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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Oct 24. 2021

7_2. 파리의 상징들을 돌아 돌아

허탕을 많이 친 아쉬운 파리의 마지막 날

우리는 곧 이어, 다음 코스인 개선문 광장에 도착했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왔더니 반가운 개선문이 눈에 확 들어왔다.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개선문, 그리고 그 아래로 바글바글 가득한 관광객들... 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개선문 꼭대기에 꼭 올라갈 의욕은 생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 많아서 사생활 침해 없이는 개선문만 찍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


그렇다고 이렇게 돌아서서 가기는 물론 아쉬웠다. 개선문에서 엘리제 궁으로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로 일단 들어섰다. 하지만 쇼핑에 관심 없는 우리에겐 명품 쇼핑거리는 그다지 흥미가 당기지 않았다. 유명한 노래 샹젤리제(Champs-Élysées)를 들으면, 그 거리를 걸으면서 사랑에 빠져야 할 것 같지만, 그러기엔 사람이 너무 많았고, 가게의 물건들은 우리와 거리가 멀었다. 우리 부부는 명품을 봐도 구분을 못하는 촌스러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샹젤리제 거리에서 바라보는 개선문은 역시 보기 좋았다.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도로의 중앙에서 사진을 찍는다. 옛날 옛적 내가 파리에 공부하러 갔던 당시에는 가운데에서 아예 여유롭게 서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줬던 것도 같은데 (사실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보니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남편도 불안한지 빨리 건너갔으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악착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해서 건진 사진은 원격으로 찍은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사진 두장뿐이었다. 


길게 뻗은 샹젤리제 거리의 중앙. 횡단보도 중간에 서서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차선이 만들어져 있다. 


길 중앙에서 빠져나와 길을 건너자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파리에서 무료 화장실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눈앞에 맥도널드가 있는 게 보였다! 오, 저기서 해결하면 되겠구나! 그런데, 정말 과장을 보태자면, 화장실에 가는 줄이 100미터나 되었다. 거기에 서서 기다리다간 볼일을 보지 못할 상황이었다. 


발길을 돌려 나와서 보니, 옆에 한 카페가 있었다. 물론 카페의 화장실은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어쩌면 그 안에 들어가서도 화장실은 유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는, 웨이터에게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묻고는 문제를 해결하였다. 급하면 연기력이 생기나 보다.



카페 앞에 거리 청소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30년 전의 파리에도 특이한 청소차가 있었는데, 모양은 상당히 바뀌었다. 개똥으로 유명한 파리 거리에서, 코끼리 코처럼 깊은 호스가 달린 차였는데, 지금 이 차는 그에 비해 아주 신식으로 세련되게 생겼다 싶으니 격세지감이 들었다. 사실 그 세월이면 강산도 세 번을 변하는데, 이렇게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올 수 있다는 사실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당시의 사진도 서울 집 앨범에 꽂혀있을 텐데, 나는 이렇게 쓰레기차에 매료되는 이유가 뭔지? 명품 가게는 한 장도 안 찍으면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 거리에 볼 일이 없었다.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는 한 무엇을 더 하겠는가! 저녁 9시 귀가가 목표이니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다음 코스인 에펠탑에 가기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에펠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는데, 승객이 아주 많았다. 


간신히 올라타서 나 먼저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어떤 여자가 "도둑이야"하고 소리를 쳤다. 그녀의 가까운 곳에 서있던 남편 말로, 그 여자를 처음에 봤을 때에는 분명히 핸드백이 닫혀있었는데, 불과 몇 초 만에 그 백이 열려있었다고 했다. 자그마한 샤넬 핸드백을 크로스로 매고 있었고, 선글라스에 짙은 화장으로 화려하게 멋을 부린 여자였다. 그 안에는 지갑과 전화기가 들어있었다고 했다. 차를 세워서 경찰서로 가자고 소리를 질렀지만 기사는 그다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좀도둑이 워낙 많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다시금 어제 경찰관이 가방 조심, 카메라 조심하라는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났다. 설마 좀도둑이 그리 많을까 하는 반응의 남편도 이번에 제대로 실감했다. 유럽의 소매치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구나.

사람이 많아서 몸을 돌리기도 어렵던 버스 안에서 나는 더욱 단단히 내 가방을 잡았고, 그 여자는 계속 안타까워하며 경찰을 찾다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관광지에서 이렇게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에펠탑이 보였다. 에펠탑은 사실 어찌 보면 참 무지막지하게 생긴 쇳덩어리인데 왜 저것에 그렇게 열광하게 되는가 나도 모르겠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향수에 이끌려서, 파리를 떠나기 전에 꼭 에펠탑에 오르고 싶다고 그곳에 가자고 했으니 말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에펠탑 쪽으로 걸어가면서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입장하는 줄이 몹시 길었는데, 삼십 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전에는 입장이란 제도가 없이 그냥 에펠탑 밑으로 걸어가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표를 구입했었는데, 이제는 주변이 다 막혀있어서 꼼짝없이 줄을 서야 했다. 

창살 밖에서 들여다봐야하는 에펠탑


긴 줄을 보면서 맥이 빠졌다. 우리가 여름휴가기간을 무시했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인지했다. 아침에 오랑쥬리 미술관에서도 미리 표를 예약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물러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줄을 서고 30분 정도를 기다려 드디어 입장을 했다.


에펠탑 올라가는 네군데가 모두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것은 정말 입장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펠탑에 올라가려면 다시금 줄을 서야 하는데, 그 줄의 길이가 100미터가 넘었다. 오늘이 파리 관광 마지막 날인데 이게 뭐람. 더구나 오늘은 늦지 않게 들어가서 일찍 쉬기로 약속하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는 다음 코스는 하나도 못 가고 끝나겠구나 싶으니 속이 상했다. 


에펠탑 한가운데 아래에서 올려다 찍음


결국은 망상 거리다가 마음을 털어내고,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이상하게 가슴이 찌르르 아팠다. 내가 에펠탑을 그렇게 좋아했던가? 그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것이 아프게 느껴졌다. 이제 파리에 다시 와야 할 명분이 생겼으니, 꼭 이곳에 다시 오리라. 그때에는 꼭 에펠탑을 올라갈 것이다. 남편은 그런 내 손을 꼭 잡아줬다. 다시 오자는 약속으로...


나와서 보니 강 건너편에 트로카데로 정원(Jardin du Trocadéro)이 보였다. 그래. 저기를 가자. 저기서 에펠탑을 바라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에펠탑에 올라가서 저 정원과 분수대를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거꾸로 저기에 가서 에펠탑을 보면,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도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련을 떨쳐냈다.


아쉬운 발길을 돌려 이에나 다리(Pont d'Iéna)를 건너면서 센 강을 바라보았다. 파리에 살면서 수도 없이 건넜던 이 다리를, 이제는 건널 때마다 감상에 젖는구나 싶었다. 날씨는 무더웠고, 우리의 발길은 무거웠지만, 우리는 그렇게 해서 건너편 공원의 경사로와 계단을 올라갔다.


에펠탑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있던 트로카데로 공원과 인류박물관 광장


우리가 에펠탑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에펠탑은 점점 더 선명하게 형태를 드러냈다. 에펠탑을 지을 당시, 흉물스러운 무쇠 건축물을 세우는 것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 대표적 인물로, 유명한 소설가 모파상(Guy de Maupassant)을 들 수 있는데, 막상 에펠탑이 건설된 이후, 그는 이곳에서 자주 식사를 했다.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리고 나 역시 독자들이 에펠탑이 지겹다고 하기 전에 얼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 넘어가기 전에 큰 사진 하나 꽉 채우고...



이제 여기서 시간을 충분히 지체했다 싶어서 다음 코스로 넘어가기로 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몽파르나스(Montparnasse). 다행히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전철도 원래는 있는데, 당시에 공사중으로 그쪽 라인이 중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버스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게 다행히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문제는 유럽에서는 흔히 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버스가 시간표를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몇 분 후에 도착한다는 온라인 정보가 있으면 그에 맞게 도착하지 않는가? 하지만 버스는 온다는 시간을 훌쩍 넘겨서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차가 온다는 시간에도 오지 않았다.


우리는 선택권이 없었다. 몽파르나스까지는 너무나 멀었고, 우리가 아는 교통수단은 이 82번 버스 하나였으니까. 


그렇게 해서 우리는, 에펠탑 줄 서기를 포기한 시간을 고스란히 이 버스 정류장에서 날렸다. 한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포기를 하고, 어디든 걷자고 했다.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라도 갈 수 있지 않겠는가며 다시 에펠탑 쪽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우리가 다음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 문제의 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우리는 정류장의 까지 뛰었지만 그 버스를 타지 못했다. 참으로 망연자실하는 순간이었다. 여태 기다리다가 아예 그 버스가 없나 보다 하고 포기하니 나타나는 것은 그 유명한 머피의 법칙 이리라.


그리고 잠시 후, 다음 버스가 왔다. 결국 우리는 3시에 도착해서 에펠탑 못 올라가고 강 건너 놀다가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버스를 기다려 5시가 되어야 출발을 하였으니, 진득하게 기다렸으면 에펠탑 관광도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이게 여행의 묘미려니... 하는 수밖에.


버스는 지친 우리를 싣고 앵발리드(Invalides) 앞을 지나 몽파르나스로 향하고 있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되어있는 아름다운 앵발리드 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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