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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n 10. 2024

무설탕 멸치 볶음

바삭바삭 고소고소 남편의 애정템

며칠 전, 남편의 생일이었다. 생일잔치는 원래 남편의 자식들이 차려주는데, 다들 직장에 다니니 주말로 날을 잡는다. 그러다 보니 남편의 생일 당일은 늘 집에서 내가 차리게 된다. 그것도 늘 한식으로 미역국과 함께 차린다.


둘이서만 먹기 때문에 상차림은 상당히 단순하다. 낮에는 쌀밥에 미역국을 차리는데, 그것만으로는 아쉬우니 올해에는 동태전을 부쳤고, 여기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 있으니, 엉뚱하게도 잔멸치 볶음이다.


바삭하면서도 고소한 이 맛을 남편이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식에서 흔히 애용되는 밑반찬인 멸치볶음에는 대부분의 경우 설탕이나 물엿이 들어간다. 약간 끈적하고 달달해야 제맛이라고 여겨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는 설탕을 넣지 않는다.


나는 설탕을 좋아하지 않고, 단맛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요리에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더구나 반찬이 단 것은 진짜 싫어한다. 디저트라면 약간 달콤해도 되지만, 반찬은 그 자체의 풍미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맛이 지배하면 원래의 풍미가 사라지고, 식욕이 떨어진다.


그런데 요새 블로그나 유튜브 등의 요리법을 보면, 거의 모든 음식에 설탕이나 올리고당 등 단 맛이 꼭 들어간다. 황금비율이라고 주장하면서 단맛을 넣는데, 아마 그래야 그들의 음식을 따라한 사람들이 첫 입에 맛있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단 맛에 중독되면 점점 더 단 맛에 치중하게 되고, 결국은 성인병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고 만다. 요새 외식으로 먹는 한식은 다 달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입맛은 점점 더 달아지는 것 같다. 달지 않으면 먹지 않는 아이들이 넘쳐나니, 이 아이들은 보다 일찍부터 성인병에 노출되기 쉽다.


이런 거창한 잔소리를 치우더라도, 나는 어쨌든 밥상에 단맛이 올라오는 것이 싫다. 그래서 내 한식에는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한식을 나를 통해서 접한 남편은, 달지 않은 나의 한식을 아주 좋아한다.


한식은 손이 많이 가고 재료가 풍부하기 때문에, 굳이 단맛을 넣지 않아도, 한 입 베물면 입안에서 갖가지 풍미가 한꺼번에 터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남편에게 처음 만두를 해줬을 때, 그가 감탄하던 모습은 여전히 눈앞에 선하다.


남편은 처음으로 잔멸치를 봤을 때, 깜짝 놀라고 막 웃었다.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바글바글 들어있는 재미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로 멸치 볶음을 해줬더니, 이거야말로 맥주 안주로 딱 좋다며 아주 즐거워했다.


그래서 나도 종종 해줬고, 그의 자식들이 모이는 식사 자리에서도 몇 번 만들어서 히트를 쳤다. 결국 남편 생일의 단골 메뉴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번은 남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멸치 볶음이 나왔다. 남편은 반색을 하면서 입에 넣었는데, 그 이후로는 별 말이 없이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집에 와서 물었다. 멸치 볶음이 맛이 달랐다는 것이다. 왜 단맛이 나냐고 의아해했다. 


사람들은 흔히, 달아야 더 맛있다고 인식하지만, 그렇지 않은 맛에 익숙한 사람들은 오히려 달게 준비된 그 음식이 맛있지 않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즉, 건강한 입맛에 길든다면,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 오히려 맛없게 느껴지니, 입맛을 잘 길들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진짜, 잔소리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 무설탕 멸치 볶음은 진짜 쉽다. 재료도 몇 가지 필요하지 않다.


잔멸치, 호두, 마늘, 그리고 볶아줄 기름만 있으면 된다. 나는 남편이 좋아하니, 한국에서 멸치를 잘 골라서 부쳐왔다.


호두는 성큼성큼 썰어서 멸치와 섞어 먹기 부담스럽지 않게 준비해 준다. 마늘은 납작납작하게 편으로 썬다. 여기에 정량은 없다. 그냥 각자의 취향에 맞게, 호두 한 주먹, 마늘도 큰 걸로 서너 쪽 준비하면 된다.


잔멸치는 가루가 많다면 좀 털어주면 좋다. 깨끗하게 하려면 씻어서 볶으면서 말리기도 하는데, 나는 좀 게을러서 그냥 하는 편이다. 


이제 팬을 달구고, 먼저 호두를 볶아준다. 익힌다는 개념보다는 눅진한 맛을 날려서 바삭하고 고소하게 만들어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호두에는 그 자체로 기름기가 있기 때문에 멸치랑 같이 기름을 부어서 볶으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먼저 살짝 물기만 날려주면 된다.


호두를 먼저 볶는 이유는, 호두를 멸치와 함께 넣으면 타기 쉽고, 나중에 멸치에 기름을 부을 때, 쓸데없이 호두까지 기름을 먹기 때문이다. 호두에는 이미 기름이 충분하다.



호두를 꺼내고, 팬을 닦아낸 후에, 이번에는 멸치를 볶아준다. 처음부터 기름을 두르지 말고, 일단 이것도 수분을 날려 비릿함을 증발시켜 준다. 눅진함이 사라지면, 이때 기름을 넣고 다시 빠르게 볶아준다. 나는 아보카도 오일을 사용했다


기름을 두를 때, 찬 기름이 재료에 닿기 전에 팬에서 먼저 뜨거워질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멸치가 어느 정도 볶아졌다 싶으면, 다시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볶아준다. 마늘이 쉽게 타므로 신경 쓰면서 볶는다. 뒤집어 주면서 양면이 고루 익게 해주는 게 포인트다. 


이제 다 된 거다. 여기에 다시 호두를 넣어주면 된다. 그냥 쏟아붓지 말고, 위에서부터 집어서 넣는다. 호두 볶을 때 바닥에 생긴 가루까지 다 넣으면 좀 지저분해진다.


호두를 넣은 후에는 볶는다기 보다는 식은 호두의 온도를 볶음에 맞춰준다는 기분으로 빠르게 데워준다. 그러면 딱 먹기 좋은 만큼 바삭하다. 불을 끄고, 깨를 한 바퀴 둘러서 다시 뒤적여 주면 완성이다.



이 멸치 볶음은 전혀 달지 않다. 간을 하지 않았지만 짭조름해서 맥주 안주로 집어 먹으면 한없이 들어간다. 아이들도 단맛에 길들지 않았다면 맛있다며 집어 먹을 것이다. 


우리는 프라이팬에 가득 볶아서 두 끼에 끝내버렸다. 그다지 볼품없는 멸치 볶음, 그러나 건강하고 맛있으니 꼭 한 번 해보시길...


더 나은 사진을 다시 찍고 싶었으나 다 먹어버림


백문이 불여일견, 유튜브 쇼츠 동영상 : https://youtube.com/shorts/45BJp3SYq48?feature=share





무설탕 멸치 볶음


재료 : 

잔멸치 한 대접, 호두 한 움큼, 마늘 4~5 쪽, 식용유


만들기 :

1. 통호두는 먹기 좋게 성큼성큼 썰어준다

2. 마늘은 납작하게 썰어준다.

3. 잔멸치는 가루를 털어낸다.

4. 팬을 달구고 호두를 빠르게 볶아 낸다. 바삭하고 고소할 만큼만 볶는다.

5. 덜어내고 나서, 팬을 한번 닦아주고, 멸치를 넣어서 볶는다

6. 눅눅함이 다 날아가고 나면 기름을 넣어 바삭하게 볶아준다.

7. 어느 정도 볶아졌다 싶으면, 다시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넣어서 앞뒤로 구워준다. 

   이때 태우지 않게 주의한다.

8. 적당히 볶아졌으면 호두를 넣고 다시 한번 볶아준다.

9. 통깨 넣고 불 끄고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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