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에트르타 이 풍경들로 모든 것이 용서됨
시차 때문에 밤잠을 내 쳐 자지 못하고 조각 잠을 잤더니 막상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간신히 일어나서 샤워하고는 아침을 먹으려고 동네 슈퍼로 나갔다. 더 일찍 가고 싶었지만 9시에 문을 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간단히 달걀과 햄, 커피 등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급히 아침을 해결했다.
우리의 렌터카 예약이 10시였는데, 숙소에서 걸어서 자그마치 40분 거리였다. 우리는 택도 없이 늦을 운명이었다. 혹시 우버라도 이용할 수 있을까 봤더니 이 동네는 우버도 커버가 안 되더라!
그래서 식후에 허덕이며 40분을 정말 걸었다. 어디를 봐도 정말 유럽스러운 풍경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멀었지만, 다행히 아침부터 뜨겁지는 않아서 걷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40분은 바삐 걷기엔 좀 길었다.
허덕이며 20분 늦게 Avis 사무실에 도착하자,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프랑스인 여인 두 명이 앉아서 상당히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우리 둘의 신분증을 모두 달라고 하더니, 갑자기 800유로를 결제했다. 이게 뭐냐 물었더니 디파짓이라더라. 그리고 다시 100유로를 결제했다. 이것은 딱지를 떼면 필요한 거라고. 흠! 지금 결제되는 것은 아니고 홀드라고 했다. 그러더니 최종 결제금액을 주는데 익스피디아랑 너무 다른 것이다. 봤더니 추가 운전자를 넣어서 그런 것이었고, 내가 메인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남편이 운전하려면 추가를 해야 한단다.
그래서 그냥 취소하고 새로 하면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익스피디아와 똑같은 가격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건 그들이 받은 예약이 아니고 익스피디아를 통해서 받은 예약이기 때문에 자기네가 취소는 할 수가 없단다. 이건 뭔 시추에이션이냐! 그래서 폰을 들고 온라인으로 취소를 하려 했더니 무슨 연유에서인지 취소가 안 되었다. 여러 번 시도하다가 할 수 없이 국제전화로 익스피디아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받은 익스피디아 직원은 무척 친절한데, 자기도 무슨 연유인지 온라인 취소가 안 된단다. 그러면서 Avis 사무실에 연락해서 취소하게 하겠다고 하고 이쪽으로 직접 전화를 했다. 그러나 이 직원들은 요지부동으로 자기네가 취소할 수 없다는 말만 익스피디아 직원에게 반복하는 것 같았다. 결국 익스피디아 직원이 "저쪽 사람들이 영어를 못 하네요"라고 하더니 "이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옵션이 하나 더 있어요. Avis본사에 직접 전화를 해서 해결할게요."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받았다. 결국 그 사람이 모든 추가 비용 없이 전체 취소를 해줬다. 익스피디아는 서비스가 언제나 만족스럽다.
이렇게 우리는 앞의 것을 다 취소하고, 남편 이름으로 새로 차를 빌렸다. 워낙 저렴한 것으로 선택하다 보니 아주 유럽스럽게 작고 콤팩트한 차를 빌렸다. 심지어 수동기어! 나는 어떻게 하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래도 남편은 소싯적 기억이 나나보다. 운전을 터프하고 신나게 하더라.
아침에 정신없이 나왔기에 다시 일단 집으로 와서 집 앞에 주차를 하고, 가져갈 것들을 챙겨서 집을 다시 나섰다. 이미 오전 11시가 넘은 상황이었으므로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시골길을 30분여 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덧 에트르타(Étreta)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기자기 예쁜 도시가 먼저 눈에 확 들어왔다. 아! 여기에 30년 전에 왔었지만, 정말 아무 기억도 안 난다 생각했는데, 예쁜 건물들을 보니 희미하게 기억이 났다. 나중에 돈 많아지면 여기 놀러 와서 며칠 묵어야지 했었는데, 여전히 묵기 어려운 실정인 것을 보면, 돈 많아지는 것은 쉽지 않은가 보다! 안내 센터를 가고 싶은데 주차장이 먼저 나타나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늘 주차운이 있다고 믿는데, 역시나 어떤 아저씨가 자기 나갈 거라며 우리 차에 손짓을 해줘서, 그 빡빡한 주차장에 어렵지 않게 세울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우리는 주차 자동 계산기 기계를 쓸 줄 몰랐다.
기계에 가서 이것저것 누르다가 희망하는 시간이 나와서 눌렀더니 영수증이 안 나온다! 에이! 하고서 다시 시도했는데, 혹시 돈만 먹고 안 될까 봐 동전을 넣으려니 막상 잘 안되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카드로... 영수증이 나오긴 했는데 뭔가 흡족하지 않았다. 출차 시간이 안 쓰여있는 것이다. 가격만 쓰여있고... 이게 뭐야 하다가, 그냥 영수증 그대로 차에다 두고 일단 바다로 향했다. 우리가 기다리던 바다!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나 특이하고 아름다운 코끼리 바위가 대박이었다. 항상 같을 것 같은 바위지만, 몇 걸음 옮길 때마다 그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우리는 둑 위에서 보다가 결국 자갈밭으로 내려갔다.
자갈밭도 좀 걸어보고 싶어서 바닷가로 내려갔다. 코끼리 바위로 가까이 가니 느낌이 다른 바위들도 보인다. 구멍도 숭숭 뚫리고...
그리고 바닷가에 한참 서있었다. 어릴 때부터 무슨 이유인지 바다만 보면 좋다. 바다 냄새부터 좋다. 바다 바람도 좋다. 그리고 바다 물소리는 최고다!
한참을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주차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는 거 같아서 주차 기계로 다가갔다. 아까 좀 헤맸으니 이번엔 잘해보자, 그러고는 티켓 판매대로 갔는데, 우리가 헤맸더니 어떤 프랑스 여자분이 선뜻 도와주겠다고 했다. 아까처럼 똑같이 해서 티켓을 뽑았더니 그건 무효한 티켓이란다. 그러면서 새로이 해주는데, 카드는 결제가 안 되고, 동전을 쓰려면 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해서 시간을 입력하지 않고 동전부터 넣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시간까지 동전을 채워서 프린트를 하고 보니, 이런! 티켓이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는 제대로 시간이 찍혀 나온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차로와 보니 그사이에 주차위반 딱지가 떡 하니 차 앞에 붙어있었다! 무효한 티켓을 맞다고 넣어왔으니 딱지를 뗄 수밖에!
이걸 어떻게 하나 생각하다가, 어차피 뗀 딱지, 그까짓 거! 일단 점심부터 먹자! 하고는 식당을 찾아갔다. 우리가 원래 가고 싶었던 식당은 글루텐프리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남편이 글루텐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알러지가 있어서 밀가루 음식은 하나도 못 먹는데, 검색해보니 에트르타에 글루텐프리 식당이 한 군데 있어서 염두에 둔 곳이 있었다. 구글맵을 검색해보니 30분 후에 문 닫는데 그래도 가겠느냐고 나왔다. 에효, 또 못 먹어? 이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3분 거리니까 그냥 가 보자 그러면서 터벅터벅 걸어갔더니, 웬걸, 성업 중이었다. 가게 이름은 Le Lann Bihoué. 들어갔더니, 정원에 앉겠느냐고 묻는다. 정원이 어디? 정원은 안쪽에 있었다.
남편은 연어와 에멘탈 치즈가 얹어있는 갈레뜨를 주문했고, 나는 달걀과 햄이 들어있는 메뉴로 주문했더니 이렇게 거창한 것이 나왔다. 프랑스인들이 많이 먹는 메뉴인 갈레뜨(galette)는 크레이프 위에다가 여러 가지 식사가 될만한 것들을 얹어서 나오는 종류의 음식인데, 특히나 브런치나 점심으로 각광받는 메뉴이다. 샐러드 역시 귀엽게도 작은 크레이프 그릇을 만들어서 담아 나왔다.
보통 당연히 밀가루로 만드는데, 이 집은 메밀가루를 사용해서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먹고나도 더부룩함이 없고, 크레이프도 약간 구수한 느낌이 들었다. 가격도 하나에 10유로가 안 되어서, 커피를 두 잔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20불이 살짝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대부분의 식사에 팁이 포함되어있어서, 미국이나 캐나다와는 달리, 구매 후 뭔가 당한 듯한 느낌을 받지 않아서 좋다. 계산서에 Service Compris라고 쓰여있다면 팁을 주지 않아도 좋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이제 이 티켓을 해결하자. 티켓에 쓰여있는 주소로 찾아가니 문 닫힌 경찰서가 있었고, 그 옆쪽으로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었다. 뭔가 도움을 요청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들어갔는데, 무진장 불친절했다. 마치 파리 쫓아내듯 하면서, 우리는 그런 거 안 하니까 경찰서 가보라고 정색을 하며 외면하더라. 뭘 그렇게까지야! 나와서 다시 경찰서를 기웃거려봤지만 닫힌 문이 열릴 리가 없지.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리다가, 그 옆에 시청이 있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이건 집에서 내는 거란다. 가서 해결하라고... 그래서 우리는 이게 렌터카인데 어쩌지 했더니, 친절하게 렌터카에 전화해서 얘기해주고, 그냥 거기 들고 가서 해결하면 된다고 했다. 인포메이션 센터보다 시청이 낫구나!
아무튼 뭐 이쯤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봐야지. 남은 시간 그냥 즐기자! 그러고는 주변 건물들을 구경하며 거리를 잠시 걸었다.
위의 건물은 호텔이었는데, 돈 주고 자라고 해도 못 잘 거 같다. 곧 무너질 거 같아서! 예쁜 건물들도 줄줄이 이어져있었는데, 막상 사진에는 많이 담지도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그렇게 걷다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저 높은 계단 위도 올라가 보자 하며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10분쯤 올라가면 된다고 했지만, 막상 가서는 한 시간 놀다 내려왔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서 중간에 돌아서 왔다.
올라가는 길은 덥고 힘들었지만 올라가서 보니, 엄마 코끼리 바위에 아기 코끼리 바위들이 차례로 보이면서 장관이 펼쳐졌다! 몇 걸음 더 가서 찍고, 또 조금 더 가서 찍고... 그러면서 사진을 한 없이 찍어서, 추려서 몇 개만 정리하느라 무지 고생했다!
똑같은 코끼리 바위도 위치에 따라 달라 보이니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어느 시점에서 계속 가기를 멈추고, 지친 다리를 쉬어가며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주차는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다시 들여다보니 7시까지 유효하단다. 그러면 7시까지 놀자. 많이 걸었더니 슬슬 다시 배가 고파졌다. 노르망디 지방에 왔는데 해산물을 안 먹고 물러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고는 남편이 전날 검색해 둔 식당으로 찾아갔다.
두 개의 식당이 나란히 있었는데, 좀 더 유명한 Le Homard Bleu를 먼저 들어가 보니, 아직 식사 안 된단다. 그때가 5시 반쯤 되었었는데, 7시에 시작한다고. 하지만 뭐 어차피 분위기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옆에 있는 Les Roches Blanches로 갔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기 테라스에 딱 앉으니, 저 멀리 바위 벼랑이 보이고, 바람 선선하게 부는 그늘에 앉아,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에트르타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자리라고 불러도 될만한 위치였다.
무엇을 주문할까 고민하다가, 남편이 좋아하는 애플 사이다(Cidre)와 노르망디 스타일의 홍합요리(Moules Normande)와 노르망디 샐러드(Salade Normande)를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물은 많이들 사 먹지만, Carafe d'eau(꺄하쁘 도)를 달라고 하면 수돗물을 준다. (30년 전의 기억을 소환해냈다!)
주문은 탁월했다. 해산물 워낙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이 한 없이 나오는 귀여운 꼬마 홍합에 반해서 정신없이 먹었다. 크림소스도 부드럽고 맛있었고, 샐러드는 좀 짜서 남겼지만, 지퍼백 가지고 다니던 것에 담아서, 내일 아침식사로 챙겼다. 미국에서는 남은 음식을 포장해가지 않으면 맛없다는 뜻으로 흔히 받아들이는 정도로 늘 포장박스가 구비되어있는데, 프랑스는 박스 달라고 하니 난처해했다. 그러나 이 한국 아줌마는 언제나 모든 것을 준비하므로 비닐 지퍼백을 가방 안에 가지고 있었고, 남은 음식을 잘 담아올 수 있었다. (남편은 이런 나의 가방을 메리 포핀스 백이라고 부른다, 한 없이 뭔가 나온다고!)
저녁 잘 먹고, 7시 되기 직전에, 아쉽지만 에트르타를 빠져나왔다. 예쁜 도시 안녕!
숙소로 곧장 갈 수도 있겠지만, 내일 아침도 먹어야 하니 마트를 들르기로 했다. 프랑스 전역에 퍼져있는 까르푸(Carrefour)가 가장 만만해서, 숙소 가까운 곳으로 찾아갔다. 차를 세우려니 주차장이 만차. 음, 어떻게 하지? 하는데 길 건너에 빈자리가 하나 보인다. 제법 큰길이었는데, 남편이 무단 횡단으로 주차를 뙇! 이 기발함에 감탄하며 나와서 보니 길 건너에 경찰이 있었다! 아이고! 두 번째 딱지 뗄 뻔했네! 그런데 뭔가 다른 일로 바빠서 우리를 못 본 것 같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트로 들어갔다.
오늘도 정말 에피소드 만발한 하루였다. 렌터카 걸어가느라 힘들었던 것, 국제 전화하며 씨름한 것, 주차 딱지 뗀 것 등등, 평범하지 않은 하루였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있어서 행복하고, 또한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으니 감사하다. 그래서 하루의 마지막은 와인과 치즈로 마무리했다.
내일 또 어떤 소동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이젠 괜찮다. 마음 중무장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