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타도 Go! 타면 더 좋으니 Go!
그렇게 어렵사리 생미셸 Saint Michel 동네로 돌아온 우리는, 그냥 마음이 좀 편해졌다. 우리가 오늘 파리를 시작했던 원점으로 온 것이니까 마음이 놓이는 듯한 느낌이랄까? 몽마르트르 근처에서 지하철을 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헤매던 불안감이 사라지고, 막연히 여기서는 괜찮은 식당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미리 맛집 준비를 안 해온 우리에겐 시련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폰 배터리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의외로 데이터가 쉽게 잡히지 않았고, 늘 그렇듯이 길 찾기 할 때의 내 위치 확인이 늘 부정확했다. 와중에 열심히 맛집을 검색했는데, 남편이 딱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말했다. 50년 전통이라 했던가? 오래된 식당에 노인들이 서빙한다는 글이 있었고,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대감을 안고 찾아간 그곳은 문을 닫았다. 왜 그런지 이유도 쓰여있지 않았다. 시간이 덜 되어서 아직 안 열은 것일까 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8시가 다 되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문 닫은 식당 사진이라도 찍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식당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으니 다음에 다시 파리를 방문해도 못 가지 않겠는가? 여행기를 적기 위해 구글에 검색을 했는데 확실히 여기인지 모르겠다. 비슷해 보이는 식당을 찾았으니 일단 기록해두는 걸로! La Cochonnaille (21 Rue de la Harpe, 75005)
아무튼 우리는 발길을 돌려 다른 식당을 찾아 헤맸다. 어쩐지 이 동네에는 프렌치 레스토랑보다는 외국음식점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파리까지 와서 중식이나 베트남 요리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해산물 전문 식당도 있었지만, 밖에 굴을 널어놓은 모습이 그리 식욕이 당기지 않았고, 가격도 많이 비쌌다.
결국은 너무 배가 고파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모퉁이에 있는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살 것 같았다. 오늘도 지겹게 걸었구나. 주문을 하려고 메뉴판을 보니 책을 가지고 만들어서 재미있어 보였다. 열심히 식당을 골라서 들어갔지만 결국 이곳은 프렌치 식당은 아니었고, 약간 퓨전 집이었다. 우리는 둘 다 오늘의 메뉴에서 그냥 골랐는데, 그래도 남편이 고른 감자와 껍질콩을 곁들인 농어구이는 프렌치 스타일이었지만, 내가 선택한 새우 샐러드는 타이음식이었다! 이런! 메뉴가 불어로 쓰여있으니 당연히 프랑스식 음식일 거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서비스는 친절한 편이었고 일단은 뭔가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참 재미난 것이,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어느 식당에서나 판매하던 애플사이더를 파리에서는 아무 식당에서도 판매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행 내내 그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애플사이더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와인을 한 잔씩 마시기로 했다.
그럭저럭 배가 불러지면서 우리의 일정을 점검하다 보니, 미리 예매했던 파리 유람선은 언제 탈것인지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우선 낮에 타고 싶은가 밤에 타고 싶은가를 물었더니 남편은 밤에 타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대답을 했다. 역시 유람선은 야경이 제맛이긴 하다. 그러면 우리에겐 오늘 밤과 내일 밤이 있는데, 어느 편이 나을까? 남편은 당연히 오늘 일정이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도 뭔가를 여기에 더 넣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가 불현듯 내일은 어쩐지 더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도 갈 거고, 저녁때는 아무래도 일찍 들어와서 짐을 싸는 게 그다음 날을 위해서도 나을 것 같고...
내가 온라인으로 구입했던 할인 티켓은 Beateaux-Mouches (바또무슈) 유람선 티켓이었다. 얼른 시간표를 검색해보니, 30분마다 한 대씩이었던 줄 알았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고, 게다가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10시 출발 편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배였다! 허둥지둥 교통편을 확인해보니, 식당에서 선착장은 상당히 멀었다! 무슨 생각을 했던 거지? 왜 우리는 굳이 생미셸역으로 와서 저녁을 먹은 것일까? 진작 이 생각을 했으면 그 동네에 가서 뭔가 먹었을 텐데... 총 시간 41분, 그리고 그때 시각이 9:07이었다. 아직 식사 완료도 안 한 상태였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여기에 가는 것이 맞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나 결론은, 배를 놓치면 밤의 에펠탑이라도 보고 오자는 것으로 내려졌다. 그리고 남은 음식 포기, 와인만 끝내고 계산하고 화장실도 들러서 그곳을 나왔다. 와중에 화장실 입구가 왜 이렇게 예쁜지!
전철역에 도착한 시간이 이미 9시 24분. 정말 빠듯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가기로 했으니 서두르자! 해가 저물면서 너무나 예쁜 이 동네 사진도 못 찍고 서둘러 전철역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전철역 사진 하나 건졌다!)
전철 안에서라도 뛸 수 있으면 뛰고 싶은 마음이었다. 갈아타는 곳을 지나 내릴 곳이 다가오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못 타면 말지... 하는 마음이면서도 이럴 때면 왜 이렇게 조절이 안 되는지! 도착한 시간이 이미 9시 54분. 전철 문이 열리자 한 가족이 허둥지둥 달려 나갔다. 한국인들인 것으로 보였다. 그들도 유람선을 타려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도 그들을 쫓아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바로 앞에 알마다리(Pont D'Alma)가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세상에! 우리가 여기에 왔구나! 금실처럼 빛나는 에펠탑은 화려한 사이키 조명을 뽐내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우리는 몇 초간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여유롭게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도 저 셀피족에 합류하고 싶었지만 일단 사진 한 장만 찍고 반대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강둑으로 내려가니 저 멀리 유람선이 떠나는 것이 보였다. 에효, 망했네... 한숨이 밀려오며 포기하려는 순간, 다시 보니 유람선이 하나 더 보였다. 내가 놓친 줄 알았던 유람선은 이미 한 바퀴 돌고 온 배였고, 마지막으로 에펠탑 가까이 가서 다시 보여주려는 중이었던 것이다.
도착해서 유람선 선착장의 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우리는 그대로 매표소로 갔다. 준비해온 번호를 내밀었더니 저쪽 가서 표로 바꾸란다. 창구는 왜 이렇게 느린지...! 시간은 이미 10시였는데, 그래도 개찰구 직원이 우리를 기다려줘서 우리는 무사히 배에 탈 수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배에 올라서 이층으로 바로 올라갔다. 자리는 좀 남아있었고, 그곳에서 보는 에펠탑은 끊임없이 반짝이며 아름답게 자태를 뽐냈다.
우리가 숨을 고르는 사이 배는 출발하고, 우리 눈앞에 아름다운 파리의 야경이 펼쳐졌다. 배는 강 위를 떠 가고, 양쪽으로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그리고 앞으로는 다리가 나타났다. 처음으로 다리 밑을 지나갈 때는 모든 사람들이 저절로 우와! 하는 탄성을 질렀다. 그냥 가슴속이 서늘한 그런 느낌이랄까?
유람선은 생각보다 길었다. 정말 한 시간을 다 채웠는데, 한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편안하고 넉넉한 기분으로 파리를 유람한 느낌이었다. 파리의 반대편 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에펠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에펠탑이 가까워지자 모두들 흥분이었다. 낮에 보면 시커먼 거대한 철 덩어리인 에펠탑이 밤에는 마치 금실로 짠 아름다운 보석처럼 보인다. 만지면 금가루가 묻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명이 주는 위대함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온통 금색으로 빛나는 파리, 그리고 그 절정은 역시 에펠탑이었다. 에펠탑 사진만 30장도 더 찍은 것 같다. 엄선해 고르느라 애 먹었다.
한 시간 만에 선착장으로 돌아온 배. 내리는 사람들 가슴속에 파리가 하나 가득 차있는 느낌이었다. 배에 오를 때는 그리도 서둘렀는데, 이제 나가는 길은 유유자적 걷는다. 호텔로 돌아가려면 또 마음이 급하긴 하지만 그래도 달릴 필요는 없을 테니까.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한적한 선착장은 이제 문을 닫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원래 생각으로는 다시 알마 다리로 올라가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었으나 시간도 늦었거니와 배에서 실컷 에펠탑을 보고 났더니 다시 그쪽으로 올라갈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게다가 구글맵 검색 결과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두 가지가 가능했는데 우리는 반대쪽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알마 다리 쪽으로 가서 아까 내렸던 그 전철을 계속 더 타고 가서 다시 12호선으로 갈아타는 것이 더 간편해 보이긴 하였으나, 그쪽 전철이 몇 시까지 다니는지도 몰랐고, 그쪽에서 갈아타는 열차가 폐쇄가 되어 있다는 사인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낮에 하도 고생을 하고 걱정을 했던 터라 또다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밤늦은 시각에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강둑을 따라 반대쪽으로 걷다가 길 위로 올라왔다. 가로등이 있는 길이 운치 있게 보였고, 아래로 강과 유람선들이 서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하긴 무엇인들 즐겁지 않으랴! 신혼여행으로 파리에 와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이번에 제법 걸어서 다른 역으로 가야 했는데, 그 덕에 아까 휘리릭 지나갔던 알렉산더 3세 다리(Pont D'Alexandre III)를 다시금 찬찬히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걸어 다니면 다 아름다운 파리...
귀가하니 어느덧 12시가 넘었고, 우리는 오늘 아침에 선물로 받은 와인은 손도 못 댄 채 대충 씻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파리~ 내일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