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는 삶.
일을 그만두고 여러 회사에서 이력서를 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꽤 괜찮은 회사였으나 원하지 않는 직무였다. 넣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하다 가족들에게 물었다. 재고 따지지 말고 당장 서류를 제출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족들은 나보다 더 큰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잠시라도 일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공포에.
타인의 우려에 기존 커리어와 방향에도 맞지 않는 이력서를 뒤적이다가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일을 멈춘 이유는 진짜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살아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선택 앞에 선 나는 주위 사람들이 내 선택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까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전 직장 동료, 전 직장 상사, 가족, 친구, 지인까지. 결국 선택 이후의 짊어져야 할 하루의 무게는 오롯이 내 것임에도 자꾸 주변 눈치를 본다. 타인의 말과 표정에 영향받지 않고 혼자 생각할 시간이 간절했다.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로 결정했다.
빈 시간 나는 매일 운동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다 읽었다. 그리고 매일 불안하고 행복한 순간이 뒤섞여 찾아왔다. 언뜻 보면 자발적 백수와 자발적 잠수가 '내 멋대로 산다'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때때로 부대끼는 마음에 뒤척이며, 침묵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수련하는 것과 더 가깝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완전한 고립 하에 나를 돌아봤다. 찰나의 불안과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휘발시키는 대신 꾹꾹 눌러 담아 곱씹었다. 결과적으로 뾰족한 정답을 찾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한결 편안해졌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 안에 나만의 답을 가지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