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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중 Oct 12. 2020

대구에 봄이 돌아와도 그리던 봄이 아니러뇨

#코로나 #대구 #신천지, 지난 겨울 암흑기 이야기



--- 이 글은 지난봄 대구의 코로나 체험수기에 출품했으나 탈락한 글이다.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대부분 심각한 일도 사실은 관련된 사람만의 일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어디 어디에 산불이 나도 거기 사람이 아니면 사실 무신경하고, 많은 사람이 상하는 일이 생겨도 내가 있는 곳이 아니면 사실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대부분 일은 그랬다. 심지어 사는 곳 근처에 불이 나거나 범죄가 생겨도 잠깐만 몸을 떨 뿐 지나치면 그것도 망각이 지워준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이번 봄은 달랐다.



시작은 겨울이었다. 1월 중순쯤 뉴스에 난데없이 중국 우한이 어쩌고 우한 폐렴이 어쩌고 하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 한국 사람이 우한을 본 적이 없을 것이고 우한이 어딘지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한이라니, 뭐 베이징이나 상하이도 아니고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를 도시 이름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듣기로는 거기에서 무슨 야생동물 시장에서 박쥐가 무슨 바이러스를 퍼뜨려 난리가 났다는 거였다. 그래서 우한을 비롯해 중국 전체에서 사람들이 쓰러지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국을 다녀온 사람은 보건소에 신고해야 하고, 중국에 가는 건 삼가라는 지침이 돌았다.



그러니까 사실 그러려니 였다. 중국에 안 갔었고 안 갈 것이고 갔던 사람도 주변에 없어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물론 중국인을 막아야 한다, 중국인의 야만성이 문제다 등의 말은 떠돌았고 그래도 그것은 몇몇 전문가들이나 최소한 중국과 교류가 잦은 사람들만의 문제였다. 우리나라에도 우한 폐렴이나 괴질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역시 수도권이었고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도 안심했고 느슨했고 평안했다. 그렇게 1월이 흐르고 2월이 지나면서 완만한 확진자의 증가 흐름은 불안감마저 점차 무디게 만들었고 때마침 세계를 뒤흔든 우리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한 4관왕 소식은 이제 코로나 19라는 이름을 가진 바이러스도 잊히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밸런타인데이에 대구 시민은 생각지도 못하고 기도 안 막히는 분노의 선물을 받게 된다. 경기도 거주자인 6번 확진자의 지나치게 활동적인 동선에 국민적 분노를 느끼면서도 여전히 대구는 거의 청정지역이었는데 31번 확진자가 갑자기 진짜 혜성처럼 신천지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신흥종교 꼬리표를 달고 나타나면서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혔다. 청정지역이 물 건너간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31번, 신천지, 대구가 모든 매스컴을 점령했고 코로나에 무심했던 대구 시민은 일순간에 감염자, 보균자에 역적 취급을 받았다. 가뜩이나 정치적으로 좀 다른 노선을 걷던 지역이라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울고 싶은 데 뺨 때린 격으로 수도권 중심의 시각으로 대구는 진정한 ‘고담 시티’로 거듭났다.



신천지 신도였던 31번 확진자로 인해 신천지 대구교회가 전국에 생생하게 알려지고 그녀가 입원한 한방병원은 코로나의 온상이 되었다. 동선에 포함된 대구의 호텔 등지는 졸지에 폭탄을 맞았다. 모든 대구 시민은 일거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낙인찍혔다. 자고 나면 대구의 환자는 우후죽순이었다. 우리 주변에 신천지가 그렇게 많은지 모를 정도로 많은 신천지 신도들이 차례로 확진자가 되었다. 그리고 신천지가 아니어도 대구 사람은 세상의 모든 욕을 다 먹었다. 그것도 대구시장과 함께. 뭘 그리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대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코로나의 원흉이 되었다.



그렇게 따가운 2월이 가고 봄이 왔다. 겨울과 함께 수그러들 줄 알았던 기세는 오히려 봄을 타고 더 활발해졌다. 그때까지 이란, 이탈리아 등 몇 개 나라에만 확진자가 있던 코로나는 일본의 호화 크루즈 사태를 시작으로 유럽, 미국 등 서방 세계를 집어삼키며 결국 WHO가 우려하던 팬데믹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우리는 봄을 잃었다. 봄 대신 두려움을 얻었다. 그러나 두려움과 동시에 믿음과 희망, 의지, 용기 등도 함께 얻었다. 대구판 판도라의 상자는 봄을 날려 보내고 편견과 원망과 손가락질을 주었지만 그로 인해 대구 시민에게는 더욱더 단단한 결속력과 의지, 그리고 성숙한 시민 의식이 생겼다.



우리는 살아야 했다. 확진자가 사망자가 되어가는 그래프가 올라가는 순간에도 그 모든 역경을 뚫고 살아남아야 했다. 편견과 욕설과 비난과 비방을 이겨내고 보건 당국과 정부의 지시를 칼 같이 지켜 확진자가 되지 않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대구라는 원죄를 지울 길은 그것뿐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악수를 하지 않았다. 직장을 가지 않았고 가까운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식당도 휴업에 들어갔다. 우리가 배달의 민족인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고, 엄마의 집밥이 왜 그리도 소중한 말인지 왜 듣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마법의 단어인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가장도 자녀도 어디에도 가지 않고 온 가족이 삼식이가 되어 세 끼의 식탁에 함께 앉았다. 차도에 차가 사라지고 길거리에 사람이 사라졌다. 그러나 시간은 생각보다 더 길었고 지루했다. 의지와 인내심만으로 버티기에는 정말 버거웠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 228 주간 운동이 328 운동이 되고 다시 4월을 지나 어린이날까지도 이어졌지만 우리는 코로나와 싸웠고 이제 거의 승리가 보이는 지점에 섰다.



막연히 공부 잘하고 머리 좋아 돈 많이 버는 의사들은 진정한 의사 선생님으로 코로나를 물리치는 슈퍼 영웅이 되고, 기계적이고 사무적이던 간호사들은 용감한 나이팅게일의 화신으로 온몸을 할퀴는 방호복을 벗지 않는 천사가 되었다. 보건 당국은 잠 한숨 못 자고 국민을 지켜냈으며 의료진은 몸을 던지는 투혼으로 코로나를 막아냈다. 그리고 우리는, 시민들은 모든 순간에 함께 했다.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며 거리를 두었고 만나지 않았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집콕했으며 지루함이 괴로움이 되는 시간에 맞서 허벅지를 찔러가며 ‘확찐자’로 버텼다.




4차 산업혁명은 생경한 구호가 아니었다. 우리는 정말 IT 강국이었다. 학생들은 인터넷으로 개학을 맞아 학교를 다녔고, 직장인들은 재택근무가 실현되는 기적을 맞았다. 아프면 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고 심지어 만약 확진자가 된다 해도 격리 수칙을 잘 지키면 생명을 지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대구는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이제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 간혹 몰지각한 사람이 유채꽃밭을 갈아엎는 판에도 꽃놀이를 갔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는 부산까지 가서 클럽에서 밤을 불태워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극히 소수이며 자유와 평등이 지켜지는 사회에서 그 정도의 일탈은 비난을 받을지언정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의 손발을 묶고 감시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완전한 격리가 가능하겠는가.




여느 때와 다른 봄이다. 너무나 달라서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말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봄이 지나가고 있다. 봄이면 너무나 당연하던 꽃놀이, 축제, 행사가 없어 어색하고 당황스럽지만 그 대신에 우리에게는 용기와 백절불굴의 의지라는 선물이 주어졌다. 지루하고 따분하던 일상이 사실은 지극한 행복임을 알게 해 준 봄의 깨달음이 있고, 활기찬 다음 계절을 맞이할 희망이 있다.



오헨리는 늘 같은 시간 같은 일정이 기다리는 퇴근 후의 샐러리맨의 일상이 아내의 갑작스러운 외출로 깨어지자 그 일상의 행복과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고 아내에게 잘해주리라 다짐하다가 아내가 다시 돌아오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아내를 두고 친구들과 내기 당구를 치러 가는 이야기로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 코로나가 만든 이 비상이 사라지고 다시 우리들의 일상이 되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구들과 내기 당구를 치러 가야 한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고 우리에게는 망각이란 것도 있으니까.




올봄에 또 하나의 선물이 더 있다. 전국민에게 주는 재난지원금, 4인 가족에게는 백만 원이라는 쏠쏠한 금액이다. 자영업, 소상공업의 피해가 너무나 커서 그 돈은 절대 저축을 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 손을 잡고 떡볶이 사 먹고 삼겹살 사 먹고 치킨 시켜먹고 액체괴물도 살 것이다. 돈 쓰면서 이렇게 있어 보이는 적이 있었던가. 코엘료의 연금술사의 말처럼 돈으로 목숨을 사는 기회가 흔치 않으니.



눈먼 자들의 도시의 결말처럼 우리는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거짓말처럼 코로나가 물러간 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잊지 말고 기억하여 다시는 지지 말자, 다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흉폭한 병으로 잃지 말자. 그 창궐이 흉폭했을지라도 끝은 결국 소멸일 것이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말했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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