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 남편 맞나요?
"Good morning, my wife."
아침에 눈을 뜨면 그가 건네는 첫 인사말
"Good morning, my husband."
그녀도 똑같이 대답한다.
결혼한 지 어느새 두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결혼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힘들다. 그는 지금도 아침에 눈을 뜨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인사를 하고는 일어나 커피를 내리러 간다. 그가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잔을 들고 돌아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으면, 그녀는 살짝 졸다가 눈을 반쯤 뜨고 그의 허리께를 베고 다시 잠이 든다. 그러면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날의 뉴스를 듣는다.
30분쯤 지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 드링크를 마시고, 커피 필터를 청소하고, 도시락을 준비하는 평범한 그의 일상에서 변화된 것을 찾아보라면, 출근 직전에 침대로 돌아와 그녀에게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Have a wonderful day, my sweetheart. I'll talk to you later."
그가 출근하고 나면 그녀는 다시 조금 잠을 청하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는 씻고, 아침 커피를 마시며 식기세척기를 비우고, 약간의 체조를 하고, 컴퓨터 속 일상으로 들어간다. 어찌 보면 그녀의 삶은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예전과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 전혀 다른 곳에서 살고, 전혀 다른 음식을 먹으며, 전혀 다른 언어를 말하며 살고 있으니...
그는 출근 후에 하루 두세 번 문자를 보낸다. "Having fun today? I love you."라든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트 폭탄을 날리기도 한다. 그러면 그녀도 "Love you, xoxo."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예전에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남자에게 무뚝뚝하기만 했던 그녀는, 자신이 완전 남자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으며, 그녀의 친구들도 남녀를 막론하고 역시 그것에 백 퍼센트 동감이라 말했었는데... 이제는 애교 섞인 눈웃음 보내기도 하고, 장난스러운 농담도 하고, 여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여자가 결혼할 때에는 판단력이 흐려져서이고, 이혼할 때에는 참을성이 떨어져서이고, 재혼할 때에는 기억력이 없어져서 그런다는 농담이 있는데, 그녀는 평생 살면서 자신의 기억력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그 짓, 결혼을 또 할 일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한 번 해본 것으로 이미 충분했고, 결혼 생활이 사람을 덜 외롭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사는 것이 너무나 편했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즐길 수 있었으며,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묶이는 것이 얼마나 싫었는데! 그런데, 결혼은 구시대의 산물이라며 코웃음 치던 그가, 무릎 꿇고 청혼을 하고 싶어서 몸살을 앓는 사람으로 변할지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이 작은 약혼반지를 사면서 스릴을 느끼고,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줄 날을 기다리느라 가슴이 두근거렸다니 말이다.
그녀를 만난 후, 그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주변 지인들이 입을 모았다. 그녀 역시 굳게 다물고 무표정했던 순간들이 사라지고, 늘상 밝게 웃는 얼굴이 되었다고, 다시 말해서 예뻐졌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같은 집에서 산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결혼이 주던 역할의 의무감이 그들에게는 없다. 아침에 그가 출근할 때 그는 그녀가 뭔가 해주길 기대하지 않는다. 저녁때 식사 준비를 할 때에도 누가 해야 한다는 것이 없다. 대부분 함께 준비하고 함께 치운다. 그러나 그가 뭔가 할 일이 있으면 그녀가 혼자 준비하고, 또 그녀가 바쁘면 그가 혼자 준비한다. 무엇이든 먼저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 상대가 안 한다고 섭섭해하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면 편안하게 요청한다. 즉, 둘이 살아서 좋은 점을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혼하기 전까지 오랜 기간 그저 한 집에서 각자의 삶을 살았던 시간들은 그녀에게 고통의 시간일 뿐이었다. 옆에 있으면서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을 가장 크게 외롭게 만든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전혀 계획에 없었고, 평생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사랑을 시작했고, 그래서 자신들의 모든 가치관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서로에게 올인하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청혼을 하고, 또 그 청혼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사랑의 화학작용이 1년이라던가? 3년이라던가? 7년이라던가? 모르겠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아무도 모른다.
오후에 그가 퇴근하면 현관으로 달려 내려가서 반기고, 장 보러도 늘 같이 가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마주 보면 미소 짓는 이 삶은 과연 얼마나 갈까?
오늘도 그는 여전히 이런 대화를 나누며 볼을 꼬집는다. 말도 안 되는 결혼생활이 꿈이 아님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Are you my wife?"
이 글은 처음 브런치 작가를 신청할 때 검사용으로 제출했던 글이다. 이후 타이밍을 놓쳐서 실제로 포스팅하지 못했지만, 당시 신혼이던 우리 부부의 삶을 그대로 묘사했고, 이것이 결국은 브런치 작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우리 새 삶의 시작과 더불은 작가의 시작이니 두 가지 시작에 얽힌 글이라 할 수 있겠다.
너무나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 황혼 나이에 사랑에 빠지고 급속도로 결혼을 하게 되면서, 함께 살게 되는 자신들의 모습이 너무나 익숙지 않고 놀라워서 하루하루 경이로워하던 시절이었다.
어찌 두려움이 없었겠는가? 더구나 나는 여행가방 두 개만 챙겨 들고, 오로지 그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이곳에 왔으니 너무나 무모한 도전이었다. 내가 꿈꾸던 삶이 아니면 어찌할 것인가, 내가 생각하던 그 사람이 아니면 어찌할 것인가? 그런 대책이라고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인생의 반 이상을 살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서, 그래도 이 새로운 삶이 또 하나의 반평생을 만들어 줄 수 있기를 꿈꿨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서로를 더 소중히 여기고, 서로의 숨은 장점들을 발굴해내고, 서로가 가진 단점들 역시 끌어안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신혼 때보다 오히려 더 깊어진 마음은 또다시 우리를 경이롭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매일 묻는다.
Are you my wife? 당신이 내 아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