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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14. 2020

7_1. 어쩌자고 파리에서 3 밤만!

이건 완전 계산착오였어!

처음에 일정을 짜면서 나는 파리에 대해서 미련이 없었다. 그저 Hotel de Ville 앞에 가서 Robert Doinaux의 키스를 실천하는 것, 그것 외에는 없었다. (실천: https://brunch.co.kr/@lachouette/31 ) 


또 하나가 있다면 베르사유 궁에 가서 그 정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인데, 이것은 남편과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딸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신혼여행에 이 일정을 꼭 넣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이 3천 피스짜리 퍼즐은 미국 살던 당시 단돈 1달러를 주고 가라지 세일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중고였기에 모든 조각이 다 있는지 알 수 없는 마음 때문에 끝낼 때까지 그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 이렇게 우리 집에 걸려서 20년을 따라다녔는데, 딸아이 어릴 때 꼭 여기 같이 가서, 정원에서 자전거 타자고 약속을 했었다. 


3천 피스 퍼즐


자전거 이야기가 들어간 이유는, 내가 처녀 때 파리 유학시절, 친구가 한국에서 놀러 와서 함께 베르사유 궁을 방문했었고, 그때 자전거를 빌려서 탔던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딸아이 사춘기 정도에는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던 이 약속은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10년 안에는 꼭 이루고 싶은 약속이다. 가능할까?


아무튼, 파리에서 가난한 유학시절을 보냈던 내게 파리는 늘 그리운 곳이었는데, 어쩐지 파리에 꼭 가야 한다는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작년에 파리 예약했다가 공항 파업으로 못 가서 숙소 비용을 고스란히 날린 데다가, 당시에 알아보던 것들이 다 너무 비싸서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 달랑 3박 4일로 일정을 잡았고, 그나마 일정에 변경이 생기면서 첫날조차 밤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다음 날은 아침에 출발하니, 우리에겐 단 이틀만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미 어제 하루를 써버렸다.


하루로 치면 많은 일을 했다고는 할 수 있지만, 내 안에서는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뭘 할 것인가에 대해 어젯밤 고민하면서 뭘 넣어야 할까 결정하기가 참 힘들었다. 남편에게 어디 가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어디든 당신이 원하는 곳이면 좋다고 했다. 다만, 우리가 너무 피곤하니까 오늘은 저녁식사 후 9시까지 들어오자고... 9시까지 들어오기 미션! 지킬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오늘 선택한 곳은, 오전에 글루텐프리 베이커리 들러서 빵 사 가지고, 미술관 중 대표로, 가장 작은 곳인 오랑쥬리 미술관(Orangerie)을 가고, 그다음에 개선문 갔다가, 에펠탑 갔다가 몽파르나스 가서 처음으로 쇼핑이라도 해보자고 결정했다. 사실 우리 둘 다 그다지 쇼핑 타입은 아니지만 파리에 왔으니 그래도 뭔가 구경을 해야 할 거 같아서... 시내에 있는 백화점 거리에 가면 좋겠지만, 동선이 도저히 나오지 않아서 몽파르나스의 백화점 한 군데를 선택했다. 안 그러면 9시를 못 맞출 것 같았다.


아침을 먹고 상쾌하게 집을 나섰다. 어제 비가 오고 나서 인지 날씨는 쾌적하고 좋았다. 전철을 타고 첫 번째 목적지인 글루텐프리 베이커리 노글루(NoGlu)로 향했다. 호텔에서 출발하는 12호선 전철은 노글루를 지나 두 번째 목적지인 오랑쥬리 미술관(Le Musée de l'Orangerie)까지 가는 노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잠깐 내려서 샌드위치만 픽업해서 가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전철역 Bac Street에서 노글루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구글 지도를 띄워 쓰인 주소(69, rue de Grenelle, 7005 Paris)로 찾아갔으나 69번지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베이커리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또 당했구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다행히 멀리 저편으로 가게가 보였다. 다가가 보니, 어이없게도 73번지 다음에 69번지가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더니 아침이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안쪽에는 자신들의 레시피를 담은 책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솔깃한 마음을 꾹 참았다. 요새는 인터넷에 넘쳐나는 것이 레시피이니, 그것을 보고 연구해서 나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것이 입맛에 더 잘 맞는 시대가 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수북이 쌓여있는 바게트 빵이 보였다. 글루텐프리 바게트라니 말이 안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궁금한가! 그래서 우리는 바게트 하나(€ 2.80)와 크로크무슈 샌드위치+샐러드(€ 14)를 구입했다. 가격이 후덜덜했다. 겨우 샌드위치 하나에 이 가격이라니...! 이 집은 에클레어가 맛있다고 했는데 어차피 무척 달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냥 건너뛰기로 했다.


우리는 여기서 먹을 것이 아니었기에, 포장을 해달라고 했다. 불어로 sur place(쒸흐 쁠라스) 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먹겠다는 것이고, 포장해서 가져가겠다고 하면 à emporter(아엉뽀흐떼) 라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가게를 나서서 다음 코스로 향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다고 했지만, 벌써 11시가 다 되었기 때문이었다.


파리 지하철에서는 한국에서 사 온 심카드가 무용지물이었다. 다음 방문지의 지도를 미리 확인하면 좋을 텐데 이동 중에는 검색이 불가능했다. 아마도 오렌지 같은 프랑스 심카드가 있어야 할 듯싶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들 지하철에서 잘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우리 심카드의 문제였다. 다음에 온다면 꼭 현지 심카드를 구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잠시 후, 빵집에서 3 정거장 떨어진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에 도착했다. 시간 여유가 별로 없었기에 우리는 널찍한 광장 쪽 한 번 바라보고는 발길을 돌려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 안에 속해있는 오랑쥬리(Orangerie) 미술관으로 향했다. 날씨는 더워지기 시작했고, 흙길을 걷는 것이 그리 재미나지는 않았다. 



아뿔싸! 미술관 앞에 도착해서 보니, 입장하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런 관광시즌에 사전등록을 하지 않고 무모하게 온 우리를 원망해야 했다. 줄이 그렇기 길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무척 느렸다. 두 개의 줄로 나뉘어 있었고, 미리 온라인으로 표를 구입한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들어갔다. 건물 입구에서는 보안검색대가 소지품을 점검하고 있었고, 다시 그 안에서 표 구입을 위한 줄을 서야 했다. 이 줄은 진짜 느렸다.



일정을 바쁘게 세웠는데 여기서 30분을 소비하고 나니 좀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사람이 많아서 미술관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예전의 기억으로는 널찍한 홀에서 여유롭게 앉아서 감상했었는데, 이번에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봐야 했다. 이것은 우리가 최고 피크 시즌에 갔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래도 미술관은 역시 최고였다. 파리를 길게 방문하지 않고, 미술관을 딱 한 군데 골라서 가야 한다면 단연코 나는 누구에게든 이 오랑쥬리 미술관을 권하리라.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반나절이면 감상이 가능한데 반해서, 안의 소장품들은 누구나 미술책에서 봤음직한 근대 인상파 작가들의 유명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세잔느(Paul Cézanne),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피카소(Pablo Picasso), 마티스(Henri Matisse), 르느와르(Pierre-Auguste Renoire), 시슬리(AlfredSisely), 루소(Henri Rousseau),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그리고 특히 모네(Claude Monet)의 작품은, 그의 수련(Les Nymphéas) 연작의 전시를 위해서 특별히 설계된 방에 전시되고 있기 때문에, 그냥 그 자체로 미술관과 작품이 하나가 되는 공간이다.


유일하게 그림 전체를 찍은 사진. 수련:일몰(Les Nymphéas : Soleil couchant) 1914~1918


우리는 먼저 1층, 모네의 작품이 있는 전시실을 찾았다. 안타깝게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작품의 온전한 사진이라든가 전체적인 신비한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신비로웠던 이 전시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전시실은 모네의 주문에 맞춰서 크게 타원형으로 되어있고, 벽은 온통 흰색이며, 천장에서는 자연광이 쏟아져 내린다. 1918년 모네는 자신의 수련 연작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고, 프랑스 정부는 튈르리 정원에 있던 오렌지 나무 실내정원이었던 곳을 모네의 희망에 맞는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그리고 8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1927년 오픈했다.



그의 작품들은 너무 큰 데다가 휘어져있기 때문에 하나의 캔버스가 아닌 3개의 캔버스를 붙여서 사용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모네는 백내장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고, 후에 수술을 하였으나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는 팔레트에 짜 놓은 순서를 기억하거나, 물감 튜브에 쓰여있는 색의 이름을 기준으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도대체 인간의 천재성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그런 상황에서도 이런 명작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수련 :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맑은 아침 (Les Nymphéas : Le Matin clair aux saules) 캔버스를 연결한 흔적이 보인다.
수련:초록그림자 (Les Nymphéas : Reflets verts)  / 수련:아침 (Les Nymphéas : Matin)1915~1926


우리는 모네의 작품 8점을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관람하고, 잠시 의자에 앉아서 작품에 젖어보았다. 단 두 개의 방이었지만, 우리는 상당히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난주에 에트르타 방문했을 때, 그곳 바닷가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났었는데, 그때와는 화풍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에트르타에서 만났던 모네의 "고기잡이 배 (Bateaux de pêche) 1885" 소개판


1층에서 햇볕을 받아 충분히 작품을 감상한 후, 우리는 아래층 전시관으로 내려갔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파리에서 지냈던 1990년대 초반에는 모네 전시실의 위쪽에 전시관을 지어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던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상당히 한산했던 당시에 한참을 앉아서 모네의 작품을 봤었지만, 그땐 상당히 실내가 침침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현재 다시 이렇게 환해진 이유는, 1999년부터 6년간 리노베이션을 해서 지하관을 열고 천장의 유리 채광을 다시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자연채광 지붕 구조


아래층에는 여러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폴 기욤(Paul Guillaume)과, 그의 사후에 그 아내가 재혼한 쟝 발터(Jean Walter)의 컬렉션은 1965년부터 이 미술관에 전시되어왔다. 단지 2층에서 지하층으로 내려갔다는 사실. 


전시관으로 들어서가 콜렉터 폴 기욤의 집을 미니어처로 꾸며놓은 것이 보였다. 실제 컬렉터답게 많은 그림들이 집안에 걸려있었는데, 미니어처를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느라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름 들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작가들의 초기 작품도 있었고 후기 작품도 있었고, 작은 컬렉션으로 큰 울림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들이 모두 개인이 소장했던 작품이라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다. 1층 모네 작품들도 훌륭하지만, 아래층까지 꼭 잘 챙기라고 권하고 싶은 미술관이다.


앙리루소의 시골의 결혼식(Une noce à la campagne)과 해안의 절벽(La Falaise)
모딜리아니의 폴기욤의 초상화 / 앙토니아(Antonia), 마티스의 소파에 앉아있는 여인 / 빨간바지를 입은 오달리스크
피카소의 청소년(Les Adolecents) / 흰천 두른 커다란 누드(Grand nu à la drapperie) / 탬버린 든 여인(Femme au tambourin)
세잔느(Paul Cézanne)의 나무와 집들(Arbres et maisons)/ Barque et les baigneurs / Le Déjeuner sur l'herb


세잔의 작품을 보면 늘 특별한 느낌을 받는데, 화가셨던 아버지가 세잔의 영향을 받으셨고, 또한 내 딸 역시 세잔의 작품을 좋아해서, 수업 중 모작하는 타임에 세잔의 작품을 선정해 그렸기 때문이다. 그 특유의 색감과 자연을 표현하는 힘 등이 특히나 내 마음을 잡아서 사진을 참 많이 찍었는데, 그중에서 세 점만 고르느라 애를 먹었다. 


왼쪽부터 마리 로랑생, 유트릴로, 섕 수띤의 작품들


생 수띤(Chaim Soutine)의 작품은 익숙하지 않았는데, 꿈틀거리는 듯한 건물들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을 루소의 그림이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정말 수도 없이 봐왔던 그림들이었는데, 파란 벽에서 더욱 특이하게 돋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예정시간보다 오래 이곳에 머물렀다. 모네와 약간의 인상파 화가들만 보고 나오면 금세 끝날 줄 알았는데, 한 점, 한 점의 그림들이, 그 어느 것도 쉽게 지나칠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걸음씩 떼면서 푹 젖어들었다. 정말 작은 미술관이었지만, 그림으로 꽉 차 있었고,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정말 알차게 관람했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보니 오후 1시가 다 되었고, 밖에는 줄 서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아침 일찍 오기보다는 오후에 오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배가 고픈 우리는 튈르리 정원의 앉을만한 곳을 찾았다. 오늘이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노닥거릴 수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아무 의자에나 앉았다. 그리고 오전에 들러서 구입한 글루텐프리 크로크무슈를 열었다. 샐러드가 함께 들어있다고 했는데, 밑에 깔려있었다. 



이런 것은 제과점에서 막 나왔을 때, 따끈할 때 먹어야 제맛이어서 아쉬웠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있게 먹었다. 기대했던 바게트는 사실 바게트 모양이긴 했지만, 바게트 맛이 나지는 않았다. 역시 밀가루 없이 바게트는 불가능한듯해 보인다. 그래도 배를 채우고 나니 지치고 무거웠던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해가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있었으므로, 식후에 선크림을 바르면서 다음 장소로의 이동을 체크했다. 


벌써 하루의 반을 사용했으니 부지런히 움직이자!


다음 코스는 빠질 수 없는 개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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