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공간에서 많은 모종을 키우는 실험
매년 이맘때면 나는 텃밭 농사 지을 작물들의 모종을 만드느라 바쁘다.
그리 넓지 않은 마당에서 보다 많은 것들을 키우려면, 적당히 씨 뿌려놓고 알아서 자라려니 할 수가 없다. 작은 공간을 계절별로 나눠서 사용 계획을 세워야 하니, 밖에 심는 시간을 최대로 줄여서 땅을 활용할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서울 토박이로 아파트에만 살았던지라 처음에는 정말 농사 무지렁이로 시작했는데, 이제 5년 차 들어가니 좀 감이 잡힌다. 마당의 곳곳도 각자 활용처가 대부분 정해졌다. 그것에 맞춰서 계획을 세우고 모종을 만든다.
모종 1차는, 보다 오래 걸리는 토마토와 고추, 가지 같은 것들이다. 예전에는 욕심을 내서 더 일찍 시작했지만, 모종들이 커지면서 그 모종들을 키워갈 장소 또한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막판에는 엄청 허덕이게 된다. 따라서 가정용으로 가장 적당한 시기를 계획해서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
물론 꽃 같은 것들도 1월부터 넉넉히 키워서 준비한다면, 마치 화원에서 팔듯이 꽃피는 상태를 이미 만들어서 4월에 꽃밭에 심을 수도 있지만, 나는 거기까지 부지런을 떨기에는 힘이 달린다. 따라서 나의 첫 모종은 2월 말일에 시작한다. 3월에 시작하기엔 심리적으로 게으르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2월의 끝자락을 선택하는 것이다.
토마토나 고추, 가지는 열매가 달릴 때까지 성장을 충분히 해야 하는데, 그게 2달 이상 걸리기 때문에, 보통 5월에 정식을 하는 이 지역에서는 그때가 가장 적기이다.
그러고 나서는 꽃들을 심는다. 나는 먹을 것만 키우고 싶지는 않다. 계절별로 각기 다른 꽃들이 충만한 정원이 좋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긴 기간 꽃이 피는 종류의 작물들을 골라서 심는 편이다. 주로 1년생들을 모종을 내는데, 새로운 꽃들은 다년생들도 이때 싹을 틔워서 심어준다.
다년생들은 오히려 덜 서두르는 편인데, 이때 심어봐야 같은 해에 꽃을 보지 못하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다년생들은 처음에는 더디 자라고, 자리 잡을 때까지는 좀 비실비실해 보이는 일이 흔하지만, 겨울을 한 번 겪고 나서 다시 나오면 그때부터 힘차게 제구실을 해주면서 정원의 한 자리를 제대로 차지하여서 좋다. 초반 고생하고 두고두고 즐기는 셈이다.
아무튼 이렇게 모종을 여러 가지로 만들다 보면 장소가 협소해서 고생을 한다. 모종은 그냥 씨를 심어놓고 방치하면 되는 게 아니라, 적당한 온도와 빛을 잘 맞춰줘야 웃자라지 않고 단단하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씨앗 발아시키느라 고생만 하고 저세상으로 보낼 수도 있다.
자리를 덜 차지하게 하는 방법을 쓰기 위해서 최대한 좁은 곳에다가 키우려고 노력을 하는데, 달걀껍데기는 그 점에서 상당히 편리하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달팽이 모종 만들기 방법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누군가가 올린 영상이 요새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었다. 달팽이라니! 내가 질색을 하는 달팽이가 모종이 도움이 된다고? 물론 그것은 아니었다. 다만 달팽이처럼 동글동글 말린 모양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었다.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기 때문에 당장 검색에 들어갔다. 방법은 상당히 간단해 보였다. 버블랩이나 비닐 종류에 흙을 펼치고 거기에 씨앗을 심거나 모종을 눕히는 것이었다. 이런 신박한 아이디어라니! 시도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유튜브나 온라인에 떠도는 비법들이 터무니없는 것도 많고, 보기엔 그럴싸해도 막상 그렇게 되지 않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이거는 어쩐지 안 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첫 시도는 토마토 모종을 키우는 것으로 정했다. 우리가 키우는 토마토는 7가지 종류로 대략 20 포기 정도 되는데, 모종이 혹시 잘 안 클 경우에 대비해서 넉넉한 수량을 준비하는 편이다. 즉, 7가지를 6개의 모종판에 각 두 개씩 넣었으니, 전부 발아된 개수가 80개가량이 되었다.
6개짜리 모종트레이도 옮겨 심고, 단독 꼬마 화분에도 옮겨 심지만 그래도 자리가 부족한 데다가, 이것들을 다 펼쳐놓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니 돌돌말이 롤케이크 모종 화분을 시험 삼아해 보기로 할 수밖에!
환경을 생각한다면 도톰한 종이를 사용할까도 생각했지만, 종이가 젖으면 쉽게 찢어질 테고, 그러면 기껏 말아서 분리해 놓은 것이 무용지물일 테니 플라스틱 계열의 소재를 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집을 뒤졌더니 뭔가 포장했던 약간 스티로폼 비슷한 충격완화 소재의 물건이 한 장 나왔다.
바닥에 펼쳐 놓고, 흙을 퍼서 펼쳤다. 흙은 미리 약간 적셔서 어느 정도는 뭉쳐지는 힘이 있는 게 덜 흘러내릴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러고 나서는 모종 트레이에서 토마토를 꺼내서 눕혔다. 4개는 같은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종류가 달라서 중간에 팻말을 세웠다.
이제 이 모종 위에 흙을 살살 더 얹어 다독여주고, 아래쪽에는 뿌리 잘 잡으라고 골분(bone meal)도 살짝 섞어 주었다. 그리고 이 상태로 스프레이로 물을 좀 뿌려준 이후에 얌전히 돌돌 말았다. 끝은 테이프로 붙여주고 유리병에 담았다.
물을 주니 흙으로 물이 흡수되면서 남은 물은 밑으로 흘러 내려갔다.
이왕 시작한 김에 씨앗부터 시작하는 것도 해보자 싶어서 다시금 흙을 펼쳤다. 이번에는 버블랩, 일명 뾱뾱이를 펼쳐서 똑같이 흙을 깔았다. 이번엔 모종 없이 그대로 말았다.
모종 넣을 때와 똑같이 말아주고, 물 주고, 살짝 발아시킨 봉숭아 씨앗을 꽂아줬다. 실패해도 별 문제없을 것을 선택하다 보니 봉숭아가 간택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가로 가보니 이렇게 싹이 나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발아가 된 씨앗을 넣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나온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다만 실내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온도가 따뜻한 데에 비해 일광이 부족하여 웃자라기 쉽겠다 싶어서 바깥의 온실로 바로 내쫓았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지난 지금의 모습이다. 쌀쌀한 온실 안이라 성큼성큼 자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잘 자라주고 있다. 더 확실한 실험 결과는 다시 몇 주 지나서 열어봤을 때, 뿌리가 얼마나 튼실하게 자랐는지 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꽤 괜찮은 대안으로 보인다!
이 방법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공간활용에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뒷 이야기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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