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월하게 풀린 일은 없지만, 그래도 함께 있지 않은가!
드디어 비행기가 파리에 착륙했다. 어딘가 샜었다는 비행기가 안전하게 도착한 것만으로도 일단 감사를 해야겠지? 날씬한 여승무원들이 서비스하는 한국 항공사와 달리, 이곳 서비스는 어깨 떡 벌어진 사내들이 했는데 어찌나 나긋나긋하던지 오는 내내 불편함이 없이 챙겼다.
비행기에서 나오니 공항 사무실로 직접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내려와 버스를 타는 스타일이었다. 아, 샤를르 드골 공항이 이랬던가! 후끈한 날씨가 유럽에 왔음을 알려줬다.
공항으로 들어가니 세관 통과를 기다리는 줄이 제법 길었다. 폰을 켜니 다행히 인터넷이 바로 연결이 되었다. 그래서 곧장 프랑스 철도인 Oui.sncf 앱으로 들어가서, 이번에는 아예 회원가입을 했다. 매번 하다가 죽어버리는 상황이 발생되니까, 아예 회원이 되는 게 편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내 정보 다 넣고, 남편 정보도 넣고, 주소랑 신용카드 정보까지 다 넣었는데, 드디어 신용카드가 인증이 되었다! 이럴 것을 가지고 그 고생을! 그리고 검색으로 다시 생라자르 역(Gare Saint Lazare)에서 르아브르(Le Havre) 가는 기차를 찾았더니, 그새 가격이 또 올라있었다. 60유로에, 2등 칸... 우리가 처음에 샀을 때에는 40유로에 1등 칸이었는데! 그래도 그거라도 놓치지 않게 사려고 허둥지둥 계산을 했다. 길고 긴 세관 통과 길은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흘러갔고, 딱 우리 차례 앞에서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세관은 남편과 나란히 통과했고, 얼마나 머물 거냐는 간단한 질문 후 유쾌하게 보내졌다. 그리고 나와서 짐 기다려서 찾고, 거기 앉아서 좀 노닥노닥 쉬었다. 서로 심카드 번호도 확인을 하고 연결이 어떻게 되는지도 점검하고... 그리고 나와서 르와시 버스(Roissy Bus) 타는 쪽으로 갔다. 방향을 몰라도 버스 이름을 대니 사람들이 계속 가르쳐주더라. 얼마 만에 하는 불어인지! 한때는 불어로 먹고살았는데...
버스는 이미 와서 대기 중이었고, 현금으로만 기사에게 티켓을 살 수 있었다. 구입 후에는 반드시 기계에 넣어서 도장을 찍어야 한다.
그리고는 창밖을 내다보니 공항을 돌고 돌아 벗어나고 있었고, 노닥거리다 보니 창밖으로 파리 풍경이 펼쳐졌다! 우와! 드디어 파리에 들어온 거야? 남편이랑 나랑 둘 다 신나서 창 밖을 보며 사진 찍고 좋아했다.
오페라 광장(Place de l'Opera)에 내려서 그다음 코스는 식당이다. 점심을 먹어야지. 어느덧 4시가 넘어있었다. 우리는 원래 가고자 했던 글루텐 프리 식당이 있었기에, 약간 멀어도 강행군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나는 큰 여행가방을 끌고, 남편은 배낭을 메고 15분을 걸어가는 일이 이 더위에 쉽지 않았지만, 기대를 품고 파리 시내 거리를 즐기며 걸었다.
카페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점심은 진작에 끝났고, 저녁식사 때까지 음식 없단다. 이 당연한 것을 왜 진작 생각을 못 했을까? 파리는 옛날부터도 밥때 아니면 식당 안 여는데! 주인장은,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라며 내미는데, 온통 달다구리... 남편이 원래 글루텐 소화를 못 시켜서 일부러 글루텐프리 식당 유명한 곳으로 찾아온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다구리로 점심을 대신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남편은 알았다며 돌아서는데, 나는 거의 절망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남은 음식 없느냐고 다시 물었다. "우리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라고 불쌍하게, "인터넷에서 사진 보고 너무 먹고 싶어서 왔어요" 헸더니, 주인아저씨가 기다려보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혀 기대를 안 했기 때문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전화로, 누군가 주방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와서 해줄 수 없느냐고 묻는데, 저쪽에서 단호히 안된다고... 그래서 안 되는가 했더니, 아저씨 혼자 해 줄 수 있는 재료를 설명을 듣고는 알았다고 끊었다. 나는 불어 못 알아듣는 척하고 기다렸더니, 지금 되는 메뉴는 오직 햄+에멘탈 갈레뜨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냉장고에 재료도 그것뿐이고, 그냥 자기가 혼자 해줄 텐데 괜찮으냐고... 아이고, 감지덕지지!! 테이크아웃만 된다고 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음식을 포장을 받아서 그곳을 나왔다. 디저트는 안 사겠냐고 물어서, 그래, 하나 팔아주자 하는 마음으로 샀는데, 디저트 가격이 장난이 아니네! 그래도 도합 24.40유로가 나와서, 감사의 표시로 거스름돈 안 받고 나왔다. 프랑스는 원래 팁이 포함되어있지만, 서비스가 좋을 경우, 우수리를 받지 않는 것으로 감사를 표할 수 있다.
우리는 그곳을 나와서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서 포장된 눈물의 갈레뜨를 먹었다. 꿀맛이었다! 더위도 식히고 배도 채우고 나니 다시 힘을 내서 걸을 수가 있었다. 드디어 생 라자르 역 도착! 순식간에 다시 피곤해졌지만, 실패하지 않고 오늘 중에 르아브르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흐뭇했다.
역은 굉장히 크고 복잡했다. 내가 기억하는 역은 그냥 누구나 기차까지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표를 스캔하고 들어가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무임승차는 불가하겠네. 어리둥절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직원들이 안내를 돕고 있었다. 우리는 표가 있었으므로 무사히 기차까지 갈 수 있었다.
무사히 기차를 타서 자리로 갔는데, 우리 자리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그래서 내 자리라고 했더니, "누가 표에 맞춰서 자리에 앉느냐"며 되레 큰 소리를 냈다. "아무 데나 자기 편한 데 가서 앉으면 된다"고 마구 설교를 하는데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기분 상한 나는 그래도 앉겠다는데 그 남자는 계속 버텼다. 그러나 이 표를 어떻게 구했는데 이렇게 물러나겠는가!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짜증 팍 내면서, 그래도 내가 여기 앉고 싶다고 가라고 단호히 말했더니 거들먹거리며 짐을 챙겨 사라졌다.
나중에 보니, 다른 아저씨도 자기 자리에 앉은 아가씨 두 명에게 비켜달라고 하고, 그 둘은 미안한 듯 순순히 물러나던데, 내가 동양 여자이니 얕잡아 보고 그리 우겼던 것이었다. 어이없게, 한국 아줌마를 뭘로 보고! 그 자리가 가운데 마주 보는 자리여서 다리를 편히 할 수 있는 곳이었어서 더욱 양보할 수 없었지.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 자리에 앉았다가 쫓겨나는 일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두 시간가량을 같이 기차를 타고 달려서 저녁 9시에 르아브르 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직 해가 저물지 않는 이 동네. 그리고 숙소는 바로 역 근처였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멀어서 15분이나 걸렸다. 울퉁불퉁한 인도로 여행가방을 끌며 걸어가는데, 내일 렌트하길 얼마나 잘했다 싶은지...
숙소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알려준 순서에 따라서 열쇠를 찾을 수 있었고, 자그마치 3층에 있었다. 2층이라고는 했지만, 프랑스 2층은 사실 3층이다. 1층은 세지 않기 때문. 덕분에 남편이 무거운 카트를 들고 좁은 계단을 올라와야 했다. 지친 우리는 잠시 널브러져 있다가, 더 늦기 전에 뭐라도 주워 먹자고 10시쯤 숙소를 나왔다.
그런데! 구글 지도에서 분명히 영업 중이라고 나왔던 곳들은 이미 문을 닫았거나 아예 영업을 안 하는 곳도 있었다. 돌고 돌아 마침내 플랜 B라는 곳을 찾아들어갔는데, 시간이 늦어서 술만 판단다... 흑흑... 플랜 B도 안 통하니 플랜 C를 찾아야지?
결국 헤매다가 불빛이 켜있는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거기도 영업이 끝나서 케밥을 랩으로 감싸며 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흑! 오늘 진짜 꼬이는구나! 그러나 그냥 물러날 아줌마가 아니지. 그냥 남은 거 팔 거 없느냐고 졸랐더니 잠시 난처해하다가, 다른 것은 없고, 그냥 고기 썰어놓은 거 있는데 그거라도 가져갈래? 포장만 가능해. 그러길래, 얼른 달라고 넙죽 메흐씨(Merci, 불어로 감사하다는 말)를 외쳤다! 10유로 주고, 냉큼 받아서 집에 와서 지친 배를 채우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너무 지쳐서 인증샷도 못 찍었네!
시작부터 이렇게 종일 꼬이 고나니 맥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우리의 숙소가 있고, 우리가 함께 있다. 내일은 좀 유쾌하게 술술 풀리는 날이 열렸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