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의 마지막날 아침.
새로운 한 해의 첫 달이 벌써 끝났다니.
나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나. 예비기업인 우리 인디프는 한 달 동안 얼마나 성장했나.를 고민할 틈새도 없이
내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엄마 인나야해요 버써 이고씨바니에요' (엄마 일어나야 해요 벌써 일곱 시 반이에요)
나의 보물 32개월 아들의 목소리이다.
아직 시계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아들은 대충 7시 반이라는 시간은 엄마를 곧장 깨울 수 있는 핵심단어라고 이해한 듯하다.
전날 밤까지 사업계획서를 수정한다고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더니 눈꺼풀은 천근만근,
어깨는 만 근 십만 근이지만 또 이 아이를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에 보내놓아야 나의 하루도 시작할 수 있으니 아이 맞춤형 모닝루틴을 신속하게 시행한다. (아.. 나도 내 모닝루틴을 갖고 싶다..)
1. 먼저 화장실
최근 배변훈련을 거의 완벽하게 마쳤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줘야 한다.
2. 그리고 간단한 아침거리 챙기기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등원시간이 9시이기 때문에 등원하자마자 아침간식을 먹기 때문에 너무 과하게 먹이지는 못한다. 과하게 준비할 시간도 없고, 어깨힘주고 거창하게 차린다고 해도 아침에는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아기도 일어나자마자는 입맛이 없는 건가?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아침메뉴로는 전날 사둔 빵과 우유, 또는 시리얼에 우유, 시리얼에 요거트 때때로 과일 약간. 어떨 때는 치즈 한장. 또는 누룽지. 만들어놓은 죽이 있다면 죽 약간. 이 정도이다.
두 돌이 지나고는 못 먹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냥 어른 먹는 것의 건강한 버전(?)으로 조금 떼어주는 식.
나도 아침에는 입맛이 없어서 옆에서 커피 한 잔으로 때울 때가 많아서 안 먹는 걸로 뭐라고 말할 처지가 못된다.
3. 아침 먹는 사이 비는 오디오 채워주기
아침을 먹으며 아들은 이것저것 요구사항을 말한다. 두 돌까지 말문이 트이지 않아 답답해했는데, 이제는 정말 쉴 새 없이 나에게 이거 해줘 저거 해줘 명령을 해댄다. 상전을 이 세상에 모신 자로써 해드려야지요 네네..
어떨 때는 동화 씨디를, 어떨 때는 동요 씨디를, 어떨 때는 영어 씨디를 틀어달라고 한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것이 다르며 가끔 내가 듣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틀면 그게 아니라며 극렬하게 저항한다.
또 어떤 날은 노래 따위 듣고 싶지 않다며 모두 다 끄라는 명령까지..
그에게 맞서는 것보다는 들어드리는 것이 빠른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보면 육아와 창업은 참 비슷한 것 같다. 육아는 내 아이를 고객으로 창업은 타겟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니... (고객 만족이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ㅠㅠ)
3. 책 읽기
등원 전 잠시라도 여유가 나서 책을 몇 권 읽어주면 등원이 훨씬 수월하다. 요즘 들어 매일 등원거부를 하는데 뭔가 집에서 정신적인 부분이 채워지지 못하면 그 정도가 더 심한 것 같아 원하는 책 2~3권은 꼭 읽어주려고 한다. 한 때 영상을 틀어달라고 졸랐던 적도 있으나 아무래도 영상을 틀어주면 같이 보지는 않고 혼자 보게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게 되니, 오히려 책 읽는 쪽을 택한 것 같다.
4. 본격 등원 준비
세수, 양치를 하고 (가끔 까먹을 때 있음;; 남편한테 이제 얘도 한국나이 4살인데 눈꼽은 떼고 가야 하지 않겠냐며 기본 루틴으로 만드려고 노력 중), 양말을 신고 옷을 입는다.
이 정도 준비를 하는데 약 30분이 걸린다. 하려면 더 빠르게 할 수도 있지만 양육할 때 서두르는 것만큼 비효율이 없다는 것을 회사를 그만두고부터 확실히 알았다. 아이는 어른이 정해놓은 시간에 정확히 맞추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매일매일 자라며 변화하고 있는 아이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물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루틴을 행하는 계획적인 삶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수적이긴 하지만. 아이에게는 약간의 시간적 버퍼가 필요하다. 아이마다, 아이의 시기에 따라 그 시간적 버퍼가 다양하지만, 현재 우리 아이의 어떤 행동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시간적 버퍼는 5분 이내인 것 같다.
이 5분이 출근시간에는 얼마나 길고 마음을 다급하게 만드는지. 맞벌이 부부라면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시곗바늘을 보며 체크해 보니 아이에게는 그 5분이 필요했던 거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기꺼이 그 5분을 내어준다.
최근 주말부부를 청산하고 집에서 출근하게 된 남편도 등원거부를 하는 아이의 모습에 조급함을 보였고, 그때 나는 아이에게 5분만 주면 스스로 상황을 정리할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아이는 늘 2~3분 내에 상황을 정리했다.
5. 차량 탑승 및 등원
남편의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이제 매일 아침 출근하는 아빠와 함께 등원을 한다. 차로 10여분 거리이기 때문에 차에서 뭘 할 시간은 따로 없다. 내가 듣고 싶은 라디오를 듣거나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동요를 듣거나, 역시 모든 것을 끄라고 명령할 때도 있다.(...)
이제 등원은 남편의 몫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라이딩까지만 해주고 곧장 집으로 돌아온다. 전에 등원까지 내가 도맡아 했을 때는 주차하고 아이를 내리고 어린이집에 올라가 선생님에게 인계하고 다시 차에 돌아올 때까지 최소 10~15분이 걸렸는데, 그 시간에 나는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다.
이렇게 나의 아침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 등원을 시키고 돌아오면 왜 지치는 것인지.
아직 집을 업무공간으로 쓰고 있어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면 눈에 밟히는 살림들 때문에 괴로워서 빨리 독립된 업무공간을 마련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다들 아는 재택근무의 효율성 때문에 아직은..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여담으로 내가 오늘 브런치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렇게도 짬이 안 나던 나의 하루하루였는데, 어제는 그만 아이를 재우다 내가 먼저 자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졌고. 그로 인해 저녁에 하려던 업무는 하루가 밀려버렸고.. 다행히(?) 눈은 새벽 3시에 떠졌다.
회사를 다닐 때도 종종 아이와 함께 잠들었지만 그때의 나라면 시계를 확인하고 흠.. 아직 잘 시간이 많이 남았군 하고 다시 딥슬립 했겠지만. 쉬어도 쉬는 게 아니라는 창업의 세계로 뛰어들고 나니 정신체계 자체가 좀 바뀌긴 한 건지 잠이 오지 않아 이렇게 나의 하루 중 일부를 정리해 본다. 이것이 남들이 그리도 말하던 모닝미라클인가..?
아 이 글을 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창업가 커뮤니티를 가면 이제 나는 제법 연식이 있는 나이다 보니 나보다 조금 어린 여성 대표님들로부터 종종 이런 말을 듣고는 한다. 심지어 결혼은 했지만 출산을 아직 하지 않은 언니한테도..
'그래도 전 대표님이 부러워요.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고..'
읭? 그게 왜 부럽다는 건지... (힘들어 죽는데..)
'결혼과 출산이라는 숙제를 다 한 느낌이잖아요.'
'아 그건 그 숙제만 한 거지.. 저한테는 창업이라는 또 다른 숙제가 남아있잖아요. 하하하'
그냥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간접체험을 시켜드리고자(?)라는 이유를 빌미로 오늘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
물론 간접체험과 직접체험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이야기는 아침 후반전(9-12), 점심(12-13), 오후 전반전(13-16), 오후 후반전(16-20), 저녁(20-24) 이 있긴 합니다만.. 언제 완성될지는 댓글과 하트로 결정을 해볼까 합니다...(응원 좀 많이 많이 해달라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