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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엄마 Mar 05. 2019

친정에는 혼자 가지 말아야겠어요.

 잠 못 드는 밤, 아침이 다가오네요.

 누군가 나를 재워줬으면 좋겠다. 아무 말없이 토닥토닥해주는 것도 좋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도 좋다. 연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옆에는 아기 침대가 좁아져 자꾸만 탁탁, 발이나 손이 침대 난간에 부딪히는 딸이 뒤척이며 자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떴다 하다 보니 점점 아침이 다가온다.


 주말 동안 혼자 불쑥 찾아간 엄마는 나에게 줄 열무김치를 담그다 물이 역류해 다 젖은 장판을 말리는 중이었다. 엄마의 집은.... 몇 시간 있다 보면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어 진다. 불쑥 풍겨오는 정체모를 퀴퀴한 냄새, 상스러운 이웃 주민들의 잡소리, 더워도 문을 열기 힘들 만큼 다닥다닥 밀착된 집들, 막무가내로 욱여넣은 몇 개 없는 가구들.. 여기에서 엄마는 매일, 혼자 있다. 참 이상하게도 내가 결혼하기 전, 엄마랑 같이 늘 이사를 다니며 살던 집들은 이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연한 듯이 살던 공간을 몹시 답답하게 느끼는 것이 미안하다.


 엄마는 올여름 이후로 계속 자주 어지러웠다고 했다. 어제는 같이 점심을 먹은 후, 나가서 커피를 한 잔 하다가 너무 어지러워하기에 한참을 그저 테이블에 엎드려 쉬게 했다. 병원을 가야 하나 그냥 잠시 두어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조금 괜찮아져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도 또 두 시간 넘게 어지러워하며 일어나지 못했다. 엄마는 정밀검사를 예약해뒀다고 했다.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괜찮아진 걸 확인하고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오니 밤 10시였다.

 

 지하철 매표소 앞에서 김치랑 반찬을 쥐어주며 손을 흔든 엄마는 잠시 후 갑자기 지하철 승강장에 내려와 나에게 '짜잔!' 하며 웃었다. 승강장 벤치에 혼자 털썩 앉자마자부터 복합된 여러 가지가 엉켜 올라오며 눈물이 솟던 참이다. 엄마를 다시 보자 그저 놀라서 웃긴 듯 괜히 큰 소리로 '뭐야, 왜 내려와'하며 삼켰다. 지하철에 올라탄 나와 승강장에 남은 엄마는 서로 누가 더  오래 손을 흔드는지 겨루듯 긴 안녕을 했다.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 눈을 질끈 감으니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우리 엄마, 지하철 떠나고 저랬겠죠?엉엉. 이미지 출처 : 영화 <친정 엄마>

 도망치듯 느닷없이 했던 결혼, 혼자 들른 친정, 점점 병들어가는 혼자 남겨진 엄마... 뭔가 다 엉망이 돼버린 느낌이다. 셋이었을 때도 온전한 가정인 적이 없었고, 둘이 살아온 세월이 그보다 더 길었던 엄마와 나.  엄마는 '딸을 위해서라도 네가 연애를 해야지.'라고 말하는 이모에게 등 떠밀려, 내가 30살이 다되어서야 두 어 번 소개받은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안 그래도 내 아버지 때문에 남자에게 질려버려 철벽이 돼버린 엄마를 업그레이드 고성능 철벽으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정말 엄마는 이렇게 내 결혼생활을 지켜보며 내 딸을 보는 낙으로 끝을 맺을 것 같다. 가끔씩 그냥 엄마를 책임지며 혼자 살아야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거미줄처럼 불쾌하게 휘감긴다.

'너만 행복하면 난 됐어.'

엄마의 그 말이 그나마 최선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만 행복하기도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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