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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07. 2022

사랑할 사람이 필요했나 봐

자식 이외에 말이야

잠자리에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부부가 되어 나란히 누워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아직도 자주 나눈다. 삶이 너무나 감사하고, 신비롭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남편이 말했다. 산드라가 그런 말을 했었단다.


"He needs somebody to love beside his kids."

"그는 자식 이외에 사랑할 누군가가 필요해."


산드라는 남편이 너무나 좋아하던 친구의 아내이다. 오래전 그녀가 이 남자를 보면서 그런 말을 해줬던 것이다.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 아빠였던 그. 그런 그에게서 어떤 외로움을 봤던 것일까? 그는 전혀 여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산드라의 말이 맞았나 보다고 남편이 말했다.


"난 정말, 사랑할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아."




남편과 사랑에 빠지기 전 어느 날, 탱고 선생님과 둘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저녁 수업까지 들으려고 했기 때문에 식사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다.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내게서 뭘 느꼈을까? 뭘 읽었을까? 내 안의 쓸쓸함?


나는 딸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이 문득 나에게 말했다.


"사랑을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뜬금없는 말이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선생님이 내게 추파를 던지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냥 정말 말간 얼굴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내게 사랑이 필요해 보인다고. 


그래, 그 당시에 정말 많이 힘들고 많이 외로웠다. 하지만 나는 사랑을 원하지 않았다. 새로운 만남은 내게 더 큰 외로움을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만나서 외로움을 느낄 때, 그 외로움은 혼자일 때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마당에 마련된 예식장. 멀리서 못 오시는 부모님은 영상통화로 참석하셨다.


얼마 전에 한 결혼식에 다녀왔다. 남편 친구의 아들 결혼식이었다. 아주 작은 결혼식이어서 개인주택 마당에서 재미나고 소박하게 열린 자리였다. 막상 신랑의 아버지는 너무 멀리 있어서 못 오고, 우리라도 참석하자고 간 것이었는데, 어찌나 반겨주는지!


신랑은 우리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나의 남편을 보고는, 정말 표정이 환해졌다고 했다. 미소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우리의 결혼식에 온 사람처럼 기뻐했다. 


사랑에 가득한 그들은 결혼식에서 서로에게 편지를 읽어줬다. 서로의 사랑을 맹세하는 편지라니, 결혼식에 넣으면 정말 좋은 절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과 감사를 표하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순서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 된다. 남편을 만나 처음 사랑에 빠지던 순간은 눈먼 사랑에 가까웠다. 그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그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런 사랑은 대부분 그리 아름답게 끝이 나지 않던데, 우리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는 나랑 결이 같은 사람이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매 순간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느끼니 어찌 이보다 운이 좋을 수 있을까 싶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사랑에 고팠던 것 같다. 그게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아주 어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편을 섬기면서 자식 셋을 키우던 어머니는 하루하루가 버거웠을 것이다. 그래도 잘 살아내고 싶으셨던 어머니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셨다. 최선을 다했고, 어디서든 흠 잡히지 않으려고 늘 긴장을 하고 계신 듯했다. 


어머니로서 부족함이 없었지만, 삼 남매의 맏이 었던 나는 아마 좀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갖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애정표현을 잘하는 분이 아니었고, 나는 쓸데없이 속이 깊었다. 


다 커서는 남자 친구를 만나서 마음을 나누고 싶어 했지만, 그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큰 사랑을 원했던 것 같다. 많이 주고, 많이 나누고 싶었는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과 그렇게 잘 맞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아,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마음껏 줘도 되는구나! 그리고 또 나를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믿는 존재가 있을 수 있구나! 이런 깨달음을 겪으며 나는 경이로운 사랑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고는 의문에 빠졌다. 이런 사랑을 나누면 이렇게 마음이 충만한데, 왜 다른 사람과는 이것이 불가능할까? 남녀 간에 이런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어떤 어려운 일이 와도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그것은 남이어서 안 되는 것일까? 


우리 부부는 아마 각각 그렇게 생각했었나 보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만났다. 서로를 사랑함에 있어서 어떤 흥정도, 조건도, 생색도 없다. 처음에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어서 너무나 조심스러웠고 두려웠지만, 이제는 너무나 편안하다. 


우리는 정말, 자식 외에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었나 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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