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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Dec 01. 2021

약혼반지는 여자만 받나?

우리 부부는 문자로 연애를 했다. 사랑 고백도 문자로 받았고, 청혼도 문자로 받았다. 세상에 이렇게 무드 없는 사람들을 보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남편은 세상 둘째 가면 서러운 로맨티스트다. 우리가 주고받은 문자를 공개한다면, 그 닭살스러움에 다들 대패를 가져오라고 난리가 날 것이다. 하하!


우리의 연애 이야기를 펼치자면 너무 길어질 것이기 때문에, 오늘은 거기서 반지 이야기만 쏙 빼서 적어볼까 한다. 한국에서는 결혼할 때 예단으로 서로의 반지를 맞추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 보면 시부모님이 개입되어 반지 선택에도 영향을 주는 일이 흔하다. 반면 서양에서는 청혼의 상징이 바로 약혼반지이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남자가 자기 여자 친구에게 결혼을 신청할 때, 반지를 준비해와서 건네면서 묻는다.


"Will you marry me?"


흔히 영화에서 만나는 로맨틱한 장면이다. 남자들은 기가 막히게 여자 친구의 손가락 사이즈를 이미 알고 있으며, 여자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 반지를 받는 그런 장면을 우리는 참으로 많이 봤다. 그 반지를 끼고 나면 그들은 약혼한 사이가 된다. 


영화에서 이 장면을 보고 나면 늘 궁금했다. 그러면 결혼식장에서 주는 반지는 뭐지? 도로 돌려줬다가 다시 받나? 그 의문이 늘 궁금증으로 남아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물어본 적도 없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 했던 적도 없었는데,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드디어 그 의문을 풀게 되었다.


그에게 문자로 청혼을 받은 후, 나는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그를 만나러 왔다. 한 번도 정식으로 만난 적이 없는 약혼자라니, 이걸 로맨틱하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만나서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진 우리는, 사흘 만에 함께 반지를 사러 나갔다.


처음에 갔던 보석상에서 우리는 당황했다. 수많은 반지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으며, 반지 가격은 턱없이 비쌌다. 나름 꽃단장을 하고 꿀리지 않게 나갔지만, 휘황한 가격의 반지들을 보면서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그래도 겉으로는 티를 안 내고, 도도하게 거절을 하고는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에게 저렇게 비싼 반지가 필요할까?"


그리고 우리는 가격을 다시 잡았다. 나는 아무리 약혼반지여도 100만 원 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캐럿이라고 이름 붙는 반지를 원하지 않았다. 이혼 후 옛 결혼반지를 처분할 때, 다이아몬드는 정말 탄소 덩어리에 불과했다. 아기 돌반지만큼도 취급을 못 받는 신세였고, 나 역시 애타는 마음이 남지도 않았다. 


나는 보증서도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그의 마음뿐이었다. 그의 마음이 담긴 반지를 받고 싶었고, 어쩌면 영화에서처럼 그가 그냥 골라서 가져오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하지만, 그는 내 손에 어울리는 반지를 주고 싶어 했다.


그다음 날 우리는 다른 가게로 갔다. 사실 내 머릿속에는 원하는 반지 모양이 어렴풋이 있었다. Queen Anne's Lace 꽃봉오리처럼 피어오른 반지였다. 어디선가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정확한 모양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Queen Anne's Lace 꽃봉오리


점원이 권해주는 것을 이것저것 끼워보다가, 내가 상상했던 모양과 비슷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꺼내 달라고 해서 손가락에 끼워보니 역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는 별 감흥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티를 내지 않고 그냥 빼놓고 다른 반지를 다시 끼워봤다. 반지는 그가 내게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주는 것이고, 나는 그가 선택하는 반지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반지를 두 개 정도 끼워보고 나자, 그는 말했다. 


"저거 다시 껴 봐." 



내 가슴은 콩닥거렸다. 하지만 호들갑 떨지 않고 그를 쳐다 보고 빙그레 웃었다. 약혼반지가 결정된 것이다. 서로의 감정을 전혀 보이지 않고서 젊잖게, 그러나 속으로는 둘 다 정신없이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이제 결혼반지를 고를 차례였다. 내 생각에, 그것은 결혼 날짜를 정하고 나서 사도 늦지 않겠다 싶었지만, 무엇이든 속전속결하는 성격의 그는 결혼반지도 당장 골라야 했다. 그때 나는 약혼반지와 결혼반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결혼반지는 더 실용적으로 납작하게 생긴 것으로, 약혼반지와 겹쳐서 끼며, 결혼식 때 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결혼반지를 따로 준비하였다가 역시 결혼식 때 끼워주는 것이다. 즉,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여자는 한 개, 남자는 두 개의 반지를 갖게 된다.


그래서 나도 그 자리에서 그의 반지를 골랐다. 보석이 없는 단순한 반지였지만, 가장자리에 가늘게 장식이 있어서 깨끗하면서도 분위기가 있는 반지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반지 가격을 모두 지불하고, 손가락에 맞는 사이즈로 주문을 했다. 점원은 우리에게 결혼 날짜가 잡혔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빙그레 웃으며 "아직"이라는 말만 남기고 그곳을 나왔다. 하하!


상점 안에서 최대한 감정을 감추고 있던 우리는 나오자마자 둘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Yes!" "Oh my gosh!"


중요한 일을 해낸 기분이 들었고, 몹시 흥분되어서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주 보고 말했다.


"결혼 날짜가 잡혔느냐고? 우리 만난 지 나흘 됐어요!"


반지는 일주일 후에 다 되었다는 소식을 받았고, 나는 그에게서 정식으로 다시 청혼을 받았다. 나의 방문을 맞이하여 특별히 예약해 놓았던 깁슨 바닷가 별장에서 그는 영화처럼 무릎을 꿇고 내게 청혼을 했다. 


"Will you marry me?"

"Yes, I will."


원래는 바닷가에서 하려고 마음먹었었지만, 도저히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고 그는 나중에 말했다. 그렇게 그날부터 이 예쁜 반지는 내 손에 자리를 잡았다.



청혼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야 할 것 같지만, 아니다. 


나는 그를 실제로 만나보고 마음을 정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까지 왔다. 한 달간을 예정하고 티켓을 구입해서 왔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갔고, 결국 한 달을 더 연장해서 두 달을 함께 보냈다. 캐나다 동부에 사는 그의 누님 댁도 함께 방문하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추억을 만들어갔다.


우리가 서로 사랑에 빠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이 가슴속에서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과연 우리는 이것을 잘해 낼 수 있을까? 긴 평생을 각기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이제 새삼스럽게 합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는 내가 자신 때문에 고국을 떠나오는 선택을 한 후 후회하게 될까 봐 두려웠고, 나는 영어로 나머지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도 두려웠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좀 할 줄 안다 한들 한국말 같이 할 수는 없고,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으로 인한 오해도 틀림없이 생길 것이었다.


그런 두려움들 때문에, 헤어지기 일주일 전부터는 둘 다 말 수가 줄어들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어느 날, 식사 도중 무심한 듯 그가 문득 말했다. 


"왜 청혼은 남자만 하는 거지?"


그래, 참으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약혼반지는 여자만 받는 걸까? 주얼리는 여성들의 전유물이니까? 사실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머릿속은 계속 복잡했다.


그리고 드디어 떠나기 전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에게 말을 건넸다.


"I have something to tell you. (할 말이 있어.)"


이 남자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선언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는 이 말은 흔히 그 뒤에 좋지 않은 이야기를 달고 다니는 말이기 때문이란다. 


"어? 흠... 좋지 않은걸..." 그러더니, "하지만 당신이 웃고 있으니..." 라며 나를 마주 보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Will you marry me?"


나를 부드럽게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Yes, I will."


그의 대답과 함께 나는 침대 밑에 준비해 두었던 반지 케이스를 열어서,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줬다. 



"이건 약혼반지야. 당신이 반지를 두 개 껴도 괜찮다면, 내가 결혼반지를 다시 마련할게."


나는 그렇게 그 반지를 그에게 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정말 약속을 지키고 그에게 다시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정말 살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 눈물을 흘려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 의지와는 별개로 그냥 한 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러고 나서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우리는 둘 다 반지를 두 개씩 끼고 있다. 결혼반지는 심장에 보다 가까운 안쪽에 끼고, 약혼반지는 그 바깥쪽에 있다. 


결혼 서약 후 찍은 반지 인증샷


이 반지는 잠잘 때나, 밥 할 때나, 샤워할 때나 상관없이 늘 우리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다. 그리고 볼 때마다 여전히 그때처럼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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