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집에서 만드는 사람들
올해도 와인을 만들었다. 2020년 처음 시작한 이후로 (https://brunch.co.kr/@lachouette/210) 한국을 다녀왔던 2022년만 빼고, 매년 만들고 있는 와인이 올해 다섯 번째다.
처음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이후, 차례로 샤도네(Chardonnay), 산지오베제(Sangiovese)에 이어, 작년에 레드 진판델(Red Zinfandel)을 만들었고, 올해는 드디어 남편이 원하던 피노 누와(Pinot Noir)를 시작했다.
과정은 언제나 비슷하다. 포도 수입 시기가 다가오면 수입상에 연락해서 포도를 선택하고 예약한다. 이때 예약금을 건다. 포도는 캘리포니아에서 수입된다.
물론 원산지인 유럽에서 오면 더 좋겠지만, 캐나다로는 캘리포니아 포도만 수입된다. 불만은 없다. 이렇게 구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니까. 캐나다에서는 날씨 때문에 와인용 포도 수확이 쉽지 않아서, 와이너리에서도 시음 및 실습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와인은 수입 포도에 의존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 포도 수입은 누가 할까? 바로 아쉬운 사람들이 한다. 집에서 김치 만드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는 한국인들이 한국에서 배추를 수입하는 것처럼, 집에서 와인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탈리아인들이 포도를 수입한다.
주문한 포도를 받으러 가보면, 실제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구입하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 이탈리아인이다. 그들 특유의 경쾌함이 있어서 분위기가 좋다.
와인 만드는 도구 중에 더 필요한 것이 생기거나 하면 온라인 중고장터를 활용하는데, 그렇게 해서 집을 방문해 보면 역시 이탈리아인들이 많다. 할아버지가 지하실에서 쭉 와인을 만들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면 자손들이 할 줄 모르거나 더 이상 안 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나눔 및 판매를 하는 것이다.
어떤 집은 정말 지하실 전체가 와인 제작실이었다. 사진을 찍은 줄 알았는데 없어서 아쉽지만,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난다. 오크 배럴까지 쭉 진열되어 있어서 침을 흘렸지만, 우리 집에는 놓을 공간이 없으므로 패스하고, 와인병을 얻어왔던 기억이 난다.
포도 안 씻어요?
포도를 받아오면 곧장 작업을 시작한다. 잘 소독한 포도 크러셔(crusher)에 포도를 던져 넣고 그대로 으깨는 과정이 첫 번째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 포도를 씻어서 넣고 싶은데, 전통 방식 와인 만들기에서 포도를 씻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포도 구매처에서 디스테머(destemmer)로 으깨서 주기도 하는데, 그때도 물론 씻지 않는다.
유기농이 아니라면 농약 걱정은 없을까? 씻는 게 깨끗하고 더 좋을 텐데? 물론 순전히 와인 제작자의 선택이지만, 포도를 씻어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왜 그럴까?
물론 지저분한 먼지나 잎 등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다면 더 깔끔한 맛의 와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도를 씻으면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포도즙의 농도가 희석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굳이 씻어야 한다면, 씻고 나서 잘 건조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 과정에서 곰팡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씻을 때 포도가 쉽게 뭉개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오히려 오염에 취약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살균이 되는 세제를 사용한다면 포도 자체에 있는 자연의 효모(yeast)를 잃을 수도 있다. 식초 탄 물에 잠깐 5분 정도 담갔다가 꺼내서 말리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고 하는데,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다.
꽃가루나 먼지, 흙 등 달갑지 않은 것들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와인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알코올이 생성되면서, 인간에게 유해한 균들은 대부분 죽는다고 하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농약도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사실 농약을 살포했다면 포도의 껍질에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렇게 포도주용으로 생산되는 포도들은 수확 이전 일정한 기간 동안 농약 살포가 금지되며, 출고 시에 잔류 농약 농도를 검사하여 안전하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우리가 모든 음식을 유기농으로 먹지는 않으니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말 찝찝하다면, 주스의 농도가 희석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씻으면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깨끗하게 씻고, 포도에 붙어있는 균을 약품으로 제거하고, 판매되는 효모를 넣어서 포도주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 집에서는 자연의 효모 만으로 포도주를 만드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에, 포도는 세척하지 않고 작업한다. 그대로 크러셔에 넣어서 으깨고 포도 줄기는 제거한다. 줄기는 떫은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준비된 포도는 1차 발효통으로 들어간다. 영어로는 primary fermenter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초벌 발효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즉, 포도 덩어리를 모두 가지고 적극적으로 알코올 발효를 하는 상태다.
따뜻한 온도에서 더 활성화되기 때문에 실내 온도 25°C (77°F) 정도로 맞춰주면 대략 2주일 정도 걸린다. 사실 발효는 좀 더 긴 기간 진행될 수도 있긴 하지만, 더 오래 방치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가 알코올발효가 끝나고 초산 발효로 돌아서면 그야말로 망하는 거다. 그게 모두 식초가 돼버릴 테니까.
그래서 적절한 선에서 포도 머스트(must)를 짜내고, 카보이(carboy)나 데미잔(demijohn)으로 옮긴다. 그리고 에어락(airlock) 마개를 씌워서 초산발효가 되지 않도록 준비한다.
이 방법은 공기의 주입을 막아주는 것인데, 그러면 초산발효는 일어나지 않되, 남은 알코올 발효가 마저 진행될 때 발생하는 가스는 밖으로 빼줄 수 있다.
이렇게 2차 발효가 진행되고, 발효가 모두 일어나고 나면 숙성이 시작된다. 비록 포도즙을 확실하게 짜 줬지만, 발효가 되면서 찌꺼기가 발생하게 된다. 효모의 시체라고도 하는데, 발효되면서 생긴 부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제법 두툼한 찌꺼기가 쌓이기 때문에 두 세 차례 사이펀으로 걸러준다.
그렇게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서 숙성이 되면, 한 일 년 정도 지나면 먹기 시작한다. 더 오래 숙성을 시켜도 되지만, 오크 통도 없는 이런 가정식 와인의 경우는 몇십 년씩 발효시키지는 않는다. 우리 집은 보통 2년 ~3년 안에 전부 병에 담는다.
병에 담은 후에는 코르크 마개를 끼워주고, 위에 슈링크 캡을 씌우고 라벨까지 붙여주면 완성이다. 너무 흐뭇하고 뿌듯하다.
파는 것보다 맛있나?
솔직히 우리 입맛에는 분명히 그렇다. 우리가 원래도 그렇게 많이 비싼 와인을 사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만든 와인이 훨씬 풍미가 좋고 부드럽다. 그리고 두통이 생기지 않는다.
시판 와인은 일반적으로 보존제인 아황산염(Sulphites)을 넣는데 그게 사람에 따라 두통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게 들어감으로써 와인 발효가 수월해지고, 와인을 망칠 확률도 낮아지기 때문에 시판와인에서는 거의 사용하는 편이다.
남편은 그간 우리가 만들었던 와인들을 와인랙에 얹어 놓고 흐뭇하다. 내년에는 피노 누와까지 얹을 수 있겠구나!
와인도 맛있지만, 작업하는 전 과정을 즐기는 것이 참 좋다. 찌꺼기 거를 때마다 맛을 보고, 그 변화를 즐기고, 또 병에 담는 과정에서 한 단계, 한 단계를 해 나가는 것이 수제 와인의 큰 기쁨이다. 5년째 반복하고 있지만 매번 탄성을 지르고, 즐거워서 웃고, 조마조마하게 쳐다보면서 행복을 만들어 나간다.
세상 일이 꼭 다 성공하리라는 법은 없다. 어쩌면 실패를 할 수도 있으리라. 기록에 남기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중고 장터에서 무료로 나눠준 포도는 와인 만들기에 실패했다. 당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실패하고, 또 성공하면서 우리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게 인생 아니겠는가!
와인 제작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했지만, 아무래도 모든 것은 다 백문이 불여일견인지라 영상으로 보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구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