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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남매아빠 Mar 03. 2024

딸과의 도쿄여행은 처음이라 (2)

하네다 공항에서 다카라초 역까지 가는 길에 마주한 도쿄의 주택가는 생경했다. 

나지막한 건물의 옥상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녹색 방수페인트가 보이지 않아 그랬나 보다.

시간만 된다면 저 풍경 속을 카메라 하나 들고 몇 시간이고 걷는다면 기분이 꽤 좋을 것 같았다. 

우리가 이틀을 묵게 될 숙소는 도쿄 중심에 있는 3성급 호텔이었다. 

하네다 공항에서 케이큐 급행을 타고 다카라초 역에 도착해서 약 5분만 걸어가면 있는 곳으로 

숙소 앞에 바로 교바시역이 있어 긴자선(Line)의 중간 지점에 위치했다. 

역을 나와 처음 마주한 거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깔끔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건물도 길도 차도 군더더기 없이 꽉 짜인 느낌이었다. 

디지털카메라로 RAW 파일 형식의 사진을 찍으면,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 후반 작업을 진행한다. 한두 번의 터치만으로는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기 어렵기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수 차례 보정을 해야 비로소 원하는 JPG 한 장을 얻을 수 있는데, 도쿄의 거리는 마치 완성된 JPG 이미지 같았다.

미니멀리즘 한 호텔은 방 크기마저 일관됐다. 복도를 희생해서 캐리어 하나를 간신히 펼쳤다. 

하지만 깨끗하고 있을 것은 다 구비되어 있어 2박의 일정을 머무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생뚱맞게도 종아리 마사지 기능도 갖춘 작은 마사지 의자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공간을 잡아먹는 애물단지라는 첫인상과 달리 여행 내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던 고마운 존재였다. 

여장을 풀고, 구글맵을 열어 일본에 와서의  식사를 '돈카츠'로 정하고 맛집을 검색했다. 

조건은 맛집일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울 것. 두 가지였다. 걸어갈 만한 거리의 맛집은 도쿄역사 내에 있었다. 역은 퇴근 시간과 신칸센을 이용하는 여행객이 섞여 무척이나 붐볐지만 내 두뇌회로와 구글맵을 일치시킨다는 마음으로 단 번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심각한 길치인 나로서는 행운이었다. 

돈카츠 스즈키는 후기 좋은 맛집이라 그런지 여럿이 줄을 섰다. 오픈 키친으로 조리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니 단박에 믿을만한 맛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튀김 담당, 밥과 반찬 그리고 장국 담당, 내부에 또 다른 요리 담당 등 역할분담으로 시스템화가 잘 돼있었다. 

곧 우리 차례가 되어 점원의 안내를 받고 미리 봐 둔 등심가츠 정식을 주문했다. 

구글이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다. 조리 현장을 담고 싶은 마음에 점원에게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포토 오케이?'라고 묻는 나 자신이 한심했지만, 이내 환한 웃음으로 '하이'라고 응수하는 점원 덕분에 바로 뿌듯한 마음이 됐다. 잠시 후에 나온 튀김 조각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딸과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바삭하고 부드러운 튀김이라니! 이미 눈빛으로 이심전심이었다. 

앞에 있는 세 개의 소스가 궁금해서 반찬을 담당하는 조리사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으니, 하나는 튀김에 나머지 두 개는 양배추에 뿌려먹는 들깨, 유자 소스임을 알았다. 

순간 딸이 '아빠는 어떻게 그걸 알아들었어?'라고 묻기에 '그 정도는 나도 알아들어'라고 했다.

인생을 반백살 가까이 살았는데 이 정도 통밥은 있어야지. 하긴, 일본어는 네가 더 잘하는데, 쓰미마셍 정도밖에 모르는 내가 저 소스의 종류를 다 알아들었으니 신기할 법도 했겠다. 

배를 채우고 건물 하나가 문구점이라는 이토야 문구를 찾아갔다. 자신만만하게 구글맵을 켰지만

이번엔 반대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갔다. 나는 역시 맵을 켜도 길치였다. 

딸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지만, 혀를 차기보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낯 선 여행지에서의 가족은 결속력이 남다르다지만, 큰 애와 나는 각별히 통하는 부분이 있다. 

딸이 고학년이 되어서도 아빠와 함께 여행을 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이토야는 숙소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건물 규모가 크지 않지만 각 층을 구분하여 문구류를 배치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를 수는 있어도 전층을 다 올라야만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뒤늦게 알았지만 각 층마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구조로 7층 즈음 오르니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맛있는 음식의 기운 덕분이었을 것이다. 둘째와 셋째에게 줄 필기구를 몇 개 구입하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곧바로 휴식에 들어갔다. 저녁 8시가 넘은 긴자의 밤거리를 걷고 싶은 맘도, 2박 3일의 짧은 여정의 조급함도 연신 터지는 하품과 무거워진 눈꺼풀을 이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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