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조금씩 없어지는 양귀비 씨방, 설마 누군가 마약을 하려고??
우리나라는 양귀비 재배가 금지이다. 마약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금하는데, 외국의 많은 나라에서는 크게 제재를 하지 않고 관상용으로 키운다.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양귀비 꽃은 한번 심어 보면 정말 반할 만큼 예쁘기 때문에 계속 키우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에 한 가지에서 시작된 양귀비가 지금은 진짜 여러 종류로 우리 집에서 자리 잡고 있다.
씨앗은 어디서 구할까? 나는 대체로 직접 구입하는 편이다. 씨앗 받는 게 은근 고달프기 때문에 누구에게 나눠달라는 말은 잘 안 한다. 정말 특이한 것 빼면 그냥 속 편히 구입한다. 캐나다에서는 양귀비 씨앗을 구매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제재가 없다.
양귀비가 은근 종류가 많다. 이 웹사이트에서도 벌써 두 페이지나 된다.
위 양귀비들 중에는 한국에서도 심을 수 있는 양귀비도 있다. 꽃양귀비라고 불리는 양귀비는 마약 채취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꽃양귀비와 오피움 양귀비(일명 마약 양귀비)는 씨방의 크기가 원초적으로 다르다.
사진을 보면 씨방의 크기를 확실히 비교해 볼 수 있다. 오른쪽은 거의 볼을 빵빵하게 불린 어린애 같지 않은가! 오피움 양귀비의 씨방에 상처를 내면 하얀 진액이 흘러나오는데 그게 마약의 재료가 된다고 한다. 덜덜덜!
위의 사진들처럼 오피움 양귀비들은 일반적으로 크기도 더 크고, 튼실해 보인다. 꽃대는 대체로 매끈하다.
아래 이것도 오피움 양귀비에 속하는데, 꽃이 탐스럽게 겹겹이 피는 모습이 카네이션 같기도 하고 작약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변에서 가장 탐내는 종류이다. 꽃이 어찌나 큰지 거의 내 얼굴만 하더라.
반면에 꽃양귀비는 약간 가녀린 느낌이 들면서 나풀나풀 나비의 날개 같다. 그리고 꽃대에는 솜털이 있다.
이건 또 색다른 느낌의 캘리포니아 양귀비 종류이다. 잎부터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꽃은 대체로 사이즈가 작은데, 자리만 잘 잡으면 여름 내내 피고 지고 한다.
이밖에 다년생으로 피는 양귀비들도 몇 가지 더 있는데, 대표로 하나만 보고 넘어가자.
다년생이 키우기는 훨씬 쉽지만, 화려하기는 일년생을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일년생은 난이도가 쉽지는 않다. 모종을 미리 만들었다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 심을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까탈스럽다고 소문이 난 만큼, 옮겨 심으면 대부분 죽어버린다. 그래서 직파를 해야 하는데, 초보자들은 새싹이 나와도 잡초와 구분하기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다. 양귀비 새싹은 이렇게 생겼다. 팔을 벌리고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좀 더 자라면 이렇게 크는데...
마치 쌈채소처럼 보인다. 샐러드로 먹을 수 있다고도 하지만 탐내지 말자. 모험은 금물. 그냥 상추를 먹으면 될 일이다.
아무튼 이렇게 공들여 키우고 즐기는 양귀비들은 개화 시기가 그리 길지는 않다. 한 이틀 피고나서 져버린다. 그리고 여름이 깊어지면 잎이 마르기 시작하고 씨를 맺는다. 당연히 이 씨를 탐내는 지인들이 많다.
그런데 지인들만 탐내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이 씨방을 훔쳐가기 시작한 것이다! 머리만 뎅강 잘라가는데 어찌나 어이가 없는지!
온라인 커뮤니티에 찾아봤더니, 사람이 훔쳐간다고 주장하기도 하던데, 아마 사람이 훔쳐간다면 한꺼번에 싹 쓸어서 가져가지 이렇게 찔끔찔끔 몇 개씩 매일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청설모일까, 사슴일까, 새일까 여러 가지 추측을 했다. 요즘 우리 집에 새들이 극성맞게 텃밭을 망치고 있고, 청설모가 뭐든 스리슬쩍 가져가서 숨겨놓는 일도 많기 때문에 상당히 의심이 가는 녀석들이었다.
일단은 새를 겨냥해서, 주머니를 씌워봤다. 재봉틀로 간단히 제작한 이 주머니들이 처음에는 좀 효과가 있는가 싶더니 곧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냥 씨방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머니들까지 함께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데크 옆 창고 지붕에서 발견된 빈 주머니 하나!!
그리고 급기야 잔치를 벌이고 팽개친 주머니들이 깻잎 밭에서 대거 발견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열받은 우리는 CCTV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뭘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론 꼭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사실은 누구 소행인지가 정말 궁금했다는 편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 대단한 카메라는 아니지만, 나름 쓸만하리라 생각하고 설치를 했는데 과연! 밤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첫 손님은 너구리였는데, 시끄러우니 귀찮다는 표정으로 지나갔고, 새벽 4시 넘어서 진짜 도둑이 찾아왔다
생쥐였다. 작년에 생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지만 올해는 여태 한 번도 못 봤는데, 이렇게 야밤에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다음 날 밤에 부엉이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허둥대느라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정말 아까운데, 아름다운 부엉이가 와서 우당탕 소리를 냈고, 아마 쥐를 잡으려 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다. 부엉이의 레이더 같은 눈에도 땅 위의 동물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CCTV에서처럼 잡히는 게 아닐까 싶다.
부엉이가 성공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씨방은 없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생쥐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어디선가 조용히 사망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잘 모르겠다.
결국 이 이야기는 미스테리로 끝나고 말았지만, 생쥐의 활약으로 씨앗 발현을 못한 몇 양귀비들이 시든 잎을 붙들고서도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참으로 자연의 신비가 아니던가.
일반적으로 꽃이 지자마자 잘라주면 꽃을 오래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양귀비는 워낙 적은 수의 꽃이 피어서 거기에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했건만, 그래도 역시 모성애를 보이는 모습이 짠했다.
그래서 내년에는 씨 욕심 접고, 열심히 진 꽃을 잘라 그들의 청춘을 연장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름다운 양귀비, 리즈시절을 만끽하라고!
더 많은 양귀비 사진과 실제 CCTV 영상, 씨주머니 만드는 모습, 양귀비 씨앗 받는 모습 등, 브런치에 다 담지 못한 내용들은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