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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19. 2019

6_4.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보자

그리고 계속 헤매고 고생

글루텐 프리 빵집에서 나오니 비는 주춤해졌다. 이제 배도 채웠겠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어차피 강 건너 이만큼이나 왔으니 몽마르트르 언덕에나 올라가자 했다. 사실 나는 파리 곳곳에 다 추억이 있지만, 어디가 유명 한지도 잘 모르는 남편은 그저 나 가자는 곳으로 따라가겠다고 했다. 



베이커리 있던 Parmentier 역에서 3호선을 타고 Père Lachaise 역으로 가서 2호선으로 다시 갈아탄 이후 Anvers 역까지 갔다. 이 지역 근처는 우범지역으로 유명하다. 밤에는 혼자 다니지 않는 게 좋으며, 낮에도 온갖 소매치기가 들끓는 곳이다. 


20대 때 잠시 아르바이트로 유럽 투어가이드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옆에서 걷던 손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누군가 와서 낚아채려는 바람에 완전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목걸이 줄이 3개나 되어서 끊어지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놀랐었다. 그게 바로 이 몽마르트르 지역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도 바싹 긴장을 하고 핸드폰과 카메라를 가방 안에 꾹 눌러 넣고 걷느라 올라가는 길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사진 찍을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와중에 양쪽으로 상점이 늘어져 있어서 길은 나름 재미있었고, 우리는 기웃거리며 모자를 구경하다가 결국 남편의 모자를 구입하게 되었다. 물건들 가격이 전체적으로 파리시 내보 다도 쌌다. 가게 주인들은 이 동네 분위기에 맞춰서 상당히 짓궂어 보였지만, 그래도 꿋꿋이 가격을 흥정하여 조금 깎았다. (아래 사진을 보면 그래서 갑자기 모자 쓴 남편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여행 전부터 벼르던 남편의 모자를 드디어 구입했다!


Funiculaire 타는 곳
Funiculaire 타고 올라가는 길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이 엘리베이터 (Funiculaire)를 타면 훨씬 편리하다. 비용은 전철 한 구간 가격과 같지만, 처음에 구입한 파리 1주일권인 나비고(Navigo)를 가지고 있으면 따로 표를 살 필요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계단이 지겨워지기 시작한 우리에게 이것은 꼭 타야 하는 필수 교통수단이었다. 사진처럼 저렇게 계단의 길을 따라 올라간다!


파리 시내가 한눈에!


그렇게 올라왔더니 이런 경치가 앞에 펼쳐졌다. 비록 비 온 후라서 구름이 끼기는 했지만, 파리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굳이 비싼 돈을 내고 몽파르나스 타워나 에펠탑에 올라가지 않아도 이렇게 여기서 파리를 내려다보며 즐길 수 있다.


성심(Sacré-Cœur) 성당


그리고 거대한 하얀 돔 지붕으로 인해 파리의 상징 중 하나로 인식되는 성심 성당이 우뚝 솟아있었다. 역사가 아주 깊은 건물은 아니고 1900년대 초반에 완공되었으며, 다섯 명의 건축가의 손을 거친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다. 그 색상과 돔의 모양 때문에 멀리서도 화려하게 눈에 띈다. 


내부 사진을 여러 장 찍었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카메라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흔들리거나 초점이 안 맞아서 내부 사진은 건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이거 한 장... 실내에서도 돔의 공간이 눈에 띈다.



실내를 구경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서 파리 시내 쪽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화창하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구름이 낀 모습이 오히려 더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그래도 와중에 시내가 다 보이니 행운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성당 바깥으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골목을 돌아갔다. 유명한 떼흐뜨흐 광장 (Place du Tertre) 광장을 한 바퀴 돌지 않고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20세기 초반 피카소, 모딜리아니, 유트릴로 등의 화가들이 거주하면서 현대미술의 거점이 되었던 작은 광장이다. 



지금은 무명 화가들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초상화를 그려주느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골목 초입부터 벌써 자리 잡고 그리는 사람들이 보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호객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카페들도 늘비하게 저녁 식사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가 온 후의 조용했던 거리는 슬슬 활기를 띄기 시작하고, 상점들도 접어두었던 의자들을 펼치고, 조명등을 켜기 시작했다.


내 카메라는 계속 말썽을 부리면서 사진 찍기를 방해했는데 딱 원하는 구도로 찍은 사진은 상당히 흔들렸길래, 포토샵을 이용해서 파스텔 그림처럼 변환시켜보았다. 아래 두 사진은 같은 장소인데 각도 따라 느낌도 다르네...



우리는 사실 우리의 초상화를 굳이 그릴 필요는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정 원하면 나중에 딸에게 부탁하는 걸로!) 그렇게 그곳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빠져나왔다. 거기서 저녁을 먹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어쩐지 너무 관광지 한 복판에서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저녁은 그냥 시내에 가서 먹자고 했다. (그냥 먹을걸...!)


그래서 다시 성심 성당 앞쪽으로 나왔더니 새신랑 새신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런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참 멋지겠다. 우리도 나름 기념촬영을 하고 싶었는데, 앞쪽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가 옆으로 살짝 돌아가서 한 장 찍을 수 있었다.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아래 풍경을 파노라마로 다시 한번 찍었다. 아까보다 구름이 걷혀서 시야가 더 깨끗해 보였다. 그러나 구름은 여전히 하늘에 한 가득...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걸어내려갈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으나 다시 고이 마음을 접고 푸니쿨라를 타기로 했다. 이미 오래 걸었기 때문에 다리가 노곤 노곤했고, 걷다 보면 분명히 후회를 할 테니 말이다.


파리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인다.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가는 중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 우리는 Noglu라는 또 다른 글루텐프리 식당에 갈까 했는데, 예약도 안 한 데다가 전화가 걸어지지도 않았다. 노글루는 체인이 세 군데가 있는데, 그중 베이커리는 이미 문을 닫았기 때문에 그냥 내일 편히 가는 것으로 마음을 돌리고, 생미셸 노트르담에 가서 적당한 곳을 찾아 저녁을 먹자고 했다.


구글에 검색을 해보니 Barbès - Rochechouart 역에서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다고 나왔다.  우리가 올 때 사용했던 Anvers 역으로 가면 갈아타야 했기에 우리는 그 역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면서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동네도 어수선하고... 길 가는 어떤 아가씨에게 역을 물었더니, 그 역에서는 전철을 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러더니 어쩌면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실 우리는 어떤 대안도 없었으므로 그냥 역을 향해 갔다. 이미 우리 폰은 배터리가 바닥상태 가까이 가고 있었고, 실수로 보조 배터리도 안 들고 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폰으로 열심히 검색을 할 형편도 못 되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걸어서 역으로 갔는데, 역 안의 분위기는 상당히 험악했다. 


저 계단 아래쪽에서 역무원들이 막고 있었다. 사람들은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열차를 타러 내려가겠다는 사람들과 안된다고 막는 역무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예 계단 앞에서 막고 있었고 왜 그런지도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매표소에 가서 줄을 섰다. 거기도 이것저것 묻는 사람들 때문에 한참 걸렸다. 결국 우리가 들은 답변은 북역(Gare du Nord)까지 걸어가서 거기서 타라는 얘기였다. 에효, 또 걸어야 해?


왼쪽 사진2개 상황에서 오른쪽 상황으로 갑자기 변경


이미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다리를 끌고, 위치추적도 제대로 안 되는 폰을 들고 물으며 걸으며 북역을 향해 갔다. 거리도 어쩐지 어수선해 보였다. 자동차들도 통제되려나 하는 생각도 했다. 북역은 파리에서 북부 쪽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큰 기차역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갔더니 일단 기차역은 찾았다. 그러면 전철은 어디서 타야 할까? 



아름다운 Gard du Nord 북역


화려한 위용을 뽐내는 이 역 앞에는 경찰들이 많이 서 있었고, 우리는 그들에게 전철역을 물었다. 경찰관은 역 안으로 들어가서 지하로 내려가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면서, 그렇지만 여기는 소매치기 강도가 많으니 그렇게 손에 핸드폰이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안 된다고 말해줬다. 


내가 소매치기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해왔는데 남편은 그게 실감이 안 나는 듯한 반응을 계속 보였었다. 그런데 경찰관들까지 그렇게 말을 하자 "도대체 얼마나 심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아무튼 얼른 카메라를 다시 가방에 넣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탄 열차는 일반 시내용 열차가 아닌 교외용 RER열차였다. 시내에서만 타면 비용은 마찬가지로 내지만 파리 교외로 나가는 순간 비용이 확 올라간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시내에서 한 정거장만 탈 예정이었고, 우리가 가진 일주일권 티켓 나비고는 교외까지도 모두 커버하는 표였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고픈 배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우리가 오늘 처음 방문했던 동네까지 다시 이동했다. 이제 식당을 찾아야지. 배터리 얼마 안 되는 폰으로 어디를 찾아야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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