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만 마리의 반딪불이는 서로 다른 객체다. 그 각각의 것들이 어느 한순간 불을 깜빡할 때가 있는데, 미리 약속한 적도 없는 순간, 자연 속엔 어둠이 잦아든다. 그리곤 다시 노랗게 불이 반짝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책 <싱크로나이즈>는 우리도 모르게 서로에게 동화되어 벌어지는 일에 주목한다.
<노잉>의 저자는 J.K. 롤링처럼 엄청난 성공을 이룬 이들의 공통된 답변에 몰두했다. '왜 당신을 성공으로 이끈 일을 하기로 결정했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냥, 불현듯 강렬하게 하고 싶었다'는 비슷한 답변들을 돌아온다. 이들은 결심 이후 무언가에 이끌린 듯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의도하지 않아도 일이 진행되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맑고 건강한 마음으로 지낼 때 분명하게 드는 마음을 '노잉(Knowing)'이라 칭한다. 우리 모두에겐 '노잉'의 순간이 있고, 이를 붙잡아 기회로 만들지, 흘려보낼지는 각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어떤 결심은 명료하게 떠오르고, 강렬한 이끌림 속 인연은 놀라운 시작점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은 망상이나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 내렸던 중요한 선택을 돌아보면 크게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변화를 이끄는 결정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 어떤 일들은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당연한 일처럼 하게 됐다. 이직과 전직 역시 간절함 없이도 꼭 내 자리인 듯 펼쳐졌다. 지난 결정들에 대한 부단한 목격 때문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억지스러운 일을 피하게 된다. 벌어질 일들은 벌어질 거라고, 지나갈 일들은 지나갈 거라고 어쩌면 조금 안일하게, 혹은 편안하게 바라보게 된다.
분명 억척스럽게 지키려고 했던 마음이 지독하게 바라왔던 것이 건넨 성취가 분명 있을 것이다. 반면 그것이 건넨 실패와 슬픔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힘을 툭 빼고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는 사람처럼 굴고 있다. 막연하게 언제고 내가 나라서 받아들여지는 곳이, 내가 나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해온 내 치열한 노력은 진실하니까. 그것들이 언제고 누군가에겐 귀하디 귀하게 여겨질 거라 믿는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지며 살아간다. 누군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삶의 궤도를 완벽한 시나리오처럼 짜뒀다고 믿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비효과처럼 아주 작은 생각과 행동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 영향을 주고, 연쇄작용으로 벌어지는 일의 가능성을 믿는다. 때때로 이 믿음은 나를 고요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