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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Oct 24. 2021

8. 굿바이, 파리!

엽서처럼 눈에 남은 마지막 모습... 그렇게 에펠탑을 두고 떠나다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온 지 꼬박 일주일을 넘기고, 8일째 되는 아침을 맞이했다. 전날 헤매고 다닌 일들이 꿈만 같았다. 그래도 일찍 돌아와 잘 쉰 덕에 아침에 어렵지 않게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오늘은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 베니스로 가는 날이다. 어제의 허탕과 허무함은 깨끗하게 보내버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프랑스의 마지막 오전 시간을 우리는 최대로 즐기고 싶었다.


작별이 될 숙소의 아침식사도 든든히 챙겨 먹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족들에게 보내려고 구입한 엽서의 내용을 썼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에, 프랑스 소인이 찍힌 엽서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누나에게 썼고, 나는 동생과 딸에게 썼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썼다. 나중에 집에 도착해서 받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양이 엽서는 동생에게, 그 뒤 연인 엽서는 우리 자신에게, 주노 비치의 엽서는 남편이 누나에게, 그리고 맨 아래는 이틀 전, 파리에서 저 자세로 사진 찍으며 놀았던 그 엽서(https://brunch.co.kr/@lachouette/50/)이다. 딸에게 보내서 그때 찍은 사진과 비교하게 하려는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이 네 개의 엽서에 프랑스 소인이 찍히게 보낼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는 호텔 리셉션으로 가서, 오를리(Orly) 공항으로 가는 교통편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나는 오를리 버스를 나비고(Navigo, 파리 대중교통 패스)로도 탈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들은 택시를 불러주는 것 이외에는 다른 정보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러나 택시를 탈 생각은 없었다. 시간은 여유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냥 우리가 검색한 대로 전철을 갈아타고, 다시 오를리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방으로 올라와서는 짐을 꾸렸다. 그리고는 가볍게 산책을 나섰다.


엽서를 부치려면 우체국에 가야 했다. 우체국은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내 마음은 예쁜 우표를 사서 엽서에 붙이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자동화된 기계에서 요금을 계산한 후에 스탬프를 출력해줬다. 프랑스는 자동화를 참 좋아하는 나라인데, 역시 우체국도 이렇게 운영되고 있었다.



과제를 달성한 우리는 시간이 남아서 근처를 좀 더 산책했다. 우체국이 막 문을 연 이른 아침 시간이었기에 근처의 상점들도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문을 열고 주변을 청소하는 가게들... 신상품을 펼쳐놓은 꽃집... 전부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그리고 우리는 재미난 가게를 발견했다. Cordonnerie는 신발을 짓고 수선하는 가게인데, 열쇠점을 겸하고 있었다. 현재 영업 중인 가게가 분명한데, 가게 안 진열장은 십 년 넘게 청소를 안 한 듯,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어서, 마치 폐업한 장소처럼 보였다! 그러나 안에는 분명히 형광등이 켜 있었다. 아마 이곳은 그냥 그렇게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오랫동안 장사를 해와서 사람들이 단골로 드나들고, 주인은 무심한 듯 수선을 해주는 그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잠시 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다시 돌아와, 드디어 짐을 다 챙겨 들고 숙소를 나섰다.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이별 연습은 어제부터 했는데, 프랑스를 떠나는 마음은 이래저래 복잡했다. 파리의 일정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추억을 만들었고, 무엇보다 물가 비싼 이곳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깨끗한 숙소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올 수 있는 핑계를 만들었다는 것도...


우리는 예정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비록 큰 여행가방이 있어서 전철역을 오르내리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아직 할 수 있을 만큼 젊다(!)는 것을 생각하며 도전을 계속하기로 했다. 



우리는 오를리 버스를 타기 위해서 덩페르호슈로(Denfert-Rochereau)에 먼저 전철로 가야 했다. 갈아타는 옵션이 여러 가지 있었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더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것으로 선택을 했다. 12호선 지하철을 타고 몽파르나스까지 가서, 그곳에서 다시 4호선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전날의 기억을 생각하면 몽파르나스는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 아니지만, 전철역으로 치면 큰 역이니 환승하는 환경이 더 나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였다. 


역시 그랬다. 갈아타는 곳이 넓었지만,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으서 짐을 끌고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그룹을 만났다. 지금 다시 들어보면 그게 그렇게 감동적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듣는 음악은 정말 아름다웠다. 파리 지하철에서의 마지막 낭만을 만끽하기에 적당했다. 물론 우리는 계속 음악을 듣고 서있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남편은 선뜻 다가가 감사 인사의 돈을 넣었고,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전철을 갈아타고, 목적지인 덩페르호슈로에 도착했다. 그리고 전철역 바깥으로 나갔는데! 앗! 그 앞에 긴 줄이 보였다. 세상에! 오를리 공항버스를 타려고 해도 이렇게 긴 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비행기를 놓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우리가 이런 것까지 계획에 넣었어야 하는 것이었는지...


마음을 진정하고, 그 줄 끝에 가서 서면서, 앞에 서있는 사람에게 물어봤다. 


"이 줄이 공항 가는 버스 줄이 맞나요?" 


고맙게도 내 예상이 틀렸다! 그 줄은 바로 그 앞에 있는 파리 지하 납골당을 관람하기 위한 것이었다! 안도의 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이건 좀 너무 했다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그 길을 돌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버스가 와 있었다. 줄은 없었고, 아주 붐비지는 않았지만, 앉을 곳은 없었다. 15분마다 오기로 되어있는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면 앉아서 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이동하고 싶었다. 그리고 전날 이미 버스 기다리기를 호되게 한 탓에 더 이상 모험하고 싶지 않았다.


버스는 흔들흔들 움직이며 공항으로 향했다. 창 밖의 날씨는 좋았고, 길도 막히지 않았다. 논스톱으로 달리는 버스는 30분도 채 되지 않아 공항에 도착했다. 오를리 공항은 굉장히 깨끗하고 반짝반짝했다. 


우리는 이지젯이라는 저가항공을 이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비행기가 싼 대신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일단 짐을 부치려면 추가로 비용을 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예약을 할 때 미리 짐 값을 계산했다. 그렇지 않고 공항 현장에서 짐을 추가하려면 비용이 더 든다. 기내용 수하물도 굉장히 야박하다. 보통은 핸드백 같은 작은 것은 따로 허용을 해주지만 저가항공에서는 어림없다. 1인당 무조건 1개가 허용되며, 그 사이즈는 규격을 넘으면 안 된다. 그래서 공항에는 아래 사진처럼 생긴 함이 있어서, 그 안에 수하물이 들어가야 한다. 그보다 크면 추가 요금을 내고 부치는 짐으로 넣어야 한다. 


우리는 미리 머리를 써서 큰 비닐가방을 하나 챙겨갔다. 아니나 다를까 보딩패스 받는 곳에서 우리 짐이 많다고 지적을 했다. 나는 그 비닐가방을 보여주면서, 여기에 담을 거라고 했다. 내 노트북 가방, 내 핸드백, 남편의 노트북 가방을 모두 함께 그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남편의 백팩을 더해서 우리는 두 개의 짐만 가진 것으로 계산되어서 무사히 통과되었다. 



이제 게이트 앞으로 가서 간단히 뭔가 먹자고 했다. 게이트가 어딘지 찾아야 할 텐데 싶었더니, 역시 첨단 기계를 좋아하는 프랑스 답게 보딩패스를 찍으면 게이트를 알려주고, 동선과 시간까지 보여주는 기계가 있었다. 우리 것을 찍었더니 위 사진처럼 상세하게 나왔다.


베니스로 가는 EJU 4293, 14:15 출발. 게이트는 C18이고, 걸어서 4분 걸린다고 친절하게 상세 안내판이 떴다. 이렇게 친절하면 가다가 길을 잃을 일은 없으리라. 그리고 근처에 요기할만한 곳도 있다길래 우리는 마음 편하게 그쪽으로 갔다. 음식은 별로 인상적인 것이 없었지만, 점심시간이었으므로 간단하게 해결을 하였다. 그리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화장실도 그 어느 공항보다 넓고 깨끗했다. 살다 살다 공항 화장실 사진을 찍다니!



비행기는 제시간에 맞춰서 도착되어있었고, 예정시간에 맞춰서 출발하였다. 이제 파리를 뒤로 하고 베니스를 향해 출발! 비록 원하는 만큼 파리를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장 특별히 로맨틱한 목표를 달성하였으니 우리의 파리 관광은 임무수행 성공의 시간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해본다.


비행기가 하늘로 뜨자, 어느 순간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미 공항의 외곽에서 출발한지라 시내를 가로지르지는 못하였지만, 저 멀리 깨알보다 작게 에펠탑과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인다. 


굿바이, 파리! 굿바이 프랑스! 나중에 다시 만나자. 그때는 더 뜨겁게, 더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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