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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T맘 May 29. 2019

믿는 구석 하나쯤

둘 거면 잘 두자.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유연 해지는 것일까. 오로지 혼자 모든 걸 해내야 하고 어떤 목표든 빠르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전 근육에 촘촘히 박혀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10킬로그램이나 가벼운 몸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센 성격과 어우러져 늘 '차도녀' 일관된 별명을 달고 살았, 가끔은 사무치게 그립기도 한 시절. 이제는 공부도 글도 목표와 기한을 두긴 했지만 어쩐지 느긋하다. 그저 내가 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여길 남편과 아이가 바로 그 믿는 구석이다. 



 실패해도 그만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매사에 연연하지 않는다. 육아를 하면서 연연하는 순간 본인을 포함한 가족 모두가 처참해질 뿐이니 '되는 대로 해나가는 것'이 답이다. (엄마는 엄청 변했다 하고 남편은 여전히 연연한다지만)  남편이 연애 당시 본인과 결혼하면 좋을 점 중 하나로 '나랑 살면 머리도 안 아플 거야'라고 하던 말이 새삼 신통하다. 아이가 없을 때까지도 이틀 또는 삼일 감격으로 두통에 시달렸는데 요즘은 거의 머리가 아프지 않다. 단지 어깨와 손목과 허리가 아플 뿐이다.::



 누군가 아이는 주변을 따뜻하고 가볍게 만든다 했다. 엄마가 되며 몸은 무거워졌어도 마음은 가벼워지긴 했는지 많이 웃는다. (화도 가볍게 벌컥벌컥 내는 게 문제::)  동글동글해진 하드웨어와 더불어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결혼과 육아라는 마사지를 받고 풀어졌는지 요즘은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면 '말랑말랑해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최근 동네 언니는 내게 '웃는 상'이라고까지 했는데 나로선 가히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웃을 일이 뭐가 있냐는 식이던 나였는데. 아, 옛날이여 라고 노래를 부르지만 실은 골머리 앓지 않는 옹종대는 이 일상들이 좋은 걸까.



 아이를 온종일 나 혼자 끼고 있는 것에 대한 고민 끝에 시간제 보육을 맡겨봤다. 기관이 집에서 거리가 있는 편이라 왔다 갔다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아침에 남편이 출근길에 데려다준 후로 근처 카페에 머물며 공부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는데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일타이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얼씨구절씨구 지화자다. 데려올 시간이 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관 문을 여니 아이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안녕'소리를 오래도록 하기에 안심이었다. 심지어 밖에서 똥 못 싸는 애가 웬일로 똥도 쌌단다.



 프로그램 내용과 활동사진을 보니 확실히 나랑 덩그마니 집에 있던 것보다는 즐거워 보인다. 게다가 어린이집 끝나고 집에 오면 낮잠을 재워줄 필요 없이 자고 밤잠 빨라지고 수월해져서 다음 주부터는 시간을 좀 더 늘려서 주 3회, 4시간씩 해보려고 한다. 아이가 한동안 너무 늦게 자던 이유가 에너지 분출이 잘 안돼서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아이가 박장대소하는 활동 사진과 동영상을 자꾸 반복해서 보다가 눈물이 솟았다. 오로지 나와 보내는 낮 시간에 이렇게까지 웃은 적은 없던 것 같다. 왜 아이는 문화센터나 어린이집을 가서야, 남편과 함께 있는 밤 시간이 돼서야 박장대소할 수 있을까. 제법 노상 웃으며 잘 논다 생각했지만 역시 부족했단 생각에 또, 최선을 다한 죄인이 되고 만다.

 



어린이집 활동사진에 대충 장난질..ㅋㅋ어미가 안티인지, 얼굴 막 쓰는 본인이 안티인지 ㅋㅋ

 울기는커녕 무척 즐겁게 잘 놀고 간식으로 싸준 견과류를 친구들 입에도 넣어주며 먹더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기관에서 나왔다. 괜한 감동에 젖어 애를 안고 걷다가 눈 앞에 턱을 못 보고 자빠졌다. 애는 안 다치게 하려고 아이를 안은 팔을 풀지 못한 채 온전히 무릎으로 바닥을 쓸어버려 꽤 크게 다치고 말았다. 무릎 전체가 벌겋게 까지고 피가 철철. 하얀 뼈가 약간 드러난 곳도 있다. 굳이 잘 걷는 애를 손잡고 갔으면 될 것을 왜 안고 있었는지.. 아이를 떼어 놓는 첫날을 제대로 치르려는 예정된 바보짓이었다.


 아이는 유모차 없이 오로지 손만 잡은 채 잘 걸었고 난생처음 타보는 버스도 잘 타고 정류장에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긴 걸음, 빌라 4층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도 한 손은 엄마 손, 한 손은 난간을 앙팡지게 잡 올왔다. 여기까진 웃을 수 있는 감동이었는데, 문을 열고 집에서 신발을 벗겨주는 나의 치마를 들추며 내 무릎부터 살피며 호호 - 입김을 불어넣으며 '아파'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자 그 감동은 눈물로 바뀌었다.  피도 철철 때 이른 여름 더위에 땀도 철철 눈물도 철철.


아이를 키우며 화딱지가 나거나 때론 비참한 기분이 들어 울어본 적은 있지만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 적은 아이가 탄생했을 때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다. 정말 많이 컸구나. 이젠 아기 태를 벗었구나. 이렇게 예쁜 너를 힘들어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김연수 작가 글을 계속 쓴다고 해서 글을 잘 쓰게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글을 쓰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있다 다. 은유 작가는 글을 쓰면서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어 좋다고, 다들 불가피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좋다고 했다.  언젠가 나는 '글쓰기의 엄정(嚴正) 세계가 좋다'는 글귀를 쓴 적이 있다. 일기 형식을 넘어선 글쓰기는 기꺼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드러내 보이며 그에 대한 어떤 말들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기에 용기 있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제 멋에 쓰는 글이라 할지라도 정말 멋대로 쓰기 곤란하다.



 어떤 말 입 밖으로 나오면 홀연히 흩어지기에 그 말은 자의든 타의든 왜곡되고 변명하기 쉽다. 흔히 말하는 '내 말은 그게 아니고'라든가 '네가 잘 못 들은 거겠지'등의 표현들로 벌어지는 양상이 그 예다. 반면 글은 고스란히 남겨져있기에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말은 그런가 보다 싶지만 문장으로 남기면 아주 한참 잘못된 말임을 알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결함이기에 인간은 절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를 알면서도 흔하게 일상에서 '인식'이란 말이 어색해서 좀 더 편한 단어로 '이해'를 쓸지도 모른다.



 이렇듯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수없이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자신을 둘러싼 주변과 타인에 대 단정 짓는 것을 지양하며 인식의 폭이 넓고 깊어지는 것이다. 뭘 좀 안다 싶어 쓰다 보면 아는 게 참 없어 보여 스스로 공부하게 하고 하소연도 글로 쓰다 보면 되려 반성의 글이 되는 신묘한 힘을 가진 글의 세계다. 글쓰기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믿는 구석 중 하나다.

 


 지난 주말, 진물이 흐르고 무릎 주변마저 벌겋게 뜨신 것이 어째 심상치 않아 저녁식사 후 병원에 가보니 좀 더 까였으면 꿰맬 뻔했단다. 꽤 많이 파이기도 했고 염증이 넓게 번졌다고 했다. 의사의 폭풍 드레싱 처치에 아찔하다 못해 구토감마저 올라온다. 눈을 뜰 수 없는 동안 이런저런 약이 발라졌고 붕대가 감기고서야 눈을 떴다. 파상풍 예방 주사를 맞고 항생제 약 처방받았다.  당분간 이렇게 자지러지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어린이집 첫 주는 피 눈물, 흡족한 웃음으로 지나갔다.




 처음엔 걱정이 많던 남편은  평일에 출근을 안 하기로 작정하고서 영화표를 예매했다. 느닷없이 출근을 제치기로 작정할만한  출근 안 할 명분이 생겨 신나 보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기계처럼 자동차 뒷 문을 여는 나를 보며 남편이

 "뒤에 타게?"

 "아 그런가?"

 멋쩍게 웃으며, 조금 설레며 앞문을 열었다.  늘 아이와 함께 뒷자리에서 작은 옆 창문 너머의 풍경과 앞자리에 반쯤은 가려진 전경을 보다가 앞좌석에의자를 뒤로 여유 있게 뺀 채 널따란 앞창을 마주하니 처음 안경을 껴 본 아이처럼 어색함과 기대감이 공존한다. 커피는 아이가 있을 때도 늘 마셨는데 오늘의 커피는 유난히 진하게 맛있고 영화는 3시간 10분이란 긴 시간이 무색하게 홀린 듯 지나갔다.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온 아이도 처음으로 해 본 5시간이란 꽤 긴 시간이 무색하게 활동사진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아이와 함께 셋이서 장을 보고 돌아와 간식을 먹다가 돌아와 남편이 아이를 목욕시키러 들어갔다. 아늑한 기분에 젖어 어린이집이 또 하나의 믿는 구석이 되어가나 보다 하는 그 순간,

"이게 뭐야? 이게 뭐지?"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욕실에 울려 퍼진다. 후다닥 가보니 아이의 귓불에 빨간 자국이 남아있다. 잡아당겼을 때 남을 법한 자국이라는 게 남편의 단정이 이어졌다. 나는 모기에 물린 걸 수도 있고 체육활동을 하다 생긴 자국일 수도 있고 아까 보니 엎드려 낮잠 자는 사진이 있던데 피가 몰렸던 자국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내 말에 남편은 발끈하며 지금 왜 어린이집을 두둔하는 거냐고 말했다. 절대 그건 아니었다. 단지 방금 말했듯, 어린이집이 꽤 믿을 만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고 앉았다가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니 사고 회로가 그 안일한 생각에서 급 전환이 되지 않은 채 말이 먼저 튀어나온 것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니 뭉근히 끓고 있는 죽처럼 겉으로는 팔팔 끓어 보이지 않으나 속은 엄청 뜨거운 뭔가가 끓었다. 일단 아이 귓불을 여러 차례 사진으로 남겨 두고, 전화를 하기에 앞서 아침에 보낼 때 없던 자국임이 확실한지를 생각해보니 남편도 나도 불분명했다. 어린이집에서 나올 때도 없었다가 다 같이 밖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는 동안 생긴 자국 인지도 역시 불확실했다. 둘 다 아주 형편없는 천치가 된 듯한 시간이 무겁게 지나고 있었다.



"혹시 오늘 아이가 무슨 일 없었나요?"라고 서두를 떼고 어디 부딪히거나 누구랑 싸우지 않았는지 돌려 물으며 수화기 너머의 모든 기운을 예리하게 감지하려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원장은 일단 사진을 보내주면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해본 후 담당 선생님이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 무거운 시간이 잠시 흐른 뒤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는 친구들과도 아무 문제없이 잘 놀았으며 기관 측에서는 아이들끼리 놀며 투닥거리다 보면 문젯거리가 생기기도 해서 아이들 하원 시, 등원 때와 다른 상처 유무를 확인하고 특별사항이 있는 경우 미리 이야기해준다고 했다. 혹시 아이가 손톱이 약간 길던데, 선생님 본인이 세수시켜주다가 본인 손톱에 긁힌 것이거나 아이가 자기 손톱에 의해 생긴 상처일지 모른다고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하며, 어쨌든 죄송하다고 말했다.



 남편과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둘이 동시에 '아 맞다!'라고 외마디 소리를 쳤다. 그제야 번뜩 생각났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 다 같이 간식을 먹는 도중 한참을 귀에 손을 대고 장난을 쳤다. 어쩜 저렇게 귀를 자꾸 후벼대는 습관마저 지 어미를 닮을 수 있을까 하며 웃던 그 기억이 왜 이제야 난 걸까. 그나마 의심을 뒤로한 채 차분히 에둘러 말한 것이 다행이었지만 기관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화끈거렸다. 죄송하네 어쩌네 떠들면 의심을 품었던 게 되려 들킬까 봐 끝까지 차분하게 대꾸하며 전화를 끊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민망해하다가 안도감에 웃다가 그래도 앞으로도 무조건 믿지는 말고 오갈 때마다 아이를 더 세심히 살펴보자며 멋쩍은 다짐했다. 믿는 구석, 둘 거면 현명하게 잘 두자. 자칫했다간 가슴 철렁하는 바보가 될 수 있으니까.





커버 이미지 출처 : 유튜브(Nocut V CBS, 201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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