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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먹으려고, 또 봄을 키우고...

미나리도, 달래도 우리 밥상을 채워주길...

by 라슈에뜨 La Chouette

지난번에 쑥과 참나물, 두릅, 원추리 등등 신나게 봄을 먹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봄 나물이 거저 뚝딱 나오는 것은 아니다. 씨 뿌리거나 심고, 공을 들여서 우리 땅에 자리를 잡도록 도와야 한다.


때로는 멀쩡히 잘 살아있다가 갑자기 죽기도 한다. 또 남들은 다 쉽다는데 나는 죽도록 안 되는 작물도 있다. 그러면 나는 오기가 나서 일단 될 때까지 해보자고 계속 밀어붙이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결국 키우게 된 것 중 하나가 달래이다.


마트에 나오는 것을 사다가 푸른 부분만 먹고 뿌리를 심으면 잘 나온다는데, 나는 심을 때마다 실패를 했다. 첫 해에는 심어놓기만 하면 새가 파헤쳐버리고 흙 위에 뒹굴어 다녔다. 그다음에는 심어놓고 이름표를 꽂지 않아서 까먹었다. 물을 주지 않아서 죽어버렸다. 어찌나 속상하던지!


달래는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남편도 몹시 좋아하는데, 정말 딱 두 주일 정도만 한인 마트에 들어오고, 그나마도 한국에서 공수해 오는 것이다 보니 금값이다.


garden_2024_078.jpg 한국 야채가 금값이니 여기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지난해에 한국 갔을 때 달래 종패를 사 왔다. 구슬 같아서 주아라고도하는데, 달래 씨앗이다. 한주먹 정도의 양에 4천 원이었다. 그걸 들고 비행기 타고 들어오다 걸리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우편으로 부쳐왔다. 원래 소량의 씨앗은 허용이 되지만, 종패는 밀봉해서 파는 게 아니라 봉지나 망에 담아서 팔기 때문에 운 나쁘면 걸려서 뺏기고,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수도 있다. 밀봉되지 않은 씨앗은 가져오면 안 된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면 골치가 아프지만 그래도 포기를 못 하고, 뺏기면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부쳤는데 무사히 잘 도착했다. 문제는 그러고 나서 바빠서 심지를 못하고 계속 방치를 했던 것이다. 원래 종구(뿌리)와 달리 종패(주아, 씨앗)는 해가 바뀌지 전에 심어줘야 한다고 했기에 또 망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해가 바뀌어버린 어느 날, 얘네들이 봉지 안에서 발아를 시작한 것이다!


garden_2024_085.jpg


때는 2월 초였고, 눈이 내린 직후였다. 하지만 결국 땅이 얼지 않은 겨울날씨에, 바로 나가서 심었다. 밭에 흙을 새로 채워주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심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텃밭의 흙을 앞쪽으로 모으고, 앞부분에만 종패를 심어줬다.


고추 심을 자리를 남겨두고 심은 달래가 싹이 나왔다


원래 이 자리는 고추 심는 곳인데, 뭐, 고추 가장자리로 심어보자는 마음으로 뺑 둘러서 심었다. 그리고 장미 옆에 마늘을 심으면 벌레를 쫓아준다니까, 마늘 심는 셈 치고 장미 주변에도 묻어줬다.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3월 어느 날부터 이 달래들이 땅을 밀고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 심을지 마땅치 않아서 심어놨던 여기저기에서 계속 밀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종패에서 시작한 달래는 키우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리지만, 그래도 이제 이만큼 심었으면 올해에 씨앗도 받을 수 있을 테고, 달래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장미 옆에 양귀비도 올라오고, 달래 싹도 올라온다


화분에 심어뒀던 것들도 밀고 올라온다




반면에 멀쩡히 매년 올라오다가 올해 갑자기 다 죽어버린 것이 있었으니, 바로 미나리다. 번지기를 잘하니 밭에 심지 않고 화분에 길렀는데, 일 년 내내 먹고, 꽃도 피고, 겨울에 죽은 듯하다가 봄이면 다시 올라오곤 하던 미나리가 올해는 무슨 영문인지 다 녹아버렸다.


너무나 만만하게 키우고 있었기에 찍어놓은 사진도 없나 보다. 찾다가 포기했다. 하긴, 일 년 중 딱 시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그 많은 사진들 중에서 어디서 찾겠는가!


아무튼 다 녹아버린 미나리를 보며 나는 망연자실했다. 키우기는 무척 쉽지만, 일단 구해야지 키울 텐데 말이다. 결국 마트에 미나리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엉뚱한 곳에서 미나리를 발견했다.


미나리와 피오니, 그리고 루꼴라까지 사진 한 장에 모두 들어왔다.


그래, 여기다가도 심었었지! 베어낸 나무 그루터기에 작은 홈이 있어서 거기에 심었더니 아주 예쁘게 자랐었다. 물 빠짐이 좋지 않아서 비가 오면 흥건하게 물이 고여 있는 흙이었기에 미나리를 말라죽지 않게 해주는 좋은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겨우 요만큼 있는 것에서 뽑아서 큰 화분에 옮기기는 아직 좀 미안했다. 더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마트에 한국 야채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서 얼른 미나리를 사 왔다.



맛있는 미나리, 위쪽 부드러운 부분은 무쳐서 먹고, 이렇게 아래쪽 뻣뻣한 부분을 몇 마디씩 잘라준다. 잘 보면 마디 부분에 벌써 뿌리의 징조가 보인다. 그 부분을 물에 담가둔다.


물컵에 물 담아 꽂아둔 미나리 줄기


미나리 줄기 내리는 속도는 엄청나다. 이틀만 지나도 뿌리가 벌써 길게 자란다. 사실 물에 꽂지 않고 바로 흙에 꽂아도 되는데, 그때 날씨가 쌀쌀해서 약간 깨울 겸 물에 꽂았다.


바빠서 깜빡 잊고 사흘 지났더니 벌써 이렇게!!


garden_2024_081.jpg


그래서 바로 흙으로 갖다 꽂았다. 이때 주의사항이라면 물을 넉넉히 준다는 것이다. 미나리는 가물면 안 된다. 무조건 물이 많아야 한다. 구멍 안 뚫린 화분에 물이 찰랑거려도 오히려 괜찮을 지경이다.


garden_2024_082.jpg
볼품없이 꽂아 둔 미나리


그리고 일주일 후, 벌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얼른 자라주길!


일주일 만에 잎이 올라오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 되었다. 아래는 래디쉬 싹이 올라오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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