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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인 Jun 25. 2024

제주를 떠나보내며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제주에서 꼬박 4년을 살았다. 아이들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으니 제법 유년시절의 많은 부분을 보낸 셈이다. 정체성이나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였던 만큼 제주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지지만 그곳에서 쌓았던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진 인생의 지향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제주를 찾은 이유도 나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시작된다.


서울 대치동에서 살았던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 키보다 몇 십배는 더 큰 네모난 빽빽하게 솟아오른 아파트 건물들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린 마음에도 "여기를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엄마가 공부를 많이 시키시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린 마음에 위압적인 건물이 주는 위화감이 크게 느껴졌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특히 답답한 도심지역에서 자랐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렴풋이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 신문기사에는 후지산 전경을 가린 높이 지어진 아파트 신축 건물을 건설사가 자발적으로 철거했다는 내용이 나왔다. 공공재라고 할 수 있는 일조권, 조망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스스로 근절하고, 기업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는 측면이 건물 신축 비용과 철거비용에 대한 부분보다 컸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2024년 서울은 조금이라도 높은 건물을 지으려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행해진다. 젠가 일조권, 조망권의 가치가 재평가되어 높은 건물들이 낮아지고 서울의 푸르는 산들을 보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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