을 준비할 때는 자신들은 다른 부부들과 다르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보통 사람은 보통 사람일 뿐이다. 우리가 보통이 아닌 완벽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결혼을 원하지도 않고, 할 필요도 없다.


 열렬한 사랑을 받는 작가들에게는 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풍미가 진한 서사와 묘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원재료인 자신의 삶 자체가 드라마이거나 글 속에 속속들이 꽉 차있는 영양만점의 철학이나 여러 학식(學識)이 돋보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의 대열에 당당히 자리매김한 알랭 드 보통은 철학 박사로서의 기지(奇智)와 유머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래전, <우리는 사랑일까>를 처음 읽었을 때 알랭 드 보통에게 빠져들었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불안>을 간격을 두고 읽으면서 전혀 물린 느낌 없이 감탄했다. 독서가 어울리지 않는 계절은 없다고 했던가. 화창했던 어느 날 창밖에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 갑자기 도서관에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한도를 꽉 채워 빌려온 책들 중 주저 없이 가장 먼저 손이 갔고 순식간에 읽은 <낭만적 연애 그 후의 일상>은 모든 결혼한 자, 결혼을 앞둔 자의 필독서라고 말하고 싶다.


http://naver.me/FA6blcMX


 보통 사람들의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은 결혼 생활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날카로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관찰과 지혜 어린 말들은 종종 거지 같은 기분에 휩싸여 어리석게 구는 우리들을 끌어안아 토닥여준다. 낭만에 빠져 결혼 했건만 우스꽝스럽고 처절하며 치사하고 안쓰러운 일상이 자꾸만 펼쳐진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고 적응됐다 싶으면 꼭 집어 말하기 힘든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 그리고 결혼의 의미는 분명히 있다. 소설과 에세이와 자기 계발서가 묘하게 접합된 이 책을 읽으며 결혼이 사랑의 시작이나 결실이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결혼할 준비가 된다는 역설을 간파해보길 권한다.




 p.27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p.28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어떻게 둘이 만나게 됐어?"

 미혼이든 기혼이든 이 질문을 받으면 그 순간은 무척 로맨틱했던 때로 돌아가 약간은 자아도취의 상태로 떠들게 된다. 질문하는 쪽도 질문을 받는 도 그'만남'을 고지식하게 언제 얼굴을 처음 봤는지 따져보자는 게 아니기에 누구나 서로에게 인상적이게 된 계기를 '우리는 그렇게 만나게 됐다'라고 말한다. 연인들이야 별로다 싶으면 이미 그 관계는 끝난 상태라서 언제 어떻게 만났냐는 질문은 '헤어졌다'는 대답으로 진행 불가인 질문이거나 찬란한 시작과 엇비슷한 로맨틱함이 현재 진행 중인 상태에서 듣는 꽤나 기분 좋은 질문, 둘 중 하나다. 그러나 부부의 경우는 좋으면 다행이지만 좋지 않아도 '견딜만하면'유지되는 관계이기에 이 질문 그들이 현재 진행형임에도 불편할 수 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산 부부도 첫 만남에 대한 기억만큼은 흐릿해지지 않지만 다른 것들-대화, 신뢰, 애정, 섹스-이 흐릿해진 탓에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어쩌다가 저런 남자를(여자를) 만났나 모르겠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사는 것이 생각보다 대단한 인내와 충성, 어른스러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결혼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은 차원이 달라."

무슨 대화 끝에 남편이 단호하게 말한 적 있다. 결혼한 사람은 안 한 사람보다 생각하는 내용이 넓고 깊으며 결혼 안 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보다는 안일하고 쉽게 좌절하며 뭔가를 감당해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결혼 안 하리라는 생각도 가끔 하는 나로서는 뭔가 발끈하게 되는 말이었지만 어쨌든 지금의 자신이 예전(결혼하기 전)의 자신과는 차원이 달라졌다는 말을 한 것으로 이해했다. '딸려있는 게' 없을 때와 많아졌을 때 사람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혼 전의 나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내가 먹고 싶은 시간에 아무 때나 먹어치우고 아주 조금만 머리가 아파도 겨울잠 자는 짐승처럼 누워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귀찮고 대충 먹고 싶다는 내 희망사항은 애써 무시한 채 남편과 자식을 위해 정해진 시간마다 식사를 준비한다. 너무 아파 움직이기도 힘든 날에도 육아와 살림 스케줄은 여전히 돌아간다. 영 못하겠다 싶은 날은 할 일을 줄이기는 하지만 아예 짐승처럼 드러누울 수 있는 날은 없다. 딸로서도 그다지 곰상스럽지 못했던 내가 결혼 후 자동으로 확장된 딸 이외의 역할들에도 신경 쓰며 살고 있다.(다른 집들에 비해 별로 할 게 없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를 키우면서 예전에는 친하지 않았던 단어들-이를 테면 인내, 다정함,  사랑스러움, 희생, 미래에 대한 걱정, 분투-이 내 일상을 압도적으로 채운다. 확실히 결혼 전에는 지금보다 생각할 게 적었고 하고 싶은 대로 딱 나 하나만 챙겼기에 가볍고 수월했다. 이렇게 결혼 후의 삶이 정신 사나운데도 성난 파도 같았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어쩐지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잔잔한 수면 같다. 저녁을 먹고 치운 자리에 접어둔 매트리스 토퍼를 펴서 깔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널브러져 있는 시간이야말로 하루 중 가장 말랑말랑한 시간이다. 아이는 무수한 외계어를 하다가 간혹 정확한 몇몇 단어나 간단한 의사표현의 말을 하기도 하고 매일 하나씩 개발하는 개인기를 선보인다. 끊임없이 뒹굴다 뛰다 부모의 몸 위를 맘껏 오르락내리락하며 들떠있다. 혼자 살면서는 제아무리 극세사 담요를 덮고 맛있는 간식을 깨작대며 뭔 짓을 해봐도 따라잡을 수 없는, 매일 반복적으로 꾸준하게 불어넣어지는 이런 따스함으로 인해 기혼자들에게서는 꾸며지지 않은 안정감이 느껴지는 가보다. (그래서 미혼 여성이 유부남에게 빠져드는 불행한 현상이 벌어진다지?)


  다들 부부가 어떻게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할 수 있었는지는 궁금해하지만 결혼생활 대략 15년 후 즈음 지금은 어떻게 살며, 서로에게 그리고 각자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기 꺼려한다. 교양이 있는 우리 함부로 부부 생활의 면면을 재단질 할 수 없기에 만약 그들이 너무 솔직한 대답, 너무 두려운 대답을 하게 되면 대책이 없으니 그냥, 낭만적인 만남과 시작 이후에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거니 일축해버리는 게 서로 편한 것이다. 부부의 시작이 멋지고 눈부신 드레스였다면 이벤트가 끝났다고 해서 이 비싼 대가를 치른 옷을 버릴 수 없기에 모든 부부들은 해가 갈수록 훌륭한 리폼 기술자가 되어간다. 아무리 녹록지 않아도 누군가 감히 어디를 잘라놓거나 붙여놓는 것은 다 못마땅하다. '옷이 날개다'라는 말처럼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좀 더 차분하게 자기 분야를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든가, 좀처럼 만들지 못한 기회를 만들었다거나, 상처 받고 지쳐있던 상태에서 전환된다든가 등, 정상적인 결혼생활에서는 부부가 서로에게 날개가 되어준다. 물론 종종, 그 날개를 내 손으로 부러뜨리고 싶은 순간도 있다.

  


 

p.58 라비는 사랑의 이름으로 기꺼이 파멸도 하겠다는 자신의 태도를 헌신의 증거로 간주한다. 실용적인 의미에서 결혼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오히려 결혼에 더욱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할 뿐이다.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경향, 소심함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p.60 산만한 파티를 끝내고 혼자 걸어오는 귀갓길, 다른 사람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흘러가는 일요일, 아이들 때문에 녹초가 되어 대화를 나눌 기운조차 없는 부부들 뒤를 따라다니는 휴가, 누구의 가슴에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쓸쓸한 깨달음은 이제 족했다.



 

 나도 혼자 사는 게 가볍고 수월하고 외로우면 친구도 있고 애인도 있으니 그렇게 백 년 정도만 살아보자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잠깐만... 백 년?.. 마르케스의 책 제목처럼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 성인이 된 후 고작 십여 년 싱글 생활해도 심심해지는 마당에 혼자서 백 년은 생각보다 너무 길고 지루해서 버텨내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밤을 새우고 놀아도 멀쩡하던 팽팽함을 유지하며 백 년이 흐르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나 애인을 만나고 헤어지는 반복이, 새벽에 진탕 취하는 게 좀 지루하고 피곤해져서 예전에는 들여다보지 않던 시계를 자꾸 보게 되는 때가 온다. 그때가 결혼을 생각할 때다. '나는 50대인데도 여전히 너무 재밌는데?'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솔직히 이제는 재밌다고 여길 수밖에 없어서 재밌는 거다.


 가족이 생기면 지루함을 이유로 시계를 보지 않는다. 시계를 보는 경우는 오히려 기대할만한 일이 있거나 알차게 계획을 할 때만이다. 비록 번쩍거림과 사람 혹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없지만 홈웨어를 걸친 채 집안 조명 아래나 마당에서 애들 재롱을 보며 반주를 하거나 애들을 재우고 소소하게 노는 것, 어쩌다 한 번 가정 살림을 잠시 잊은 채 놀다 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결혼 후의 일상은 느슨하게 넘실거리며 가끔 물밀듯이 밀려오는 사무치게 외롭던 때를 부드럽게 밀어낸다. 제발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단 소리를 자주 하는 나지만 혼자 몇 시간 놀다 아무 때고 부르면 나올 한 사람이, 좀 더 크면 친구가 될 딸까지 두 사람이나 확보된 것은 무척 다행이고 감사하다.


 오래된 옛날에는 결혼에 있어서 낭만은 부재했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각자의 가정의 조건을 맞춰 이뤄지는 확장형, 목적형 결혼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대에 낭만을 쫓은 남녀는 살기가 힘들었고 때로는 죽임을 당해도 싸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렇게 이루어진 조건부 목적형 결혼은 마치 '그러게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살라고 그래요!'라고 말하듯이 간통, 폭력 등 별의별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사회는 자연스럽게 낭만을 쫓는 방향으로 변했다. 첫눈에 반해서 한 결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한 결혼, 완전히 다른 가풍의 남녀의 결혼,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결혼, 무턱대고 아이를 먼저 가진 채 한 결혼 등에 박수를 쳤고 오히려 그런 결혼이야말로 무모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어떻게 외도를 하고 어떻게 지겨워질 수 있고 어떻게 감히 싸우다가 뭔가를 집어던지고 때리고 욕을 하는 짓들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 낭만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결혼 생활 중 자꾸만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러냐'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면 아직도 그놈의 낭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다. 우리는 낭만주의를 넘어서 진짜 러브스토리가 있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야만 한다.

 



p.63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 때 맛본 사랑이란 보다 파괴적인 다른 역학들과도 얽혀 있다. 예를 들어, 통제 불능의 어른을 도와주고 싶은 느낌, 아빠나 엄마가 다정하지 않다거나 그들의 분노가 두렵다는 느낌 또는 철없는 소원을 자유롭게 표현할 만큼 집안 분위기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느낌과도 뒤얽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으로서의 우리가 어떤 후보군을 그들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조금은 너무 옳기 때문에-왠지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성숙하고 분별 있고 믿음직하게 여겨지기 때문에-거부하게 되리라는 것도 얼마나 필연적인가. 심정적으로 이러한 올바름은 이질적이고 거저 얻은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자극적인 사람을 쫓는다. 그들과 함께하는 삶이 더 조화로운 것이라는 믿음에서가 아니라, 그 삶이 가질 좌절의 양식이 안심하리만치 친밀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안타깝지만 대부분 완전한 부모의 사랑과 육아를 통해 성장하지는 못했다. 심각한 수준이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대체로 문제가 있는 방식과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엄마가 정상이면 아빠가 비정상이고 아니면 거꾸로 그렇거나, 둘 다 정상이긴 한데 둘의 사이는 냉담하다거나, 그도 아니면 행복하긴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돌연히 죽어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결손이 발생했거나, 일일이 상황을 가정하자면 끝도 없다. 아무튼간에 엄마와 아빠가 평생 언제나 변함없이 애정을 과시하며 자식들에게도 한결같이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듯 문제가 있는 방식과 분위기에 익숙한 나머지 나와 다른 정답 같은 소리 하고 앉았는 사람에게는 정이 가지 않고 '너도 나처럼 아프구나.' 하면서 문제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줘버리고 그(그녀)를 선택한다.


 라비는 그동안 연애하며 만나온 충분히 정상적인 여자들을 제치고 갑자기 냉담해지는 버릇이 있는, 평탄하지 않게 자란 커스틴에게 기꺼이 청혼한다. 그들은 결혼 전까지는 서로의 아픈 가정사에서 비롯된 이상한 행동양식을 당연히 그 누구보다도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것으로 믿지만 결혼생활 내내 한동안 '도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러는 거야'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살게 된다. 우리 부부도 홀어머니 슬하의 자식이 된 지 오래인 점이 같았남편은 라비처럼 불안정 애착 유형으로 나는 커스틴처럼 회피 애착 유형의 사람으로 성장한 것도 같다. 이 두 유형의 결합은 갈등 상황마다 서로 가장 싫어하는 짓만 골라할 수밖에 없는 결합이라고 한다. 남편은 내가 갈등 상황이나 힘들 때마다 말을 거의 안 하고 문을 닫고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에 신물을 냈고 나는 잠깐의 분리를 견디지 못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따지고 드는 남편에게 질려버렸던 시절이 있었다. 페어베언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부 중 대다수가 이 두 가지 유형끼리 결합되기 때문에 다들 비슷하게 지지고 볶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애착 유형을 파악하고 배우자에게 좀 더 친절하게 자신의 방어적인 말과 행동 아래에 있는 진짜 생각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낭만주의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그런 걸 바랐겠지만 그건 진짜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불안정형 애착 : 침묵, 지연, 막연함 같은 애매한 상황을 못 견디며 극적으로 반응함. 그들은 내심 삶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경험함.

 회피형 애착 : 정서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갈등을 피하고 상대방에게 노출을 줄이려는 강한 욕구를 느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열심히 공격하고 있으나 그들에 대한 설득이 불가능할 것으로 간주함.

- 조애나 페어베언 박사, <<부부 관계에서의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 대상관계 이론의 관점>>중




p. 65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p.77 라비의 눈에는 자신은 매우 친절한 사람인데 단지 운이 나빠 친절함을 보여줄 문제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바다흐샨의 부상당한 아이에게 피를 나눠주거나 칸다하르의 어느 가족에게 물을 날라다 주는 것이 아내에게 몸을 기울이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듯하다.

p.116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함께 살기에 가끔 꽤 힘든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다는 특이한 신호를 주고받는 것뿐이다.

p.123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 잘못 이해한 셈이다. (중략) 우리의 난폭한 비난은 친밀함과 신뢰의 독특한 증거이자 사랑 그 자체의 한 증상이고, 제 나름대로 헌신을 표현하는 비 꾸러 진 징표다. 분별 있고 예의 바른말은 모르는 사람에게 할 수 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무분별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믿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뿐이다.



 

 고작 머그컵 디자인을 가지고 매장 구석에서 창피한 실랑이를 벌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말 한마디 나누지 않기도 하고 평일 저녁 약속 출발 시간을 두고 6시 반이 좋다 7시가 좋다 하며 옥신각신하다가 맛탱이 없는 저녁을 욱여넣고 돌아와 한 사람은 소파로 한 사람은 침대로 직행하는 이 따위 짓들 역시 결혼생활의 한 면이다.(물론 초반기에) 대단히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시간과 감정을 절대 허비하지 않던 자신이 점점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소모적인 사람으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회사나 다른 데 가서는 그렇게나 현명하게 모든 가정을 세워보고 경청하고 합의에 오래 걸려도 참고 말할 줄 알면서 내 배우자에게는 거의 안 참고 안 들으며 급기야 왜 내 말은 다 거부하는 식이냐고 따져댄다. 우리 부부도 음식 외의 많은 부분에서는 성향이 잘 맞지 않는데, 예전에는 소모전을 벌였지만 이제는 남편이 내 생각과 다른 제안이나 의견, 기호를 드러내면 어반자카파의 노래 '날 사랑하지 않아~~'그 구간을 불러대며 한 템포 쉬어간 후 다시 내 이야기를 이어간다. 너무 오래된 노래라 뭔가 다른 노래로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방식만 놓고 보면 어쨌든 더 긴장이 고조되지 않고 남편도 나도 웃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다.


 결혼이 도박이라면, 대박까지는 힘들더라도 조금 맛이라도 봐야 하니까 어떻게든 수단을 마련해보자. 결혼하면서 보는 내 모습과 상대방의 모습은 그동안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 남들이 알 수 없었고 알아서도 안 되는 서로의 미친 부분은 부부끼리만 알고 있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잘 짜고 치는 고스톱을 쳐야 한다. 이 책은 부부는 여러 역할과 요구가 쌓여감에 따라 흐릿해질 수 있는 사랑의 순간을 붙들 줄 알아야 하고, 서로에게 보이는 수면 위의 것에 집착하지 말고 그 아래에 있는 방대한 것들을 간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이 설마, 나를 만들고 품고 낳아주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부어준 부모와도 잘 맞지 않는 판국에 생면부지 남과 고작 연애 좀 하다 서류에 도장 찍고 매사를 공유한다고 해서 서로 무조건 사랑하며 살거라 생각하고 결혼하진 않았을 것이다. 오직 한 사람과 숱한 삶의 곡절을 헤쳐나가고 몇의 아이를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고된 삶 속에서 서로 죽기 전까지 언제나 서로에게 섹시함을 느끼며 자신의 개인적 열정과 가정생활의 일상을 어느 것도 희생시키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안 아픈데가 없지만 건강하다는 말처럼 말이 안 된다.


 풍파에 사랑이 닳을 수 있고 아이에게 쏟는 엄청난 사랑의 에너지 소모로 인해 자연스럽게 성욕은 줄어가며 둘 중 하나가 뭔가에 열정을 쏟아부을 때 일상이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어그러져 삐그덕 댈 수 있다. 다만 부부는, 서로가 잘 맞기를 바라는 집착을 버리고 함께 이루어가는 여러 합의 사항과 그 결과들에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대단한 업적은 아니더라도 해마다 어디 하나 균형을 잃지 않고 굳건히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힘을 가진 작은 공동체이다. 중도에 이별했다고 해도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을 텐데도 여전히 머물러 있고 앞으로도 머물기로 작정한 그 단단한 사랑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 그게 부부다.


커버 이미지 출처 : 에이블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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