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넷 졸업생 이야기
금희의 꽃말(1기, 함경북도 아오지).. 사랑하라 놓지 마라
고향을 떠난 내겐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탈북의 아픔이 남아있었다. 스스로 마음을 돌보는 일이 어려웠다. 오래도록 방황하고 슬픔에 젖어 살았다. 어디에서도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였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었다. 꿈의 나라 대한민국에 왔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어릴 적 산과 들과 흙을 밟고 자란 내게 잘 다듬어진 아스팔트 도로는 보기에는 반듯해 보였지만, 그 길을 걷는 내 마음속 깊은 곳은 늘 외롭고 추웠다. 고향을 떠나 무서움과 공포와 슬픔과 분노를 안고 비틀거리며 살다가 어느 날 셋넷을 만났다.
2004년 가을 셋넷 학교의 첫 건물은 반 지하였다. 비록 계란판을 벽에 붙여 만든 보잘것없는 모습이었지만 마음이 편했다. 허름한 교실에 모인 우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고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했던 내가 셋넷에서 대학생 또래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들과 추억을 만들고 서로를 알아가며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마냥 좋았다. 내 모습 그대로 바꾸지 않아서 편안했고 자연스럽게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덕분에 대학에 진학해서도 외롭지 않게 졸업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셋넷에 대한 기억은 늘 음악과 영화와 마음을 다듬어주는 책들로 가득했다.
셋넷과 함께하는 여정이 있었기에 한국에서의 15년 삶을 잘 버텼다. 학습능력과 정보가 부족했던 대학 생활의 어려운 고비마다 셋넷이 옆에 있었다. 아무도 우리를 이해해 주지 않을 때에도 셋넷은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었다. 때때로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면 셋넷을 찾아가서 지친 마음을 보듬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의 30대는 병들지 않았고, 꿈과 사랑을 키울 수 있었다.
‘사랑하라 놓지 마라’ 박상영 선생님이 2007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때 내게 써준 편지다. 편지의 마법에 홀려 호주에서 내 평생의 짝을 만나 사랑했고 놓지 않았다. 지금은 호주에서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산다. 한국에 살 때는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시선이 원망스러웠고 불편했다.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나는 탈북자가 아닌 이민자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처지의 이민자다. 탈북자도 아닌 한국 사람도 아닌 나는 호주에서 이민자의 아픔과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살아보니 별거 아니더라. 사람 사는 건 똑같고 마음 닿는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게 최고라는 삶의 진리가 이제는 마음에 와닿는다. 그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고 잘 지키고 가꾸게 했던 셋넷이 있어서 참 고맙다.
* 백 송이 꽃에는 백 가지 꽃말이 있다.. 장 뤽 고다르가 한 말.
* 9월 출간 예정인 셋넷 학교 두 번째 이야기 단행본에 실릴 글.
* 2007년 여름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을 마친 뒤 돌아오는 배에서.. 가운데 싱그런 웃음이 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