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땅콩과 소주
*책에는 빠진 에피소드 공개
우리는 잠들기 전, 매일 뽀뽀를 하며 오늘도 고생했다고 속삭였다. 마치 의례를 치르듯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에야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까맣게 잠이 들었다. 늘 사랑은 밤과 함께 찾아왔다. 낮은 온통 싸움의 흔적들로 너덜너덜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랑한다면서 우리는 왜 싸우는 걸까.
우리는 이제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아내와 남편이기 전에 엄마와 아빠였다. 사랑만 해도 충분하던 부부 관계가 갑자기 의무와 책임을 분담하게 된 것이다. 아이만 탄생한 게 아니다. 아이가 탄생하며 부모도 탄생하게 된다. 아이는 울고 먹고 자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냈지만, 우리는 아직 엄마 아빠의 탈만 썼을 뿐이었다.
둘 다 느린 편이라 역할극에 빨리 적응하지 못했다.
대사를 잊은 배우처럼 한 사람이라도 멀뚱히 서 있으면 집안은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똥기저귀가 바닥에 나뒹굴었고, 옷이 늘 아이의 토와 침으로 범벅이었다. 빨래할 시간은 없고, 건조대에 널려있는 옷을 갤 시간도 없었다. 아이는 배고프다고 울고 나와 아내도 배고파서 따라 울고 싶었다. 기껏 아이를 재웠는데, 택배가 와서 포카가 짖으면 환장할 것 같았다.
대환장 파티를 치르고 나면, 우리는 왜 대사를 까먹었냐면서 서로를 지적질했다. 아이 분유 먹일 때 핸드폰 하지 말라며 맛탕은 내게 지청구를 줬다. 세탁기를 돌리고 먼지망을 빼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긴다며 나는 아내에게 핀잔을 줬다. 머리 끄덩이를 잡듯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았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고 때론 화를 곁들이고 억울함과 슬픔을 표출하다 보면 너덜너덜해진 얼굴 위로 어느새 저녁노을이 스몄다. 우리는 그렇게 싸우고 싶어서 싸우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늙고 작은 이 집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엄마 아빠의 탈을 벗었다. 다시 아내와 남편으로 돌아가 사랑한다 말하고 뽀뽀를 했다. 미친 사람들 같았다. 엄마 아빠일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였다가, 아내와 남편일 때는 원양 한쌍처럼 행동하다니.
암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탈이라고 여겼던 ‘엄마 아빠’에 우리는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 말인즉슨, 이제 우리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원수처럼 행동했다. 사랑의 밀어는 줄어들고 감정은 쌓여갔다. 감정을 풀 시간 없이 살 부대끼다 보니 오히려 싸우지 않고 말도 섞지 않고 침묵하기 시작했다. 싸우지 않는다는 건 안 좋은 징조였다. 밖에 나가 콧바람이라도 쐬면 나으련만, 코로나 19가 우리를 막아섰다. 세상마저 미쳤다!
소주를 마셨다. 모유 유축을 끝낸 아내와 오징어 땅콩에 소주를 들이켰다. 덥고 답답한 인형탈을 벗고 한 잔 걸치는 아르바이트생들처럼 거나하게 취하고 싶었다. 한 잔 들이켜고 두 잔 또 들이켜니, 확실히 아내가 ‘아내’로 돌아온 듯했다. 다시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내는 소주를 1년 만에 먹는 것이었다.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소주를 먹는 걸 보고 아내는 소주 한 잔이 그리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소주를 들이켜니 생각보다 맛이 없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육아는 드라마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된 일상의 반복일 뿐, 아이의 토와 침으로 얼룩진 늘어난 티셔츠 같은 것이 육아였다. 하지만 흔히 말하듯 ‘육아가 지옥’이란 말엔 동의할 수 없었다. 우리의 일상은 낮과 밤의 반복처럼 다툼과 사랑이 섞여 있었다. 매일 같이 힘들고 싸우기만 한 게 아니라, 싸울 때도 있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다.
세상에 오롯한 사랑은 없다. 아내와 나의 사랑처럼 아이를 향한 사랑도 그랬다. 늘 양가감정이 얽혔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가 제발 울지 않기를 바랐고, 아이가 예뻐 어쩔 줄 모르겠다가도, 그만 아이가 칭얼대지 않았으면 싶었다. 아이 덕분에 웃었지만, 아이 때문에 내 삶은 없어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크는 아이를 보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을 나는 삶에서 만나본 적이 없었다. 아이는 우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위해 온 천사 같았다.
우리는 그 밤 오래도록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나는 아내에게 엄마 아빠이기 전에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했다. 아내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그보다 더 재밌는 게 생각난 소녀처럼 들뜬 얼굴로 마꼬를 보러 가자고 했다. 세상모르고 새근대며 잠든 마꼬를 우리는 조용히 지켜봤다. 하루 종일 악당처럼 소리 지를 땐 언제고, 아이는 작고 고르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소리에 가만가만 귀 기울이니, 세상에 조용히 평화가 왔다. 낮과 밤도 그 어떤 경계도 아이 앞에선 무용해 보였다.
언젠가 내가 마꼬에게 말했다. “너는 세상을 구하러 왔구나.”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아니, 우리를 구원하러 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