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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 CEO Nov 24. 2022

책장 정리를 하다, 울어버렸다.

손편지의 감성을 놓지 못하는 이유

우리 집에는 내가 중학생 시절부터 쓰던 책상과 책장이 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자식 교육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시키고자 했던 엄마의 열망이 담긴 그런 물건이다.


결혼을 하면서 책장과 책상은 친정에 두고 왔었다. 사실 그 당시 회사에서는 거의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보면 일하는 것이 90% 이상이니, 퇴근하고 다시 책상에 앉을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오랜 수험생활을 합격으로 마무리하고 직업을 가지면서 얻은 금전적 자유(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애매한 수준이었지만..)와 결혼을 하면서 다시금 얻게 된 진정한 정신적 자유 아래 자기 계발 따위는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전세로 시작한 신혼집에서의 2년은 변변한 책상도 책장도 없이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퇴근 후에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거나, 남편과 티비를 보거나 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다 무시무시한 전세값의 상승에 2년간 두려움에 떨다 가격은 아담하지만 평수는 조금 넉넉한 그런 집을 매수해서 이사가게 되었다. 그 무렵 친정집도 이사를 하면서 엄마는 우리집으로 책장과 책상을 보냈고, 그렇게 우리집에는 신혼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케케묵은 책이 잔뜩 잠들어있는 책장이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정리에는 소질이 없는 편인데, 짐작컨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버리지 못하는 습관 때문이다. 물건 하나하나 어찌나 깃들어 있는 추억이 많은지 몇년을 들쳐보지도, 기억도 못하던 물건인데 막상 버리려고 보면 그 추억이 새록새록 머리속에서 피어나는 그 기쁨 때문에 물건을 쉬이 버리지 못한다.


특히 책의 경우 그 정도가 정말 극에 달해서, 내가 한장한장 넘겨가며 공부했던 책들과는 마치 연애라도 한 양 십수년을 책등의 제목만 바라봐도 흐뭇하고 그 시절 나의 열정을 곱씹게 되어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이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음), 임신을 하고(그래도 괜찮은 편이었음), 출산을 하고 나니 (카오스 시작!!) 그런 추억도 열정도 곱씹을 시간 따위 없이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버리지 못하는 내 물건들과 점점 불어나는 아이 짐에, 이고지고 있던 책장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굳게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은 가장 오래된 책이면서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은 책을 정리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남편의 적극적인 추천도 포함됐다.(역시 혼자서 결정해서 버리는 것은 어렵다...)

첫 번째 타깃은 한비야 시리즈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때 담임선생님께서 1권을 선물해 주셨고 그 이후 완전히 매료되 전체 시리즈를 사모으며 읽었다.

20년간 책장을 지켜온 총 7권의 한비야 시리즈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비야 작가에 대한 논란과 비판이 있었고, 그 것이 어떤 내용인지까지는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내 마음에서 멀어져 갔기에 과감하게 정리를 결정했다.

또 이 와중에도 책이 그냥 버려지는 것은 싫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황색 채소 시장에 나눔을 올려보았다. (본인이 생각해도 징하다..싶은 포인트)


예상외로 나눔받고 싶다고 한 이웃이 금방 나타났고, 책 상태가 오래되었다는 점을 충분히 말씀드린 후 나눔을 결정했다. 그리고 책을 쇼핑백에 담았는데, 번뜩 어디선가 본 글이 생각났다.

오래된 책을 사면 생기는 이득 중 하나가 전 주인이 몰래 숨겨놓은 비상금을 겟할 수도 있다는 그런?


그런 습관을 갖고 있지 않은 나는 그럴리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꼭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책을 휘리릭 넘겨보았다. 아쉽게도(?) 돈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발견한 것이 오늘 이 브런치에 최초로 글을 쓰게된 계기가 되었다.


바로 책을 선물해 주신 은사님의 편지.

한비야 책 1권 속지에 적힌 은사님의 편지

그 시절 중학생이 뭐가 그렇게 힘들었길래 선생님께서 '힘들었지'라고 위로를 해주셨나 하는 작은 의문이 들어 과거를 잠깐 곱씹어보았다. 힘들었는데도 웃었다니.. 그 시절 나님 칭찬을 좀 하면서.. 선생님의 바람이 담긴 마지막 줄이 나의 가슴을 쿵 내려앉게 했다.

자랑스런 대한의 딸이라니.. 나 그렇게 자란건가? 그런 사람이 된건가? 아니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마음 속에 나에 대한 작은 의구심을 남긴 채, 편지는 남겨졌다.


며칠 후, 다시 또 본격적으로 책장 정리를 시작했고 이번에는 대학 때 보던 전공 책들이 타겟이 되었다.

혹시나 다시 펴 볼 일이 있을까 하며 끌어안고 있던 책들..


그나마 많이 버리고 이만큼 남은 것. 오히려 수험시절 봤던 책들은 친정에 둬서 진즉 다 버려졌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정도다.

대학 때 봤던 전공책들

얘들은 일단 친정집에 피신 보낼 예정. 혹시나 내가 성공해서, 아니 내가 반드시 성공해서 인터뷰를 할 건데, 뒷 배경으로 저런 전공책 몇 권은 꽂혀 있어야 그래도 나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직 완전히 버리는 것은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리고 책장 한켠에 꽂혀있던 몇 안되는 (오직 둘) 친구의 학위 논문.


논문을 다 읽어보지는 못 했지만(미안하다 친구들아) 표지에 정성스레 적어준 편지 두 장이 나를 울려버렸다.

대학 시절 만난 베프의 박사 논문 표지의 편지

2014년 무렵 친구는 박사학위를 나는 시험합격이라는 변화를 겪었다. 둘 다 대학에는 일찍 들어왔지만 여러 이유로 징하게 오랫동안 학교에 머물며 공부했던 우리였다. 그래도 서로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친구에게 큰 힘이 되주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새삼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게 했다.


친구이지만 엄마처럼 언니처럼 이끌어준 존재가 바로 나였다니.

아닌 척 했지만 2022년 유독 힘들었던 한 해, 자존감이 롤러코스터를 타며 '할 수 있다!!' 와 '역시 안 되는 건가' 하는 기분을 오락가락하며 연말로 달려가고 있는 나에게 십여년 전 친구가 써 준 편지가 다시금 내 안에 용기를 북돋아준다.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지만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대학 친구의 석사 논문 표지의 편지

또 한 친구는 방학 때 교환학생들과 교류 프로그램을 하며 타 학교에서 만난 인연에서, 같은 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며 만나게 된 케이스였다. 지금 와서야 다시금 드는 생각이지만 타대생이 대학원을 오게되면 동대생들에 비해 낯선 부분이 있다. 그 때 나는 수험생으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이따금 친구와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교정을 거닐거나 했다.


길지 않은 시간 인연을 이어가며 지금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희망을 얘기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내 평생을 함께 우정을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는 속깊고 고마운 사람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는 친구가 있었구나. 맞아 나를 소중하게 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지.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비단 물질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싶어하는 습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그리고 난 여전히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열망이 가득하다는 것을 책장을 정리하며 나온 편지를 보고 울음이 터져나오는 나를 통해 다시 한 번 명징하게 깨달았다.


보남이는 성공할거야

그리고 친구가 해 준 성공할거야라는 그 말. 요즘들어 더더욱 격하게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나에게 가장 큰 감정은 외로움이라는 것이었다. 오롯이 내가 기초부터 쌓아올려야 하는 성공이라는 큰 성 앞에서 외로이 사투를 하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정성들여 써 준 십 수년전의 손 편지가 이리도 큰 힘이 될 줄이야. 이리도 큰 울림으로 나를 울려버릴 줄이야.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손편지가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 손편지를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욕망 앞에서도 버릴 수 없는 이유를 난 오늘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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