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Apr 01. 2024

봄을 먹으려고, 또 봄을 키우고...

미나리도, 달래도 우리 밥상을 채워주길...

지난번에 쑥과 참나물, 두릅, 원추리 등등 신나게 봄을 먹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봄 나물이 거저 뚝딱 나오는 것은 아니다. 씨 뿌리거나 심고, 공을 들여서 우리 땅에 자리를 잡도록 도와야 한다.


때로는 멀쩡히 잘 살아있다가 갑자기 죽기도 한다. 또 남들은 다 쉽다는데 나는 죽도록 안 되는 작물도 있다. 그러면 나는 오기가 나서 일단 될 때까지 해보자고 계속 밀어붙이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결국 키우게 된 것 중 하나가 달래이다.


마트에 나오는 것을 사다가 푸른 부분만 먹고 뿌리를 심으면 잘 나온다는데, 나는 심을 때마다 실패를 했다. 첫 해에는 심어놓기만 하면 새가 파헤쳐버리고 흙 위에 뒹굴어 다녔다. 그다음에는 심어놓고 이름표를 꽂지 않아서 까먹었다. 물을 주지 않아서 죽어버렸다. 어찌나 속상하던지!


달래는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편도 몹시 좋아하는데, 정말 딱 두 주일 정도만 한인 마트에 들어오고, 그나마도 한국에서 공수해 오는 것이다 보니 금값이다.


한국 야채가 금값이니 여기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지난해에 한국 갔을 때 달래 종패를 사 왔다. 구슬 같아서 주아라고도하는데, 달래 씨앗이다. 한주먹 정도의 양에 4천 원이었다. 그걸 들고 비행기 타고 들어오다 걸리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우편으로 부쳐왔다. 원래 소량의 씨앗은 허용이 되지만, 종패는 밀봉해서 파는 게 아니라 봉지나 망에 담아서 팔기 때문에 운 나쁘면 걸려서 뺏기고,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수도 있다. 밀봉되지 않은 씨앗은 가져오면 안 된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 골치가 아프지만 그래도 포기를 못 하고, 뺏기면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부쳤는데 무사히 잘 도착했다. 문제는 그러고 나서 바빠서 심지를 못하고 계속 방치를 했던 것이다. 원래 종구(뿌리)와 달리 종패(주아, 씨앗)는 해가 바뀌지 전에 심어줘야 한다고 했기에 또 망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해가 바뀌어버린 어느 날, 얘네들이 봉지 안에서 발아를 시작한 것이다!



때는 2월 초였고, 눈이 내린 직후였다. 하지만 결국 땅이 얼지 않은 겨울날씨에, 바로 나가서 심었다. 밭에 흙을 새로 채워주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심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텃밭의 흙을 앞쪽으로 모으고, 앞부분에만 종패를 심어줬다. 


고추 심을 자리를 남겨두고 심은 달래가 싹이 나왔다


원래 이 자리는 고추 심는 곳인데, 뭐, 고추 가장자리로 심어보자는 마음으로 뺑 둘러서 심었다. 그리고 장미 옆에 마늘을 심으면 벌레를 쫓아준다니까, 마늘 심는 셈 치고 장미 주변에도 묻어줬다.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3월 어느 날부터 이 달래들이 땅을 밀고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 심을지 마땅치 않아서 심어놨던 여기저기에서 계속 밀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종패에서 시작한 달래는 키우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리지만, 그래도 이제 이만큼 심었으면 올해에 씨앗도 받을 수 있을 테고, 달래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장미 옆에 양귀비도 올라오고, 달래 싹도 올라온다


화분에 심어뒀던 것들도 밀고 올라온다




반면에 멀쩡히 매년 올라오다가 올해 갑자기 다 죽어버린 것이 있었으니, 바로 미나리다. 번지기를 잘하니 밭에 심지 않고 화분에 길렀는데, 일 년 내내 먹고, 꽃도 피고, 겨울에 죽은 듯하다가 봄이면 다시 올라오곤 하던 미나리가 올해는 무슨 영문인지 다 녹아버렸다.


너무나 만만하게 키우고 있었기에 찍어놓은 사진도 없나 보다. 찾다가 포기했다. 하긴, 일 년 중 딱 시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그 많은 사진들 중에서 어디서 찾겠는가!


아무튼 다 녹아버린 미나리를 보며 나는 망연자실했다. 키우기는 무척 쉽지만, 일단 구해야지 키울 텐데 말이다. 결국 마트에 미나리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엉뚱한 곳에서 미나리를 발견했다.


미나리와 피오니, 그리고 루꼴라까지 사진 한 장에 모두 들어왔다.


그래, 여기다가도 심었었지! 베어낸 나무 그루터기에 작은 홈이 있어서 거기에 심었더니 아주 예쁘게 자랐었다. 물 빠짐이 좋지 않아서 비가 오면 흥건하게 물이 고여 있는 흙이었기에 미나리를 말라죽지 않게 해주는 좋은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겨우 요만큼 있는 것에서 뽑아서 큰 화분에 옮기기는 아직 좀 미안했다. 더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마트에 한국 야채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서 얼른 미나리를 사 왔다. 



맛있는 미나리, 위쪽 부드러운 부분은 무쳐서 먹고, 이렇게 아래쪽 뻣뻣한 부분을 몇 마디씩 잘라준다. 잘 보면 마디 부분에 벌써 뿌리의 징조가 보인다. 그 부분을 물에 담가둔다.


물컵에 물 담아 꽂아둔 미나리 줄기


미나리 줄기 내리는 속도는 엄청나다. 이틀만 지나도 뿌리가 벌써 길게 자란다. 사실 물에 꽂지 않고 바로 흙에 꽂아도 되는데, 그때 날씨가 쌀쌀해서 약간 깨울 겸 물에 꽂았다.


바빠서 깜빡 잊고 사흘 지났더니 벌써 이렇게!!



그래서 바로 흙으로 갖다 꽂았다. 이때 주의사항이라면 물을 넉넉히 준다는 것이다. 미나리는 가물면 안 된다. 무조건 물이 많아야 한다. 구멍 안 뚫린 화분에 물이 찰랑거려도 오히려 괜찮을 지경이다.


볼품없이 꽂아 둔 미나리


그리고 일주일 후, 벌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얼른 자라주길!


일주일 만에 잎이 올라오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 되었다. 아래는 래디쉬 싹이 올라오는 중


매거진의 이전글 봄부터 마당을 먹기 시작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