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꼬인 오후였지만, 그래도 괜찮아, 파리에 있잖아
앞선 글에서 패스 한 점심은 글루텐프리 식당 Yummy & Guiltfree 였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사진도 제대로 못 찍나 보다. 가게 앞에서 찍은 것은 아예 없고, 사진 속의 음식도 그닥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가게 정면 사진은 식당 사이트에서 업어왔음)
가게 상호가 재미있다. Yummy & Guiltfree. 언뜻 보면 글루텐프리라서 쓰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트프리(죄책감 없음)이다. 즉, 맛있지만, 글루텐이 없으니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나름의 주장이다. 이곳에서는 거의 와플 위주로 음식을 판매한다. 메뉴판에 보면 짯만/단맛으로 나뉘는데, 짠맛은 식사용, 단맛은 디저트용이다. 처음에는 Croque Monsieur(크로크무슈)라는 제목만 보고 샌드위치를 먹겠구나 했는데, 바삭한 와플 위에 치즈가 줄줄 녹아내려서 완전 맛있게 먹었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다시 시청 앞을 방문했고 우리의 숙원과제였던 키스도 무사히 마쳤다. (지난 게시물 참고 : https://brunch.co.kr/@lachouette/31)그리고 서서히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면서 갑자기 날씨가 쌀쌀하게 느껴졌다. 긴팔 셔츠도 안 들고 나왔는데, 8월의 파리에서 서늘함을 느낄 줄이야!
우리는 이번에 사실 다른 목적지를 딱히 계획했던 것이 아니어서 그냥 발길을 옮겨 Pompidou(퐁피두) 센터 쪽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뭔가 검색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옛날 옛적 기억을 떠올려 거기에 도서관이 있었다는 것과 그 앞의 광장에 잠시 앉아서 쉬곤 했다는 것 정도만의 기억을 더듬어 걸어갔다.
그리고 그 광장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다만 비가 와서 어디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는 것.
뭔가 몹시 그립던 그곳이었는데, 그리고 그곳이 분명 맞는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냥 그곳이 아닌 듯 서먹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그런 걸까? 비가 와서 그런 거라고 그냥 우겨보고 싶다.
현대미술관과 도서관이 들어있는 이 건물은 1977년 지어질 당시 내장이 튀어나온 듯한 이 흉물스러운 디자인으로 논란이 많기도 했지만, 지금은 파리의 중요한 문화 예술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두둥!
이상하게도 스산하고 쓸쓸했던 이유는 비가 와서가 아니라, 화요일이 휴무이기 때문이었다! 헛발질한 거다. 안을 들여다보는데 문 안 열었다고 가라고 손짓하는 관리인이 보여서 계속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더니, 도서관도 미술관도 화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단다.
당당하게 쓰여있는 Fermé le mardi... 우리는 그렇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기운 빠진 우리는 그러면 이제 어딜 가지? 하다가, 그럼 Orangerie(오랑쥬리) 뮤지엄에 가자고 했으나, 검색해봤더니 역시 그곳도 화요일에 문 닫는단다. 음... 파리의 박물관들을 화요일에 다들 닫는구나. 보통은 월요일에 닫던데...
그러자 남편이 출출하다고 말했다. 점심때 먹은 와플이 다소 약했나 보다. 하긴 원래 빵 배는 빨리 꺼지니까. 그래서 그러면 다른 글루텐프리 베이커리에 가보자고 했다. 검색을 해보니 Chamballand라는 빵집이 전철을 두 정거정 타면 된단다. 그런데 전철역까지 꽤 걸어가야 했다. 살살 걷기 시작하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유럽은 원래 비가 와도 그리 오래 오지 않는다. 잠깐 쏟아붓고 그치기 일수니까 이런 비를 몽땅 맞고 나면 그다음에 쨍해서 난처할 수도 있다고 우기면서 우리는 잠시간 버스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고 서 있었다.
그러나 이 비는 그칠 비가 아니었다. 오히려 점점 더 심하게 오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우산을 쓰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카페를 만났다. 글루텐프리라는 글씨가 작게 쓰여있었다. 서늘하기도 하고 해서 그러면 여기서 그냥 커피랑 뭔가를 먹자 하고 들어갔는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서 파는 글루텐 프리는 쿠키 몇 개에 불과했다. 이게 무슨 요기가 되겠는가 싶었는데, 그래도 그냥 커피라도 마시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했더니, 여기서 마실 건지 들고나갈 건지 묻는다. 이 보세요, 밖에 날씨 꼴을 보세요, 누가 커피를 들고 돌아다닐 날씨인가!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냥 여기서 먹을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릿세를 내란다. 일인당 2유로였던가? 이런! 다시 돌아보니 사람들이 앉아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곳은 공부나 일을 하는 카페이고, 몇 시간에 한 번씩 자릿세를 계속 내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고, 빗속을 지나 전철을 타고 그 베이커리에 가기로 했다. 비는 끊임없이 왔고, 전철을 타고 있는 짧은 시간 동안만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철에서 밖으로 나오니 비는 완전히 퍼붓듯이 쏟아졌다.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내가 들고 있는 우산은 사실 양산이고 그것도 정말 가볍고 약하며 비에 젖는 종류였다. 그리고 너무 작아서 우리 둘의 머리가 간신히 들어가는 정도였다. 게다가 나와 남편의 키 차이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우산을 썼다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인 것이었다.
베이커리는 구글 지도상 3분 거리에 있는데, 남편은 그냥 포기하고 전철역 앞에서 커피나 마시자고 했다. 흥! 그럴 수는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우리 다 젖었는데, 코 앞에 와서 포기할 수는 없다고 가자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파리에서 비를 맞는 것 또한 신나는 일이어야 함에 틀림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겨야지. 우리는 그렇게 낄낄거리며 쏟아지는 빗속을 걸어서 카페로 갔다. 아이폰이 망가질까 봐 중간에 사진을 찍을 수 조차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결국 가게를 찾아내었고, 가게 정면 사진도 못 찍은 채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아늑했다. 노란 조명이 비에 흠뻑 젖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었다. 온갖 빵 과자들이 있었고 전부 글루텐프리, 즉, 밀가루가 사용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남편의 눈이 반짝였다.
무엇을 고를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일단은 식사가 될만한 것을 원한다고 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샌드위치를 권했다. 그러나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샌드위치가 아니었고, 빵 위에 이것저것 얹어서 구운 크로크무슈였는데, 우리가 주문을 하자 따끈하게 데워주었다. 빵은 밀가루 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기구멍이 송송 뚫려있었고, 질감도 좋았다. 우리는 커피와 함께 일단 샌드위치를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어쩐지 서운함을 달랠 수 없었기에 디저트 종류를 두 가지 골랐다. 하나는 브라우니였고, 또 하나는 슈크림(chou à la crème) 종류였다. 나는 달다구리에 취약해서 약간 힘들긴 했지만 남편에겐 특별히 맛있는 간식이 되었다. 사실 슈크림을 글루텐프리로 만들 수 있을 줄 몰랐는데, 이걸 보니 용기가 불끈! 집에 돌아가면 꼭 만들어보리라 다짐했다.
다 먹고 나오니 비가 거의 그쳐있었다. 그래서 비로소 가게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이곳은 우리가 방문했던 모든 글루텐프리 제과점 중에서 제일 카페 같은 분위기였던 곳이었다. 주인이 다소 단호함이 있었지만 자신들이 만드는 빵에 대한 자부심이 컸고, 자체 제작하여 출판한 레시피북도 있었다.
우리는 카페를 나와서 상쾌한 기분으로 거리를 걸었다. 파리에 와서 비도 맞아봤으니 영화 흉내는 다 내본 것 아닐까? 다음 코스는 어디로 할까 하다가, 여기서 가기에 교통편이 편리한 Montmartre (몽마르트르) 언덕에 오르기로 했다.
원래 몽마르트르 이야기까지 여기 다 담으려고 했는데, 어쩐지 너무 길어져서 다음 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