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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경 Aug 18. 2021

#5. 물집

[댕경X인영구] 댕경으로부터

나는 논산에 있는 육군훈련소로 벚꽃이 활짝 필 때쯤 입대를 했다. 벌써 전역 이후에 시간이 꽤 지났고, 심지어 예비군도 이제는 7~8년 차라 훈련도 없지만, 아직도 훈련병 시절이 어렴풋이나마 기억난다. 26연대 3중대 150번 분대장 훈련병.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26연대 생활관은 육군훈련소에 있는 모든 연대 생활관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낡아빠진 생활관이었다. 생활관 안에 쥐들이 돌아다니곤 했으니 뭐.






훈련소에는 ‘건강소대’라는 소대가 있는데, 건강소대에 배정받게 되는 훈련병들은 몸 어딘가가 아픈-너무 아파서 군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온전히 훈련을 받기에는 불편할 수 있는- 병사들이거나, 고도비만인 병사들만이 건강소대로 배정받게 된다. 나는 입대할 당시에 허리가 많이 아픈 상태여서 자연스레 건강소대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 분대원들은 모두 나와 같이 몸 어딘가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였고, 자연스럽게 훈련에서 열외 되거나 남들이 하는 훈련의 절반에서 3/4 정도만 받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교관들에게 나름의 특별대우를 받았지만, 바로 옆 생활관을 쓰는 일반 소대의 병사들은 우리를 그렇게 고깝게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훈련이 힘들고 고될 때마다 옆 방에서 ‘아 XX, 저 XX들 꿀 빠는 거 진짜 꼴 보기 싫네’라는 말이 들려왔고, 우리가 저 훈련병들보다 훈련을 덜 하는 게 사실이라 저런 말이 들릴 때마다 할 말이 없어서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훈련소의 훈련이 거의 다 끝나갈 때쯤, 30km 야간행군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훈련소 훈련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내가 육군훈련소에서 야간행군을 하게 됐을 때에는 완전군장 상태로 행군을 하게 되어있었다. 완전군장을 하면 군장무게만 약 20kg이 된다고 하던데, 전역할 때까지 완전군장의 무게를 직접 달아본 적이 없어서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무거운 군장을 양 어깨에 메고 30km를 걸어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 건강 소대원들은 교관들의 힘으로 군장에 아무것도 넣지 않게 한 채로 행군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 분대원들은 하나같이 ‘마지막 훈련인데 그래도 제대로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다른 훈련병들과 똑같이 완전군장으로 훈련에 임했다.






행군을 막 시작했을 땐 우리 분대원 모두 기세가 좋았다. ‘야, 이 정도면 갈만 하겠는데?’라는 말을 서로에게 하며 힘차게 걸었지만 그럼 그렇지, 얼마 가지 않아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일반 병사들은 앓는 소리를 하더라도 그것이 훈련이기 때문에 정말 큰 문제가 있는 병사들이 아니면 조교나 교관들이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지만, 우리 건강소대에게는 달랐다. 우리는 오히려 교관들에게 왜 군장을 꽉 채워왔느냐며, 너네 스스로가 다치고 싶어서 환장했냐는 심한 말들과 함께 한참을 혼났다. 나는 우리 분대의 분대장이라는 왠지 모를 책임감 때문에, 내가 힘들더라도 우리 분대원들의 짐을 덜어서 함께 완주해내고 싶은 마음에 교관님에게 부탁했다. ‘제가 저 병사 군장까지 메고 함께 가겠습니다!’라고.






그렇게 나는 동기의 군장의 짐 절반을 내 군장에 넣고, 다른 군장 하나를 추가로 맨 상태로 행군을 진행했다. 나를 좋게 봐준 조교가 또 다른 병사의 군장을 함께 매고 ‘힘드냐? 훈련소 분대장이 뭐 대단한 거라고 힘든 거 얘기도 안 하고 혼자 다 짊어지고 가냐?’라며 옆에서 같이 걸어주었다. 정신을 놓은 채 그냥 앞사람 등만 보고 따라 걷다 보니 힘든지도 몰랐고, 실제로 내 몸 어딘가가 아픈지 그렇지 않은지도 몰랐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아서 그냥 괜찮나 보다, 나 생각보다 잘 걷네? 싶었다. 무사히 행군을 완주하고 생활관에 들어가 군화를 벗었는데, 발이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행군을 하면서 발에 물집이 엄청 많이 생겼는데, 물집이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걷다 보니 물집이 터지고 또 터진 것이었다.






행군을 하고 있는 도중에는 내 주변 사람들의 힘듦이 보기 힘들어서, 나의 힘듦을 억지로 숨겨가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도와주려 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고 내 군장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내 힘듦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것이 우리 동기들을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군을 끝내고 나서 내 생각이 정말 짧았다고 느꼈다. 내 힘듦이 곪아 터졌을 때의 후폭풍이 오히려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물론 행군이 끝난 후의 터진 물집들은 한 동안 거즈를 감고 절뚝절뚝거리다 보니 어느덧 나아있긴 했지만.






천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내 힘듦을 잘 털어놓지 못한다. 우리 가족들에게조차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이러나저러나 내가 이만큼 힘들다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는 게 내가 힘듦을 견뎌내는 방법인 것 같다. 또 물집이 잔뜩 터지면? 어쩔 수 없지, 뭐. 며칠 절뚝거리다 보면 어느새 괜찮아져 있지 않을까.







*

[아우어 레터는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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