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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회사원H Sep 13. 2023

누구도 알 수 없는 인생.

나의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전 직장에서 나를 공황과 불안장애에 빠지게 했던 가해자 실장강등과 부서이동 소식이 전해졌다.

(여담이지만, 공황과 불안장애상담을 받던 의사 선생님께서 얼마 전 출간한 책을 밀리의 서제에서 보았는데 왠지 반가웠다.)


직장 내 괴롭힘 후(퇴사 전 3년간) 많은 이동이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휴직 (2개월) 후 부서이동.

9개월 후 타 부서이동.

소속이나 실이 없이 상무님 직속으로 6개월.

진행하던 사업 정리로 본부와 실 모두 와해.

가해자 실장 밑으로 부서 이동.

2개월 후 타 부서로 이동.

이동된 부서 11개월 근무 후 퇴사.


아무 능력 없이도 라인을 잘 타서 승승장구하던 못된 상사들의 줄이은 강등과 부서이동에도 꼿꼿이 홀로 버티던 그 사람도 이번 인사이동에는 꼬꾸라졌다.


그의 피해자들은 한둘은 아니었으나, 모두 일찌감치 퇴사를 택하였고, 나는 마지막 퇴사자가 되었다.



이런 날도 오긴 오는구나.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앞에서 깨춤이라도 출 상황일 것 같지만, 막상 회사를 떠나오고, 밖에서 소식을 듣게 되니 그러한 생각조차도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한때는 못된 놈들이 눈앞에서 제일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세상 불공평하다고 느꼈었다.


나의 첫 직장은 오래된 고인 물들이 가득했다.

나 역시 오래되었으니 신입들에게는 고인 물이었겠지만...


올드한 꼰대가 가득한 보수적인 조직문화.


안정적인 직장에 오래된 사람들도 이직할 걱정이나 고민을 하지 않고도 잘만 묻어가, 정년퇴임이 가능한 조직이었으니 그냥 열심히 회사를 다녔고, 나 역시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싫었지만, 수익률이 좋은 안정적인 부분이 상당한 만족감을 주던 곳이었다. 평생직장이 없어진 요즘세상이라지만 그곳에서 만큼 가능해 보였다. 


그런 곳에 얼마 전부터 새로운 바람이 대차게 불고 있는 것 같다. 조직개편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상상도 못 했던 아랫사람들의 승진소식과 윗사람들의 강등 및 부서이동이 파격적이었다. 아마도 지금은 전만큼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느낌은 사라지고 있지 않나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조직에 소속되던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고 느낀다.

퇴사  블라인드에는 서로의 연봉을 공유하고 작다는 불평과 오래된 40~50대는 일을 안 한다는 원망과 경멸하는 듯한 글들이 가득했고, 도망이 답이란 얘기들이 올라왔었다. 작년은 나를 포함한 퇴사자만 20명이 넘어, 역대 최고의 퇴사자가 발생했다.


오래된 고인 물이라지만, 대충 하려고 하거나 시간만 때우려는 하지 않았건만, 세대별로 느끼는 감정이 너무나 다르다는 걸 느낀다.


나의 20~30대의 열정을 가득 담아 마치 영혼이라도 갈아 넣을 듯 일하며, 애사심 넘치던 직장이었다.


들도 나이를 먹으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겠지. 

나도 어린땐 몰랐던 부분들이니까...


괜스레 나이 드는 게 억울하고, 뭔가 열심히 하려고 해도 자꾸만 내려놓으라고 하는 분위기가 한때는 속상하기도 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승진과 연봉에 특별한 욕심을 낸 적은 없었다.


내가 즐겁게 일할 수 있음이 감사했고, 번 돈으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그것만으로도 그냥 좋았고, 열심히 하다 보면 뭐든 잘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후부터는 부서이동이 잦아졌고, 업무량과 비중이 줄어들고, 계속해서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순간들은 불안함과 흔들림의 연속이었다.


왜 피해자들만 힘들어질까?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할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한 직장만을 오랜 기간 동안 다니며 물경력만 쌓은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회사 내에서 다양한 일들을 하였지만, 막상 다른 업종으로 이직을 고려해 보니 전문적인 일이 아니다 보니 이렇다 할 역할이 명확해 보이지 않아 어려웠다.


겪어보니 한 직장에는 길어도 5년~6년까지 머물다 이직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업무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자신감이 차있을 연차이고, 나이도 이직하기에 적당한 것 같다.


이직을 마음먹었다면, 조금이라도 빠른 시기에 하시길 바란다.


나와 같이 물경력만 오래되면, 나이 때문에 , 경력 때문에 , 등등 걸리는 것들이 많다.



만약, 퇴사를 마음먹은 분이 계시다면, 반드시 플랜을 가지고 퇴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마음에 드는 회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거든요.)


만약, 퇴사를 하고 싶은 사유가 단지 나를 괴롭히는 한 사람 때문이라면, 조금은 버터 보실래요?!

(인생은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그런데,

만약 도저히 못 참겠다.

지금 당장 내 자신이 죽을 것 같다면, 아무 플랜이 없어도 그곳을 당장 탈출하세요.


나 자신은 아주 소중한 존재거든요.

회사를 당장 나와도 나의 세상은 무너지지 않아요.

"당장 자신부터 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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