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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17. 2022

말해줘서 고마워

Thank you for making a wonderful day...

서로 좋아서 죽고 못사는 신혼초. 콩깍지 씌여서 좋은만큼, 서로에 대해서 잘 몰라서 적응하느라 애쓰는 시기이도 하다. 잘 하고 싶고, 많이 사랑하고 싶은데,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할지 모르겠는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며칠간의 신경전을 뒤로하고 뭔가 드디어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 두 주일 간의 휴가를 모두 이 신경전에 투자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하루 이틀이라도 다녀오자고 했었지만, 결국은 아무 데도 가지 못했고, 어느새 휴가는 끝나가고 있었으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아쉬웠다. 그들의 첫 휴가였는데...


그녀가 말을 꺼냈다. 어디라도 가자고... 아무 계획도 없이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 그에게, "I like to travel spontaniously! (나는 그냥 즉흥적으로 떠나는 것이 좋아.)"라고 대답한 그녀. 사실 그녀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경제적으로 수입이 없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디서 숙박하며 돈을 쓰자고 제안하기가 쉽지 않기도 했다. 결국 그날 밤 뚜렷이 뭘 정하지는 않았지만 남편도 그러자는 데에 동의를 한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은 평소와 똑같았다. 사실 집에 할 일도 많았지만... "What are your plans for today?(당신 오늘 뭐 할거야?)"라고 천연덕스럽게 물으며 자신의 할 일을 늘어놓는 그... 얄밉다고 해야 할까? 여기서 얘기를 꺼내야 하나? 지난 일주일여를 실랑이하면서 보냈는데, 휴가 사흘 마무리 남겨놓고 또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휴가를 끝내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였지만, 결국은 서운함이 가득한 눈으로 "Yesterday we talked about going out and visiting somewhere...(우리 오늘 어디 가기로 했잖아)"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Come here." 그녀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를 꼭 안고, 쓰다듬고, 어디를 가고 싶냐고 다시 물었다. 어디든 좋다 했다. 가슴이 막힐 거 같았으니까... 시내 들어가서 점심 먹을까? Grandville Island(그랜빌 아일랜드) 라도 갈까?... 등등의 제안이 나왔고, 그녀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더니 그는 어디론가 문자를 했다. 큰딸에게 괜찮은 식당을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완전 즉흥적인 외출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시작이 좋았다. 바깥의 날씨는 화창했고, 아직 3월이었지만 눈부신 봄 햇살에 날씨는 제법 포근했다. 그와 함께 지낸 지 꽤 되었지만, 마침내 아무런 목적 없이 집을 나서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마음속에도 완전히 봄이 들어앉았다. 살랑살랑 바람을 느끼며 드라이브를 하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결혼 후 그와의 첫 데이트...


그는 데이트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I don't date.(난 데이트 안 해.)" 이 말은 그가 늘 해오던 말이었다. 그가 말하는 데이트는 한국적 사고에서 나오는 글자 그대로의 번역어 데이트와는 많이 다른 듯했다. 설렘과 들뜸, 그리고 기쁨의 추억으로, 나중에 결혼 후에도 "데이트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는 그런 긍정적인 느낌이 그에게는 없다. 그에게 있어서 데이트는 "자신의 본모습을 최대한 감추고, 연기하고, 뭔가 억지로 만들어내는 과정" 같은 느낌이었기에 그녀는 이 단어를 다시 사용할 수 없었지만, 데이트하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작은 타이 레스토랑에서 각자의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그들은 사랑의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음식도 정갈했고, 맛도 풍부했다. 주차를 해놓은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걸으며 산책했고, 손을 꼭 잡고 윈도쇼핑을 하고 볕을 즐겼다. 시내는 역시 시내답게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으로 생기 넘쳐 보였다.


한국 나물반찬을 담을 수 있는 작은 접시를 사자고 했건만, 우리가 구경한 가게에서는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지 못했다. 그저 그렇지만 가격은 비싼 그런 물건들... 그래서 큰 상점으로 가자며 Gourmet Warehouse로 데려갔다. 아름다운 부엌용품이 가득한 상점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찾던 딱 그 접시는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거기서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장난스럽게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상점에서 나오면서 보니, 가게 앞에 주차했던 차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알고 보니 시내에서는 오후 3시 이후인 러시아워에는 거리 주차가 금지된 곳이 많았던 것이다. 결국 순식간에 견인당한 것이다. 상점에서 담아뒀던 물건들을 뒤로하고 견인소로 택시 타고 이동한 우리. 견인비와 벌금, 택시비 다 해서 400불(40만원) 가까이를 순식간에 날리고 나니 참으로 허망했다. 나오자고 보챘던 자신에 대한 원망이 밀려오는 그녀는 말을 못 하고 조용히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일로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눈여겨보지 않아서 발생한 실수에 대해서 자신을 책망할 뿐.


그냥 그러고 망친 기분으로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그녀를 다른 가게로 이끌었고, 거기서 나름 저렴하지만 만만한 접시를 구입했다. 같은 접시가 10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를 위해서 딱 10개 구입 완료! 그러고는 그랜빌 아일랜드까지 가서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집에 가자고 하는데, 이미 저녁시간이었고, 나온 김에 저녁까지 해결하고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어디서 뭔가 먹고 가자고 했더니, 그는 다시금 다시금 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유쾌한 프랑스 레스토랑에 가게 되었다. 생기 넘치는 작은 식당엔 사람들과 소음으로 가득했고, 즐거운 목소리로 서빙하는 프랑스인 웨이터가 가져다준 맛있는 홍합요리와 연어를 먹었다. 많이 웃었고, 돌아올 때에는 한 밤중이 되어있었다.




잠자리에 누워서 그가 건넨 말... "Thanks for saying what you wanted.(당신이 원하는 것을 말해줘서 고마워)" 평소의 그녀 같았으면 입 꾹 다물고 참고 넘어갔을 일을, 그러지 않고 말을 건네주어서 고맙다는 그. 그래서 덕분에 좋은 하루 보냈다고, 그리고 그 자신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야속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평생 속내를 감추며 참고 살던 것이 습관이던 그녀는 다시금 용기를 얻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입 밖으로 꺼내고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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