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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y 11. 2021

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의 의미

간신히 붙들고 있는 나 자신이 아니라, 편안히 숨 쉬는 나...

우리 부부는 많은 시간을 식탁에서 보낸다. 따로 책상에 가서 일 하지 않고 식탁에서 각자 랩탑을 앞에 끼고 일을 하는데, 가끔 건너편에 앉은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다. 이 사람이 내 남편이구나...


이 남자와 결혼해서 함께 살기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두려움도 당연히 있었다. 나이 들어서 불처럼 뜨거운 연애 감정을 가지고 만났지만, 그것이 불장난이 아니고 생활이 될 때, 우리는 서로 어떻게 적응해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었다. 


그리고 엊그제 차를 타고 같이 현관 앞에 걸 꽃을 사러 나가면서, 내 옆에 앉아서 차가운 내 손을 꼭 잡아 녹여주는 이 남자를 보며 문득 든 생각은, 내가 이 남자를 만나서 참으로 많이 변했구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비로소 내가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꽃을 사고 싶다고 꽃 사러 가자는 말을 할 수 있는 내가 된 것이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봤다. 예전엔 어떻게 살았는지... 예전에는 왜 그렇게 삶이 힘들었었는지...


나는 늘 나 자신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을 별로 허락하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각종 의무들로 인해서, 나는 이러한 사람 이어야 하고 또 저러한 사람이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감정은 늘 저 밑으로 눌러둔 채,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어떤 다른 모습의 내가 되어야 하는 경우나 너무나 많았다. 


내가 나이고 싶었던 나는, 그래서 나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나 자신이기 위해서 나는 나를 단단히 잡고 살아왔다. 그래서 늘 힘들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여유롭지만,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내 저 안쪽에서는 늘 긴장의 힘이 팽팽하게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가식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언제나 나였고, 내 모습을 지켜왔으니까. 아내이면서도 나였고, 엄마이면서도 나였고, 딸이면서도 나였고... 그렇게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향해서 꾸준히 걸어왔다. 늘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또 그 덕에 늘 한결같은 친구들이 내게는 많이 있다. 그 친구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었고, 받아들여주었고, 사랑해주었으니까. 


그러나 가정에서 전남편과의 관계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와 잘 지내던 기간에도 나는 늘 뭔가 힘들었었다.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너무나 달랐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한 가정을 꾸리고 살면, 각기 다른 모습 때문에 서로 힘든 것이 당연하고, 그러다 보면 감정을 누르고 살아야 가정이 평화롭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살면서 상대방을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런데 그것이 지금의 남편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남편이 내게 가장 바라는 것은,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의존적이지 않고, 그의 감정에 맞춰 살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참고, 그가 하고 싶은 것에 맞추려 하면 도리어 화를 낸다. 그렇다. 내 안에는 여전히 그래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게 힘들었다. 자동으로 그에게 맞추려 들었고, 그런 모습은 나도, 그도 어정쩡하게 만들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그때그때 말을 하라고 했는데, 나는 그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벙어리처럼 느껴졌다. 남편에게 나를 드러내는 일이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밝고 행복해 보이면 얄밉게 느껴진다고 했던 사람과 살면서, 나는 마음 놓고 행복해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불행해지기를 그가 바랐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불쌍하고 힘들어 보이면 잘해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나는 늘 불안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 감정은 늘 중용에 있었고, 나는 점점 더 웃지도 내색하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냥 나를 움켜쥐고 있었다는 표현이 가장 맞을 것이다.


내 성향이 어릴 때부터 그런 면이 있었던 것도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참아서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어려서부터 있었다. 쓸데없이 철이 일찍 들었던 것 같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아이 셋을 키우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인데도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했었다. 그냥 사주실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었을 텐데, 어린 마음에, 그걸 사주실만하지 못하면 부모님이 상처를 받으실까 봐 지레 속마음을 움켜쥐고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의 남편과 살면서, 때로는 서로 오해가 생기거나 문화적 차이로 서운한 일이 생겨도 처음에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참는 것이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내 표정의 변화를 읽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가 눈치 채지 못하면 그냥 넘어갔는데, 같은 오해가 반복이 되면 결국은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 그는 왜 진작 말을 안 했느냐고 다그쳤다. 


그냥, 나는 내 감정을 말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그랬다. 내 그때그때의 감정이 상대를 다치게 할까 봐 어려웠고, 분란을 일으킬까 봐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와 잘 지내고 싶은데, 그렇지 않게 될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엄한 부모님을 거스르면 안 되었고, 말대답을 하면 안 되었고, 선생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야단맞으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해야 한다고 교육받으며 자란 그런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서 나는 상당히 벙어리가 되어있었다.


사실 나는 그렇지 않은 줄 알았다.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있기도 할 만큼, 나는 대인관계에서 내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는 편이었고, 거절할 일은 어정쩡하게 굴지 않고 선명하게 표현해서 오히려 관계를 잘 유지하는 성격이었다. 해주고 싶으면 흔쾌히 해주고, 해줄 수 없다 싶으면 질질 끌지 않고 바로 알려주는 것이 내 장점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나보다 연장자이거나 뭔가 종속관계가 생기면 그게 어려웠다. 일종의 내 안에 들어있었던 트라우마였던 것 같다. 


나를 처음 만나서부터 남편은 끊임없이 말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 모습이 내 안에 들어있고, 자신은 그게 보인다고...


그는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그의 기분을 맞춰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침에 괜히 일찍 일어나서 자기 나가는 모습을 배웅하기를 원하지 않고, 자신의 도시락을 내가 챙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꿈에도 없다. 신혼 초에 내가 나가서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의 근처에서 얼쩡거리자 어리둥절해하면서 왜 나왔느냐고 물었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자기의 비위를 맞춰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질 거 같다고 말했다. 아내를 희생하게 하는 남자라니 얼마나 가여운가 말이다. 아내가 환하게 빛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남자는 강한 남자인 것이다. 우리 한국적 사고와는 많이 다르다. 헌신하는 아내가 아름답고 고맙다고만 생각하는 사회는 은연중에 상대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헌신하지 않는 아내는 괘씸한 사람이 쉽게 되어버리는 사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며느리가 되어버리는 환경 속에서, 많은 여자들은 자신을 버리고 순종함으로써 착하고 아름답고 고마운 사람이 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한 티브이 쇼에서 강수진 발레리나 부부가 나왔는데, 남자 진행자가 "밥은 누가 하느냐"라고 물었다. 남편이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대답을 넘겼지만, 굴하지 않고 재차 밥은 누가 하는지 또 묻는 진행자. 그가 누구였는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냥 한국 사회에 팽배한 "여자의 의미"는 그 여자 자신이 아니고, "밥"이었다.


밥을 하기 싫다는 말이 아니다, 밥을 하든, 청소를 하든, 빨래를 하든, 그것이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기꺼이 하는 일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꼭 아내만의 일이 아니라, 누구든 필요하면 선뜻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같은 일을 하여도, 자유 안에서의 선택이 될 때 그 일은 더 이상 무겁지 않게 느껴진다. 눈치를 주고, 알아서 해야 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의 일부가 되는 일들, 그 일로 인해서 내가 평가받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폰 배경 사진이다. 우리가 처음 사귀던 시절, 내가 자신 있는 포즈로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 좋다고 이 사진을 찍어놓고 두고두고 폰 배경으로 사용한다. 내가 민망하다 했더니, 아니라고, 이게 바로 나의 진짜 모습이라고 했다. 가림도 부끄러움도 없이 그냥 마음껏 자신을 펼치며 행복할 수 있는 나. 그래서 나도 비슷한 사진이 필요하다 했더니 장난스럽게 포즈를 잡길래 찍어서 나도 폰에 걸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선명하게 말할 수 있다. 또한 내가 원하지 않는 것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나만이 아니라 남편도 내게 똑같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것이 상대를 이용하거나 나만 편하자는 의도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상처 받지 않는다. 물론 우리도 다른 부부들처럼 알아서 서로 챙긴다. 다만, 그것이 희생이 아닐 뿐이다. 그래서 생색을 낼 필요도 없고, 서운할 일도 없다. "내가 이만큼 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런 표현은 우리 사전에 없다. 


우리 부부가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은 "I love you."이고, 그다음 많이 하는 말이 "Thank you."이다. 뭔가를 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당신이어서 고맙다는 말이다.  


Thank you for being you.

당신이어서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비로소 내가 될 수 있게 해 줘서 더욱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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